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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와이룰즈 Feb 10. 2018

왜 아이폰을 고집하는 걸까요?

올 어바웃 '스티브 잡스'

디지털 콘텐츠 치고는

꽤 긴 호흡의 글입니다.

저장해 두고

천천히 읽어보세요.




가로수길에 생긴 애플스토어. 문이 무지 무겁습니다.


최근에 가로수길에 오픈한 애플스토어를 찾았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이 바글바글 할까요? 분명 배터리 스캔들 때문에 그리 논란이 많았는데도 말이죠. 스캔들은 스캔들일 뿐이었을까요? 사람들은 애플스토어를 구경하기 위해 일부러 가로수길을 찾습니다. 그리고 아이폰X는 역대 최대 매출을 기록합니다.

아시아경제| 애플, 999달러 아이폰X으로 역대 최대 매출…판매량은↓


왜때문이죠?


전략의 승리입니다. 아이폰X에 대한 수많은 비판과 우려 속에서도 애플의 브랜드의 가치가 전혀 죽지 않았다는 방증이며, 애플이기에 가능한 전략이라는 생각입니다.



애플의 시장점유율이 5퍼센트 아래로 떨어지자 PC업계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접근법에 승리를 선언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잡스의 모델이 다소 유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다른 컴퓨터 제조사들은 평범해지는 반면 애플은 시장점유율이 낮은데도 높은 마진 폭을 유지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2010년 PC 시장의 총매출에서 애플의 몫은 7퍼센트에 불과했지만 그 영업이익이 차지한 몫은 35퍼센트에 이르렀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875페이지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웨어가 개방적인 모델인 데에 비해 애플은 소프트웨어든 하드웨어든 폐쇄적이라는 점이 가져온 결과입니다. 여기에서 아이폰X가 성공적이었던 이유를 가늠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아이폰X ⓒ애플코리아



저는 아이폰&아이패드 유저로서 왜 애플 제품을 사는지 정도는 제대로 정리해보고 싶었어요. 명확히 설명되지 않았던 그 이유, 제가 한번 설명해 보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언론에서 잘 다루지 않는 이야기들 위주로요. 전반적으로 애플보다는 스티브 잡스에 더욱 초점을 맞췄습니다. 진행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프롤로그: 이젠 소비에도 'WHY가 따라붙었다.

1. 통제와 디테일에 대한 집착

2. 디자인과 단순함에 대한 철학

3. 스티브 잡스의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

4. 우주에 흔적을 남기다




프롤로그

이젠 소비에도 'WHY'가 필요하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소비'는 마치 자신에게 문제가 있는 것만 같습니다. 소비자들은 똑똑해졌고, 군중심리에 저도 그래야만 할 것 같습니다. 참, 소비자로 살아가기에도 쉽지 않은 세상입니다.



이를 기업의 입장에서 바꿔 말하면, 기업은 소비자에게 구매의 이유를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들어진단 이야기겠죠. 그래서 브랜드 가치와 스토리가 중요해졌고 기업 스스로 미디어가 되어 목소리를 내는 법을 갈고 닦는 이유입니다.



리테일에서의 스토리텔링은 제품의 질 보다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에게 스토리가 정교하게 어필하는 순간, 심리적인 장벽이 무너진다. 왜 사야 하는지 수긍이 되기 때문이다.

<New Rule① 브랜드=미디어> 글 중에서, 메디아티



스티브 잡스 = 애플

개인적으로는 아이폰을 다시 구매한 이유가 여러 가지 있겠지만, 그 중에서도 단연  '스티브 잡스'의 철학 자체가 아이폰을 고수하는 이유입니다. 그래서 시대의 아이콘이었던 '스티브 잡스'에 대해 살짝 깊게 다뤄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다 잡고, 집구석에 묵혀뒀던 책을 꺼냈습니다. 자그마치 925쪽에 달하는 월터 아이작슨의 책 <스티브 잡스>입니다.



산 사람은 있어도 읽었다는 사람은 없다는 그 책.



스티브 잡스 책 1권 =  두꺼운 잡지 3권



히피, 통제, 단순함, 집착, 이분법적 사고, 현실 왜곡, 집중, 열정 등. 책에서 유난히 자주 눈에 띄는 키워드들입니다. 이미 잘 알려져 있듯이 그의 성격은 극단적이고 괴팍하기 그지 없습니다. 저도 책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고요.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닙니다. 그의 독특한 취향과 극단적인 성향이 기업가로서는 애플과 *픽사를 지금의 위치로 견인하는 데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것이죠.

*픽사: 애니메이션 회사로 애플에서 쫓겨 난 스티브 잡스가 영화 <스타 워즈>를 만든 루카스필름의 컴퓨터 부문을 상당 부분 사 들이면서 만들어진 회사입니다. 그는 최대주주로서 회장직에 머물렀지만 그의 성격상 여기 저기 사사건건 개입을 많이 했습니다. 픽사에서 만든 첫 장편 애니메이션이 바로, <토이 스토리>입니다.




1.통제와 디테일에 대한 집착


거의 모든 걸 극단적으로 통제하려 했습니다. 먼저 제품에서도 찾아볼 수 있죠. 애플의 소프트웨어 운영체제인 iOS가 폐쇄적인 점, 그 어떤 애플 제품도 일반 사람들이 쉽게 뜯어볼 수 없도록 만들어 놨다는 점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네요. 제품을 만드는 과정에서도 마찬가지로 엿볼 수 있습니다. 전자기기를 만드는 회사이기에 엔지니어링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겠죠. 직관적으로 생각하면 제품에 필요한 기술이나 기능적 요소들을 먼저 고민하고 설계한 뒤에 이에 맞춰 디자인하는 것이 논리적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그 당시 업계 대부분의 회사들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스티브 잡스는

달랐습니다.


먼저 디자인을 고려했고 거기에 맞춰 어떻게든 기술적 요소들을 맞추도록 했습니다. 예외는 없었습니다. 물론 엔지니어들의 반발이 심했지만 별 수 있나요? 잡스의 요구대로 맞출 수 밖에 없었죠. 재밌는 것은 엔지니어들이 스스로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결국엔 요구대로 맞춰냈다는 것이죠. 그가 최고의 인재들을 데려 오려고 안간힘을 쓴 이유이기도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대로 완벽하게 구현해 낼 사람이 필요했던 거죠.



부작용,

물론 있었죠. 


한 예로, 아이폰 4가 출시 됐을 당시에 이슈가 되었던 가장자리 알루미늄이 안테나 기능을 저하시킨다는 점은 출시 전에 이미 엔지니어들이 경고했던 부분입니다. 엔지니어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잡스는 자신의 고집을 밀어붙였고 결국엔 문제가 되었죠. 하지만 잡스의 제품의 디자인과 본질, 그리고 제조 방법 간의 연결에 대한 집착이 애플을 월등히 차별화시킨 원동력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는 디자인으로 엔지니어링을 통제했습니다.


조너선 아이브, 애플 디자인 총괄


이러한 사실은 애플의 디자인을 책임지는 조너선 아이브의 말에서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왜 단순한 게 좋은 거라고 생각할까요? 물리적인 제품을 다룰 때 그것을 제압할 수 있다고 느끼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복잡한 것에 질서를 부여하면, 제품이 사용자에게 순종하도록 하는 방법을 찾을 수 있습니다. 단순함은 단지 하나의 시각적인 스타일이 아닙니다. 미니멀리즘의 결과이거나 잡다한 것의 삭제도 아니예요. 진정으로 단순하기 위해서는 매우 깊이 파고들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에 나사를 한 개도 쓰지 않으려고 하다 보면 대단히 난해하고 복잡한 제품이 나올 수도 있습니다. 더 좋은 방법은 보다 깊이 들어가 제품에 대한 모든 것과 그것의 제조 방식을 이해하는 겁니다. 본질적이지 않은 부분들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해당 제품의 본질에 대해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합니다.



단순히 디자인을 통해 예쁘게 보이고 싶어했던 게 아니라 단순해야 하는 이유,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기 위한 수단으로서 이용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외관의 진정한 단순함을 구현하기 위해선 안으로 '매우 깊이 파고들어야' 하고, 더 나아가 '제품에 대한 제조 방식을 이해해야 한다'는 말에서 단순함을 구현한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은 작업이라는 게 느껴집니다. 본질을 파고들어야 하는 작업입니다. 잡스는 자신의 디자인을 통해, 일일이 설명하기 힘든 자신의 철학을 고객들이 느끼길 바랬고, 실제로 고객들은 직관적으로 그 의도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신은 디테일 속에 존재한다

제가 첫 스마트폰을 아이폰 4로 선택한 이유는 바로, 디테일 때문입니다. 뭐, 물론 첫 인상은 이뻐서였죠. 그러나 갤럭시를 뒤로하고 아이폰을 선택한 결정적 이유는 손가락으로 화면을 밀어 넘길 때 그 부드러움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갤럭시도 못지 않게 좋지만 그 당시에는 섬세하지 못해 뚝뚝 끊기는 느낌이 꽤나 거슬렸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제품에 대한 강박적 철학인 사용자 경험과 완벽주의가 저를 '앱등이'의 세계로 안내한 셈입니다.



스티브 잡스는 극단적으로 디테일에 집착했습니다. 아무도 들여다 보지 않을 컴퓨터 회로 기판을 보기 좋게 깔끔히 디자인 한다거나, 보드 위에 이를 설계한 엔지니어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는 것은 너무 잘 알려져 있죠. 이는 픽사에서도 그런 면을 숨길 수 없었죠. 예를 들어, 픽사의 캠퍼스를 짓는데 철제 프레임(H빔)사이를 연결할 볼트에 '개미 그림을 넣니 안 넣니'를 가지고 경영진들과 논쟁하기도 했습니다. 볼트에 개미 그림을 넣게 되었을 때 생산 비용이 급격히 높아지기 때문에 경영진들은 완강히 거절했죠.

※Office Snapshots| (영문)픽사 본사와 스티브 잡스의 유산



쓸데없는 고집이 아니라,

이렇게 디테일에

집착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아버지에게서 배운 교훈 때문이죠. 한번은 새로 들어온 엔지니어는 잡스가 회로 기판이 이쁘게 정리되어 있는지 철저하게 검사하는 데에 불만을 품고, 회로 기판은 소비자들이 쳐다보지도 않을 뿐더러 무엇보다 잘 작동하는냐가 중요하다고 주장하자 항상 그랬던 것처럼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최대한 아름답게 만들어야 해. 박스 안에 들어 있다 하더라도 말이야. 훌륭한 목수는 아무도 보지 않는다고 장롱 뒤쪽에 저급한 나무를 쓰지 않아.



이렇게 제품에서도 명확히 드러나는 직접 통제하겠다는 의도는 언론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으며, 심지어 한 블로거는 '배터리를 바꿔 끼는 단순한 일조차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고 일깨워 주는 수단이 된다'라고 할 정도로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잡스는 이를 정의의 문제라고 이야기 합니다.


우리가 이런 것들을 하는 이유는 통제광이라서가 아닙니다. 훌륭한 제품을 만들고 싶어서, 사용자들을 매려해서, 남들처럼 쓰레기 같은 제품을 내놓기 보다는 사용자 경험 전반에 대해 책임을 지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사람들은 제각기 자신이 제일 잘하는 일을 하느라 바쁘고, 그 때문에 사람들은 우리 역시 우리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해 주길 바라지요.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876페이지


1956년에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브라운사의 스테레오. 그는 스티브 잡스가 가장 좋아한 디자이너 중 한 명이었으며 아이팟은 그의 디자인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습니다. ⓒ뉴욕타임즈


또 다른 이유로는 비디오게임 제조사 아타리에서의 경험과 애플의 공동 창업자 마이크 마쿨라의 영향입니다. 아타리에서의 경험은 영화 <스티브 잡스>에서 등장할 정도로 그에겐 중요한 시기입니다. 아타리의 창업자 놀런 부시넬로부터 사업과 설계에 대한 접근 방식을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받았고, 그 중에서도 특히 제품이 가져야 할 단순성과 사용자 친화성이 있죠. 아타리에서 만든 게임들의 단순함이 지닌 가치를 직관적으로 알아 차렸는데, 예를 들어 여기서 만든 '스타 트렉' 게임의 유일한 사용 설명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었습니다.


1) 25센트 동전을 넣으시오.
2) *클링온을 피하시오.  
*클링온: 미국 드라마 <스타 트렉>에 등장한 외계 종족.


고객과 제품과의 관계에 있어 사업가가 가져야 할 감각을 젊었을 때부터 이미 깨달았던 거죠.



마이크 마쿨라는 애플의 초기 투자자이자 잡스의 멘토였습니다. 잡스를 애플에서 내쫒을 때 일조하기도 했지만 그 전까지는 그에겐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죠. 마쿨라는 잡스에게 항상 절대로 돈을 벌겠다는 목표가 아닌, 자신의 신념을 쏟아부을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드는 것, 오래도록 생명력을 지닐 회사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는 스티브 잡스가 자신의 삶에 있어 애플을 경영해 나가는 본질적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쿨라는 '애플의 마케팅 철학'을 정립해 줍니다.


    이 문서에서 그(마쿨라)는 세 가지를 강조했다. 첫째는 '공감'이었다. 즉 고객들의 감정을 이해하고 고객과 연결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고객의 욕구를 진정으로 이해한다." 둘째는 '집중'이었다. "우리가 목표로 하는 일을 훌륭하게 완수해 내기 위해서는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서 눈을 돌려야 한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원칙은 '인상'이었다. 사람들이 기업이나 제품이 전달하는 신호와 분위기를 토대로 그 기업이나 제품에 대해 특정한 의견을 갖게 된다는 점을 강조하는 원칙이었다. "사람들이 책을 판단할 때 가장 먼저 기준으로 삼는 것은 표지다. 우리가 최고의 제품, 최고의 품질, 가장 유용한 소프트웨어를 갖추고 있다 해도 그것을 형편없는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은 형편없는 것으로 인식된다. 창의적이고 전문가다운 방식으로 소개하면, 그것이 최상의 품질을 갖고 있다는 '인상'을 심어 주게 된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136페이지




2.디자인과 단순함에 대한 철학


"대부분의 사람들이 디자인은 곧 겉치장이라고 잘못 생각합니다. (중략)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디자인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디자인은 겉모습이나 느낌에 불과한 게 아니라 제품의 총체적 기능 및 경험과 관련된 겁니다."  -스티브 잡스

리앤더 카니, <조너선 아이브: 위대한 디자인 기업 애플을 만든 또 한 명의 천재> 중


그가 추구하는 미학적 세계와 그렇게 단순함을 추구하는 이유에 대해 조금 더 깊이 들어가보죠. 그의 미학적 관점에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1981년 애스펀에서 열린 국제 디자인 컨퍼런스에서 목격했던 바우하우스의 미감이었습니다.



바우하우스 (출처: .designishistory.com)


바우하우스(Bauhaus)라는 단어를 어디선가 한두 번쯤 들어본 적은 있실 것 같아요. <알쓸신잡2> 제주편에서 유현준 교수가 본태 박물관에 대해 이야기 하며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안도 타다오도 바우하우스 출신인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이죠. 네, 바우하우스는 예술 및 공예를 가르치던 학교였습니다. 1919년 독일에서 세워졌고 14년 남짓 운영되다 나치에 의해 강제로 폐교 되었죠.

 


저는 바우하우스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항상 궁금한 게 있었습니다. 도무지 뭐 하는 곳인지 갈피가 안 잡힐 뿐더러, 14년이라는 짧은 역사의 학교가 아직도 회자되는 이유는 무언인지 말입니다.



왜때문일까요?


보통 '모던한 스타일'이라고 매우 협소한 의미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단순히 학생을 교육시킨 학교 혹은 모던한 스타일이 아니라 '하나의 정신'입니다. 바우하우스는 산업화에 따른 도시주택문제, 노동, 교육 등 각종 사회문제에 대해 논의하고 사회가 해야 할 일을 찾으려는 노력에서 출발했습니다. 초대 교장인 발터 그로피우스를 중심으로 예술가, 공예가들이 모여 학생들을 가르치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고 그 결과를 건축을 통해 표현해 내고자 했습니다. 그 중심에 자리했던 기능과 합리성에 바탕을 둔 ‘모더니즘’은 현대 사회 시스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바우하우스 운동'이 100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도 그 영향력을 발휘하는 이유입니다.



Less is more.


허버트 바이어의 시네마 디자인. 1924–25. Harvard Art Museum



스티브 잡스는 그 컨퍼런스에서 허버트 바이어가 디자인한 건물, 주거 공간, 산세리프 활자체, 가구 등을 통해 바우하우스의 디자인 철학을 접하게 됩니다. 거기서 (잡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굉장한 영감'을 받게 됩니다. 허버트 바이어의 *스승들이 바로 바우하우스의 교장들이었어요. 허버트 바이어는 바우하우스에서 학생으로서 배우기도 했지만 동시에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그들은 예술과 응용 산업디자인 간에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죠. 디자인은 표현 정신을 담으면서도 단순해야 함을 작품을 통해 투영시켰습니다.

*허버트 바이어의 스승: 초대 교장이었던 발터 그로피우스와 3대(마지막) 교장이었던 미스 반데어로에. 그들은 "신은 디테일 속에 존재한다." 혹은 "적은 게 많은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개조된 아이클러 주택 ⓒMariko Reed (dwell.com)


그렇다고 그 영감이 잡스의 디자인 철학을 결정지은 모든 것이 아닙니다.


하늘에서 갑자기 돈이 떨어지듯 일어난 변화는 아니라는 거죠. 그 '굉장한 영감'이란 빈자리처럼 느껴지던 마지막 퍼즐 한 조각을 발견한 순간으로 표현하는 것이 더 정확할 것 같네요. 잡스는 어렸을 때부터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자신이 살았던 아이클러 주택의 의미와 그것이 멋있는 이유를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때부터 단순하고 깔끔한 모더니즘을 대중에게 선사한다는 개념을 좋아했고 그에게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자동차 디자인의 섬세함에 대한 이야기를 아버지로부터 즐겨 들었고, 한때 소니의 디자인을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아마 허버트 바이어의 디자인을 보는 순간 '굉장한 영감'을 얻은 건 필연에 가까울 수 밖에 없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한국일보 | ‘케이스 스터디 주택’ 오늘날에 맞게 새롭게 적용해야




3.스티브 잡스의 미니멀리즘 라이프스타일


디자인은 그의 철학을 드러내는 하나의 카테고리일 뿐

그가 삶을 대하는 가치관 자체가 미니멀리즘이었습니다. 라이프스타일과 비즈니스에 전반에 걸쳐 퍼져있는 철학입니다.



젊었을 때부터 자아 탐구와 깨달음을 얻고자 하는 진지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여기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것이 7개월 간의 인도 여행과 선 수행 등이 있습니다. 잡스는 자신의 집중하는 능력과 단순함에 대한 애착은 선 수행에서 비롯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선 수행은 직관을 존중하도록 훈련시키고 주의를 흐트러뜨리거나 불필요한 것은 전부 걸러 내는 법을 알려 주며 미니멀리즘에 기반한 미의식을 배양시켜 준다고 믿었죠. 비즈니스에서도 직관력을 상당히 중요시 했는데 인도 여행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인도에 갔을 때보다 미국으로 돌아왔을 때 훨씬 더 커다란 문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인도 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지력을 사용하지 않지요. 그 대신 그들은 직관력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직관력은 세계 어느 곳의 사람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제가 보기에 직관에는 대단히 강력한 힘이 있으며 지력보다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이 깨달음은 제가 일하는 방식에도 큰 영향을 미칩니다.
서구에서 중시하는 이성적인 사고는 인간의 본연적인 특성이 아닙니다.그것은 후천적으로 학습하는 것이며 서구 문명이 이루어 낸 훌륭한 성취이기도 합니다. 인도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고를 학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다른 무언가를 터득했는데, 그것은 어떤 면에서는 이성 못지않게 가치가 있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그것이 바로 직관과 경험적 지혜의 힘입니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93페이지


직관의 강력한 힘에 대해 이해하고 있었고 이를 지속적으로 계발하기 위해 리드 대학교 시절부터 매일 명상을 하며 평정심을 찾으려 했던 이유입니다.


캠퍼스에서 명상 중인 영화 <스티브 잡스>의 한 장면.


히피의 소비 가치관

나는 돈 걱정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굶을 일을 걱정할 필요가 없었지요. (중략) 대학 시절과 인도 여행 때는 일부러 풍족함을 멀리하며 가난한 삶을 살았습니다. 직장에 다니는 동안에도 늘 단순하고 소박한 삶을 추구했고요. 가난한 젊은이였을 때는 그 나름대로 멋진 삶을 살았습니다. 돈에 대해 걱정하지 않았으니까요. 그리고 엄청난 부자가 된 이후에도 역시 저는 돈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179페이지



요즘 남발되고 있는 단어가 있습니다. '*힙(hip)하다' 입니다. '힙 하다'라는 말이 왠지 오글거리고 잔망스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히피 운동의 정신이 아니라 히피들에게서 피상적으로 보이는 겉치레만 가져왔기 때문일 겁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그 단어엔 중심을 잡아 줄 정신적 깊이가 없기에 여기 저기 남발되는 것이겠죠. 어떻게 보면 선망의 무언가를 좇고자 하는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잡스는 소유에 대해 그리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부자가 되면서 물질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목격하며, 이를 '정신 나간 짓'이라고 표현할 정도였으니까요. 히피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죠. 말만 그렇게 이야기 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번 돈에 비해 매우 검소하게 살았으며, 한번은 그의 집을 방문한 빌 게이츠가 너무 검소해 보였던 집을 보고 당황할 정도였다고 하네요. 당시



자신의 집에 물건을 들이는 것에 극도로 까다로웠고 정말 좋아하는 제품 몇 가지 제외하고는 절대 집에 물건을 들이지 않았습니다. 가족들과 세탁기를 구입하는 데 있어서도 디자인을 선택하기 위해 단순히 기능이나 디자인이 아니라 가족이 추구하는 가치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세탁 시간이 중요한지, 아니면 세탁된 옷이 더 부드럽고 오래가는지가 중요한지, 혹은 물을 더 적게 사용하는 세탁기는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도 이야기 했다고 하네요. 조금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그만큼 소비에 있어 자신의 철학과 가치관을 얼마나 중요시 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스티브 잡스의 방은 휑할 정도로 물건이 매우 적다. ⓒ다이애너 워커



특히 요즘은 대중적으로 미니멀리즘에 대한 관심이 많아졌죠. 안타까운 건 여전히 미니멀리즘이라는 생활 방식이 대채로 그저 외형적으로 단순한 디자인의 물건의 구매나 그러한 물건으로 방 안을 채운 인테리어 스타일에 그친다는 점입니다. 어떤 새로운 생활 방식을 받아들이는 일은 생각보다 많은 고민과 경험이 필요한 일입니다. 단순히 생활 방식의 변화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 자신의 가치관을 새로이 정의해야 하는 일이며 지속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 하기 때문이니까요. 그렇기에 정착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던 <소비에 실패할 여유>라는 글에서 그러한 고민의 흔적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던 것 같네요.




히피 정신과 하이 테크의 교차점

이런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에는 인도 여행과 같은 개인적인 경험의 영향도 있지만, 그 근저에는 그를 둘러싼 사회적 문화가 있었습니다.



그가 10대였던 1960년대 말 샌프란시스코와 실리콘밸리에는 다양한 문화적 흐름이 공존했습니다. 그 중에서 최첨단 기술혁명과 함께 컴퓨터광을 중심으로 하는 하위문화와 샌프란시스코 베이에어리어의 비트 세대를 주축으로 일어난 히피 운동, 버클리 대학교의 언론 자유 운동을 발판 삼은 저항적 정치 운동이 큰 물줄기를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개인적 깨달음과 자유에 이르는 길을 추구하는 움직임들도 있었죠.



히피 생활 방식과 컴퓨터에 대한 열정의 융합, 영적 깨달음과 첨단기술의 혼합을 몸소 구현한 인물이 바로 스티브 잡스였다.



진보적인 사회적 문화를 다양하게 흡수하고 자신만의 경험에서 비롯된 가치관이 한 데 어우러져 스티브 잡스만의 세계관을 형성했습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세계관을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우주에 흔적을 남기겠다는 열정의 결과가 바로 혁신을 만들어 낸 본질적인 원동력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4.우주에 흔적을 남기다


인간들은 언제나 자신만의 흔적을 남겼습니다. 벽화에서부터 종이에 역사를 기록하는 행위처럼 정치적, 종교적, 혹은 교육적 목적이 담겨있는 경우도 있고, 개인적으로 순수하게 자신의 존재나 표현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단순하게는 고대에 만들어진 벽돌에 이름없는 일꾼들이 남긴 'fecit(나는 존재한다)'가 적혀 있다거나 과거 미국 흑인 노예들이 작업현장에 제작자 표시를 남긴 경우가 있는가 하면, 더 확장해서 예술가가 세상에 던지고 싶은 메시지나 표현 욕구를 작품을 통해 남기기도 합니다.



Think different.




'다른 것을 생각하라'라는 애플이 표방하는 가치처럼 스티브 잡스는 항상 기존의 관성을 거스르는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했습니다. 편하게 시대가 요구하는 대로 음악을 만들며 살 수도 있었던 밥 딜런이 1960년대에 비난을 받아가며 일렉트로닉으로 변화를 추구한 것처럼, 그리고 비틀즈와 노라 존스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죠. 이들을 움직인 것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신념과 철학이었죠. 스티브 잡스가 그들을 좋아했던 이유도 음악 자체를 넘어 그들의 신념과 철학이었던 셈입니다.



그렇기에 비즈니스의 기본으로 여겨지는 "고객에게 그들이 원하는 것을 줘야 한다"라는 것은 그의 방식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헨리 포드의 "내가 고객에게 무엇을 원하느냐고 물으면 고객은 '더 빠른 말!'이라고 대답할 것이다"라는 말처럼 고객들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른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굳이 새로운 걸 상상하지 않기 때문이죠.


혁신을 꾀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다. 따라서 그것이 내 경력의 주요한 차별성은 아니다. 애플이 사람들에게 공감을 얻는 이유는 우리의 혁신에 깊은 인간애가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훌륭한 예술가들과 훌륭한 엔지니어들이 비슷한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양쪽 모두 자기를 표현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월터 아이작슨, <스티브 잡스> 882페이지



그는 죽기 전 우주에 흔적을 남기고자 했습니다. 그 흔적은 훌륭한 제품 자체 혹은 혁신이 아니라 '영속할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것이라고요. 그것이 바로 애플이고 픽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많은 언론에서는 스티브 잡스가 죽은 후로는 혁신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합니다. 스티브 잡스 자체가 혁신이라는 의미를 내포한 듯합니다. 이에 대해 현재 애플의 CEO인 팀 쿡은 작년 여름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팀 쿡, 애플 CEO

메건 머피(블룸버그 측): 애플이 더 이상 예전만큼 혁신적이지 못하다는 비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팀 쿡: 저희는 장기적으로 투자합니다. 최초에 대한 갈증으로 불안해 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건 저희가 아닙니다. 단지 하나 말씀드릴 수 있는 건, 최고가 되어 사용자들의 삶에 있어 진정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것이죠. 뒤를 되돌아봐도 아이팟은 최초의 MP3 플레이어가 아니었습니다. 아이폰도 첫 스마트폰이 아니었죠. 아이패드 역시 첫 태블릿이 아니었습니다. 비슷한 사례를 계속 이야기 할 수도 있어요.


당장 눈 앞에 보이는 빛나는 것에 현혹되면 가장 큰 숲을 바라보는 시야를 잃게 됩니다. 제가 봤을 때 그 가장 큰 것(숲)은 AR(증강현실)입니다. 저희가 AR을 가장 처음으로 언급한 게 아닙니다. 우리의 목표도 아니었습니다. 플랫폼에 통합시킬 수 있으며 수많은 개발자들이 정말 멋진 것들을 만들어 낼 수 있도록 매우 세심하게 고려한 무언가를 원했습니다. 거기에 우리의 훌륭한 첫 시작이 있습니다.


홈 스피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희는 홈 스피커에 몇 년간 매달려 왔습니다. 이미 다른 누군가(아마존)가 만들었기 때문에 이를 쫓아가기 위한 급박함을 느끼진 않았습니다. 사실 우리가 바라보는 관점에서 이는 경쟁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애플 사용자들의 더욱 나은 삶을 위해 무엇을 개선시켜야 하는 지에 관한 고민입니다.


저희는 가능한 많은 사람들을 돕고 싶기에 그 고삐를 당깁니다. 예를 들어 애플 와치에 SOS 기능을 추가 시켰는데, 이는 사람들이 긴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 잡고만 있으면 자동으로 911에 구조 요청을 보냅니다. 그런 상황들을 인식해서 넣은 거죠. 당신이 홍콩에 있든 전 세계에 어디에 있든 그에 맞는 번호로 말이죠. 몇 일 전에 한 남성으로부터 한 통의 메일을 받았습니다. 그 남성은 자동차 사고를 당해 자동차가 전복되었죠. 그때 자신의 폰을 찾을 수 없었지만 애플 와치를 차고 있었다고 해요. 그리고 그 시계 덕분에 그 남성이 무사히 차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들이 바로 차이를 만들어 내죠.



혁신을 바라보는 다른 관점

그렇다면 언론에서 이야기 하는 혁신을 조금 다른 시각에서 바라볼까요? 위에서도 언급된 내용이지만 스티브 잡스는 혁신은 자신의 차별점이 아니라고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언론에서는 그에게 '혁신의 아이콘'이라는 캐릭터를 부여해 혁신이라는 키워드로 정의해 버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언론에서 혁신이 사라졌다며 비평하는 건, 처음 아이팟이나 아이폰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 경험한 충격의 크기 만큼의 기대를 주지 못해 아쉬움이 남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팀 쿡과 언론이 혁신을 바라보는 시각은 애플의 사업 행위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느냐의 차이인 것 같습니다. 고객에게 더 나은 삶을 주고자 하는 철학과 노력의 결과가 세상에 나와 혁신으로 이어진 것일 뿐, 혁신 자체가 목적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그랬던 것처럼 최초에 연연하지 않고 최고를 추구한다는 팀 쿡의 말에서 그런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스티브 잡스가 없는 애플엔 여전히 그의 DNA가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글을 마치며:

이 글은 정말 가치가 담긴 제품이라면 그 시발점인 철학을 음미해보고자 하는 의도입니다. 글을 읽고 어떤 생각이 드셨는지 궁금하네요. 더 할 이야기는 많지만 모두 담아낼 수 없음에 왠지 아쉽기만 합니다. 아무쪼록 저의 의도가 잘 전달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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