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야기 혹은 관점을 발견하고 싶은 커피 덕후 님
북유럽 라이프스타일에 관심이 많아 힙(hip)함을 느끼고 싶은 당신
커피 문화가 기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살짝 간보고 싶으신 당신
커피로 유명한 곳은 어디일까요?
사람들이 블루 보틀에 열광하는 이유는 철학이다.
혹시 스웨덴의 'fika'를 들어보신 적 있나요?
그렇다면 fika는 이케아에 있어 어떤 의미일까요?
전 커피를 좋아합니다. 커피하면 모닝 커피죠. 아침마다 수고롭게 핸드밀로 직접 갈아서 핸드 드립으로 내려먹습니다. 네, 압니다. 커피를 과하게 사랑합니다. 직접 로스팅한 걸로 내려기도 하니까요.
커피로 유명한 데는 많죠. 나라로 따지면 (*스페셜티 커피 기준으로)미국이나 호주, 일본 정도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포틀랜드, 시애틀, 캘리포니아나 가장 유명하죠. 전 세계적인 스페셜티 커피 붐이 시작된 곳이기도 하고, 그 유명한 블루보틀, 인텔리젠시아, 스텀프타운 커피 등이 시작된 곳들입니다.
*스페셜티 커피: 스페셜티 커피는 고급 커피나 프리미엄 커피 같은 마케팅 용어와는 다른 용어이다. 스페셜티 커피는 스페셜티 커피 협회에서 정한 스페셜티 기준에 따라 커피를 평가하여 100점 중 80점 이상의 커피에 대하여 스페셜티 커피라고 정의한다. - 위키백과
블루 보틀의 커피를 먹어 본 적은 없습니다. 하지만 저와 같이 많은 사람들이 먹어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열광 혹은 기대를 갖는 이유는 사실 맛에 대한 기대도 있겠지만 그들의 철학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커피는 기호 식품이기 때문에 사람마다 선호도가 다르죠. 누군가에게는 블루 보틀 커피가 맛있을 수도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그럴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들의 철학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사람을 아무도 없을 겁니다.
설립 배경은 2000년대 초,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입니다. 너무 과하게 로스팅 된 커피와 커피 기업들에 진절머리를 느낀 한 프리랜서 뮤지션이자 커피 덕후였던 제임스 프리먼은 신선한 커피의 진정한 맛을 제공하기 위해 설립했습니다. 그 당시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저는 손님들에게 로스팅 기계에서 나온지 48시간이 채 지나지 않은 커피만을 팔거예요. 그래야 손님들이 커피의 최상의 맛을 즐길 수 있죠. 그리고 오로지 가장 질 좋고, 맛있으며, 책임감을 가지고 들여온 원두만을 사용할 겁니다.
(요즘엔 보통 4~7일 정도 원두에서 나오는 가스를 빼주는 작업(de-gassing)을 했을 때 최상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지금 블루보틀에서도 그렇게 하고 있구요.)
철학을 느낀다는 말이 누군가에게는 약간 과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우리에게 익숙한 스타벅스만 봐도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간간이 (아메리카노 기준)스타벅스 커피의 맛이 별로라고 하는 분들을 봅니다. 누구는 맛있다고 하고 누구는 별로라고 하고...누가 맞는 걸까요? 물론 기호 식품이기에 무엇이 맞다고 정의한다는 것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맛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제 기준에서 말씀드려 볼게요. 먼저 스타벅스의 로스팅 방식에 관해서 말씀드릴게요. 스타벅스 매장에 에스프레소 기계 위에 있는 원두를 한 번 본 적 있으신가요? 원두 색깔은 시커멓고 윤기가 좌르르한 기름기가 많습니다. 기름기는 로스팅 과정 중에 커피 콩에서 분출된 것으로, 기름기가 많다는 것은 상당히 태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굳이 좋은 원두를 태운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이야기죠. 그 원두만이 지닌 고유의 향이 모두 날아가니까요. 또한 비쌉니다. 비즈니스 측면에서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하는 것은 경영상 가장 중요한 요소 중 하나입니다. 평양냉면 집을 갈 때마다 육수 맛이나 면의 질감이 달라진다면 자연스레 멀리하게 되는 이유와도 같죠. 얼마나 중요한지 이제 아시겠죠? 원두를 오래 로스팅하면 할수록 맛은 일정 상태로 수렴하게 됩니다. 원두가 다르더라도 말이죠. 기업의 입장에선 컨트롤하기 가장 쉬운 방법입니다. 스타벅스가 전 세계에 그 많은 매장을 내고도 어디서 먹든 똑같은 맛을 구현해 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뭐 어쨌든 제 입장에선 스타벅스의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혀가 매우 아립니다. 별로 좋아하진 않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스타벅스에 갑니다. 심지어 저도 가끔 이용하죠. 왜냐구요? 스타벅스라는 브랜드 가치와 공간을 소비하기 위해서죠. 스타벅스에서 공부를 하든 지인들과 수다를 떨든 사람들에겐 적당한 공간이 필요하고, 그런 니즈를 충족시켜주는 서비스가 바로 스타벅스의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커피는 거들 뿐.
스타벅스의 혁신은 에스프레소 베이스 커피 시장을 키워내 전 세계적인 트렌드로 만든 점, 그리고 카페에서 시간을 보내도록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이끌어 낸 데에 있습니다. 스타벅스 로고의 변화에서도 그런 부분을 엿볼 수 있죠. 2011년부터 로고 주변을 감싸고 있던 띠에 씌여진 ‘COFFEE’ 단어가 사라진 데에서 알 수 있습니다. 사업의 확장을 위해 커피를 파는 장소의 의미를 넘어서려는 의도입니다.
커피 산업의 제2의 물결을 이끌었던 스타벅스에 이어 '제3의 물결'이라는 새로운 산업 트렌드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혁신은 단순히 커피 맛의 문제를 넘어 최상 품질의 생두를 생산하는 커피 농장에서 직접 소싱하고, 그 전에는 구현해내지 못했던 커피의 다양한 맛과 향을 끌어내 손님들에게 더욱 책임감있게 전달하고자 하는 태도와 철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그렇게 하는 곳이 우리나라에도 어느 정도 생기긴 했지만, 그 정신을 전 세계에 퍼뜨린 선구자라는 점에서 어떤 특별한 가치를 느끼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블루 보틀이 서울에 오픈한다는 소문이 무성합니다. 만약 을픈 했을 때 커피를 깊이 있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처음에는 일단 유명하고 사람들이 몰리니 호기심에 들러 볼 겁니다. 처음엔 아무 생각없이 왔다가도 또 가고 싶어진다면 그건 무의식 중에 그들의 철학을 느꼈다고 볼 수 있겠죠.
마치 딱히 살 것도 없는데 괜히 무인양품에 들르는 것처럼요. 무인양품에 자주 가 보신 분들은 눈치 채셨는지 모르겠지만 유난히 곳곳에 편하게 앉아 이야기하고 쉴 수 있는 공간들이 있습니다. 매장에 방문한 사람들은 마치 카페에 온 듯 아주 편안한 마음으로 상품들을 체험하죠. 상품을 경험하는 동시에 공간과 상품에서 나오는 무인양품만의 뉘앙스 혹은 철학을 무의식적으로 느끼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를 통해 커피에 대한 철학을 공유하고 커피 산업의 생태계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려는 트렌드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며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고 여유를 가지는 태도가 하나의 문화인 곳도 있습니다. 바로 *휘바국 옆동네 '스웨덴'입니다.
*휘바국 = 핀란드
스웨덴에는 'fika'라는 커피&케이크 문화가 있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아무리 바쁘더라도 친구 혹은 동료들과 함께 매일같이 fika를 위한 시간을 냅니다. 그렇다고 혼자 앉아서 먹는 건 fika가 아닙니다. 그건 그냥 커피 브레이크죠. 단순히 그냥 커피랑 케이크를 먹으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표면적인 문화가 아니라, 그들의 표현에 의하면 '스웨덴인에게 중요한 하나의 마음가짐 혹은 태도'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하루도 빠짐없이 행하는 하나의 리추얼Ritual 입니다. 언어에는 문화가 반영되어 있죠. fika는 명사이면서도 동사로 쓰일 수도 있습니다. 스웨덴 사람들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Let's go and fika", "You and I fika together so well."
스웨덴에 가면 인사인 말인 hej(안녕하세요)와 tack(고맙습니다) 다음으로 가장 먼저 배우는 단어가 fika라고 합니다. 그만큼 많이 사용할 정도로 정착되어 있는 문화죠.
스웨덴 사람들에게 'fika'는 마음가짐이자 태도예요.
실제로 스웨덴의 핵심 기업 중 하나인 볼보Volvo의 공장에서도 fika를 즐기는 시간만큼은 하던 일을 멈추고 공장 구석으로 가서 같이 즐긴다고 하네요. BBC에서는 이케아의 기업 홈페이지에 이런 문구가 기재되어 있다고 소개합니다.
단지 커피 브레이크 이상을 의미하는 fika는 동료들과 함께 서로 소통하고 휴식을 취하며 시간을 공유하는 것입니다. 최고의 아이디어와 의사결정은 fika에서 비롯됩니다.
이케아의 창업주인 잉그바르 캄프라드는 계급제나 위계질서 같은 수직적 문화에 대해 극도의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직원들을 자신의 동료co-worker라고 부를 정도로 ‘동료애’를 중요시한다고 합니다. 아마 스웨덴의 fika 문화의 영향이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네요.
우리나라같이 수직적 조직 문화가 자리잡고 있는 사회에서는 사실 상사가 커피 한 잔할 때와는 다른 상황입니다. 대체로 쉬러 간다는 느낌보다는 살아남기 위해 눈치보느라 또 다른 생존 스킬이 풀가동되는 순간인거죠. 그래서 싸구려 자판 커피가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들어가는지 모를 때도 많습니다.
스톡홀름 상공회의소의 안드레아스 아스트롬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스웨덴식 경영 스타일은 대부분의 다른 나라 기업들과는 다릅니다. 수평적이며 그리 수직적이지도 않습니다. fika라는 공동체적 성격을 통해 직원과 경영진 사이에 서로 소통하고 이야기 하는 것이 더욱 자유로워집니다. 모든 구성원들에게 회사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여줄 수 있는 아주 훌륭한 방법이죠.”
근본적 사고방식의 차이.
스웨덴의 ‘fika’라는 문화가 생산성과 기업문화, 더 나아가 경영 스타일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히 커 보입니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근본적으로 출발점이 다르다고 볼 수 있죠. 우리나라에서는 내부적으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만, 스웨덴에서는 이미 자리잡혀 있는 사회적 문화이기에 경영적 측면에서나 경제적인 측면에서도 그 생산성과 효율성이 높을 수 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소통의 사고방식의 시발점이 완전히 다른거죠. 기회가 된다면 직접 스웨덴에 가서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고 싶은 생각이 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