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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와이룰즈 Jan 08. 2019

‘마시는 일’로써의 커피

[공간 즐겨찾기] 문화역서울284 전시 <커피사회> 후기


커피는 우리에게 무엇일까?


뜬금없는 질문인 것 같지만 제가 궁금해서 묻는 건 물론 아닙니다. <커피사회, Winter Coffee Club>라는 전시를 통해 한국의 커피문화를 이야기하기 위한 물음이죠. 원래 알고 간 것은 아닙니다. 인스타에서 한 스페셜티 카페가 서울역에서 팝업 비슷한 걸 한다고 하기에 지나가는 길에 커피 한 잔이나 걸치려고 들렀습니다. 막상 문화역서울284 건물 안으로 들어가니 단순한 팝업스토어가 아니라 전시회였던 거죠. 거의 3시간을 머물렀나 봅니다. 근래에 본 전시 중엔 가장 만족스러운 경험이었네요. 무료 전시임에도 빈틈없이 짜임새있는 큐레이팅과 기획같이 느껴졌습니다.



뭔가 크리스마스트리인듯 아늑함이 느껴진다.



맛의 향유가 아닌

‘마시는 일’로써의 커피


전시를 보며 놀랐던 점은 공짜 커피에 있었습니다. 처음엔 공짜라는 말에 마냥 좋기만 했는데 커피를 제공해주는 행위 자체가 ‘마시는 일’의 느낌을 표현하기위해 의도된 기획이었던 거죠. 그래서 그런지 커피를 제공해 준 공간 밖으로 가지고 나가지 못하게 막더군요. 커피를 받아 든 사람들은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자리에 앉아 자연스레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혼자 들렀던 저는 기둥에 걸ㄹ있는 작품들을 감상하는 척하며 빠른 속도로 커피를 흡입하고 유유히 방을 빠져나왔습니다.


주말 아침 집에서 내려 마시는 가정식 커피를 지향하는 ‘오늘의 커피’는 맛보다는 마시는 일, 그중에서도 같이 마시는 일의 느낌을 표현하는데 방점을 둔 프로그램.  
-프로그램 <윈터 클럽> 설명 중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저와 같은 커피덕후에겐 커피의 미세함을 즐기는 존재이기도 하고, 어떨 때는 커피는 분위기 좋은 공간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해주는 매개체이기도 합니다. 카페라는 곳은 치열하게 머리를 굴리며 일을 하는 공간 되기도 하고 함께 아이디어를 나누는 비즈니스 미팅이 이루어지는 곳이기도 합니다. 한편 직장인들에게는 휴식의 핑계거리로 이용되기도 합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커피는 ‘마시는 일’ 자체가 목적이기도 합니다. 매일 마시는 커피기에 아무래도 습관의 영역이 가장 크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커피는 취향에 따라 상황에 따라 그 의미가 제각각 해석될 수 있습니다. 여담이지만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재밌는 사실은 직장인들은 사무실 안에 분명 커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어이 밖으로 나와 제 돈주고 사먹습니다. 남이 타준 커피가 맛있기도 하지만, 쉬고 싶을 때 누군가가 ‘커피 한 잔 하러 가시죠’ 라는 말처럼 반가울 때가 없기도 합니다.



노려보는 저 눈빛이 조금은 섬뜩했으나 왠지 마음에 드는 설치물이었다.



거의 모든 프로그램들과 전시가 좋았지만 그중에서도 하나를 꼽으라면 ‘제비다방과 예술가들의 질주’의 방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우리나라의 다방 문화는 어떻게 만들어졌고, 그당시에 커피를 즐겼던 예술가들의 이야기의 나열이 흥미로웠죠. 요즘 트렌드인 B급갬성과 레트로스러움을 물씬 느낄 수 있습니다.


긴좌에 있는 카페 프렝땅의 블랙커피를 김동인은 사왔으며, 자기 하숙방에서 주요한과 그 검은 액체를 나눠마셨다. 최초의 근대적인 문학잡지 제목을 두고 밤새 논의하며 ‘창조’를 만들어낸 것이다.




근대의 맛


<근대의 맛>, 이날의 브랜드는 ‘펠트커피’. 하루에 일정 수량만 제공해서 2시 이후에 오신 분들은 안쪽 공간 너머에서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고 있었다.


뭐니뭐니해도 이 전시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것은 건물 꼭대기층에 있는 <근대의 맛>이라는 공간입니다. 이곳이 바로 우리나라 스페셜티 카페들이 일정 기간동안 팝업스토어를 여는 곳이죠. 클래식 음악과 함께 짙은 붉은색 카펫위에 펼쳐진 넓직한 공간에 앉아 있으니 마음이 안정되면서도 어딘가 새로운 느낌이었습니다. 그 공간과 커피를 향유하며 거의 2시간은 앉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페 사장 이름이 박대충인가보다. 인스타 계정이 @daechungpark 이다.



이 공간은 원래 ‘더 그릴’이라는 이름으로 1925년에 만들어진 대한민국 최초의 서양식 레스토랑이었다고 합니다. 윗분들이 주요 고객이었죠. 이 공간은 그당시의 ‘근대’를 주제로 1920년대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도록 기획되었고 커피 또한 각 브랜드가 그 컨셉에 맞게 재해석한 메뉴들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앉아 있으려니 저도 윗분이 된 것 같은 느낌입니다. 1월 첫째 주에 선보이는 ‘대충유원지’라는 카페의 메뉴가 특히 재밌었습니다. 다방에서 즐겨먹던 쌍화차를 현대 커피로 재해석한 ‘쌍화양탕’이라는 음료로 선보였습니다. 카페 이름에서부터 힙함이 느껴지더니 메뉴도 심상치 않았습니다.


2월 17일까지 계속되는 전시에는 총 8개의 브랜드가 참여했고, 저는 왠지 매주 방문할 듯하네요. 시간이 되신다면 꼭 한 번 들러보시길 바랍니다.




<커피사회>

2018.12.21 - 2019.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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