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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와이룰즈 Oct 29. 2023

서른일곱에 주방에 들어갔다

Late to the apron 01

Late to the apron.


늦은 나이에 테니스에 입문해 테니스와 나이 들어감에 대한 여정을 담은 책 <Late to the ball>에서 따왔다. 나는 서른일곱에 주방에서 앞치마를 두르게 됐다. 뭔가 새로 시작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고는 하지만 처음 주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주방 막내이자 최고령자였다. 총괄 셰프보다도.


이 전 직장에서 업무적으로도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었고 평소에도 외식업에 관심은 있었지만 제3자의 사업적 눈으로 바라보는 바라보는 것과 전쟁터와 같은 그곳에 뛰어드는 일은 전혀 다른 이야기다. 손님들이 몰리는 시간엔 예상한 대로 전쟁터였고 현장은 생각보다 열악했다. 초반엔 5명이서 100평이 넘는 2개 지점의 주방을 모두 커버했으니 말이다. 나이만 찼지 프로 세계에서의 주방 경험은 사실상 전무하다 보니 11살 어린 사수에게 호되게 혼나며 배웠다. 지금이야 웃지만 당시엔 요동치는 심란함을 숨긴 채 시련(?)을 견디기 쉽지 않았다. 결국엔 능력을 인정받았다. 능력이라고 표현하기엔 좀 요란스럽고, 빠르게 손을 움직여야 하는 주방인으로서의 기본 업무 소양 정도로 이해하면 될 듯하다.


이제 주방 경력 5개월 차다. 현재에 집중하며 여기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한편, 앞으로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 고민 중이다. 하루 종일 주방에서 뜨거운 열기와 씨름하다 어느새 어둑어둑해진 바깥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보람을 느끼기도 한다.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보상받는 기분이다. 그러나 주방에서 요리를 업으로 삼을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다. 짧은 기간이지만 많은 사건들이 있었고 힘들고 업무 환경이 열악하니 사람들이 주방에 들어오려 하지 않는 이유도 충분히 이해 간다. 그리고 지금 내가 일하는 주방은 총괄 셰프와 대표와의 갈등으로 변화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다. 참.. 다사다난한 곳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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