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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Aug 08. 2022

자기 선언이 중요한 이유

성찰과 검증의 증명

흔들림의 이유

사람들에게 흔들림이 있는 이유는

자기규정, 자기 선언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선언이란 스스로 '나는 누구다!'라는 선포다.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떠한 삶을 추구하며,

지금 어떻게 살고 있고,

현재 잘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이며,

부족한 부분은 무엇인지 명확히 인지하여,

자신이 꿈꾸는 모습과 세상을 향한 바람을 공식화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이다!'라고 스스로를 인정하고 선포하는 행위다. 그것을 자기만의 노트에 쓰고, 소리 내어 선포한다.


인정, 자기 선언의 힘

이렇게 스스로 자기 성찰과 검증, 검열과 반성은

더 나은 상태로의 변화와 성장을 위한 인격적 성숙의 표현이다.

이것이 필요한 이유는 사람은 스스로를 그렇게 인정하면 그 상태로 살고자 하며, 나아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자 절제하고, 노력한다.

누가 나를 인정해주면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살아야 하는 사람처럼 느끼는 것과 같은 효과다.

인정이란 그렇게 강력하다.

무언가를 인정하면 그렇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이기에 자기를 통제하는 힘을 갖는다.


인정과 사과

그래서 사람들이 타인이 잘못을 지적하면 인정하려 들지 않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인정하는 순간 그런 사람이라는 것을 시인하는 것이기에 사람들은 그렇게 거부한다. 사과 또한 같다. 사과를 하는 것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사과를 하면서도 자기변명을 늘어놓아 몇 번에 걸쳐 다시 제대로 된 사과를 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는 잘못 인정하기를 그렇게 사람들이 두려워하며, 싫어한다는 의미다. 인간 심리가 그렇게 복잡 미묘하다. 최대한 가려서 포장에 포장을 하려는 심리가 저 밑바닥에 깔려 있다.

사과와 인정이 그래서 어렵지만 그것이 중요한 이유는 스스로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더 나은 사람이 되게 만드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심리는 놀라워서 이렇게 작동한다.

거부하면 사람은 지속한다. 하지만 인정하면 지속할 수 없다.

과거의 잘못을 버리고, 더 나은 미래를 추구한다.


거부의 무서운 효과

모든 사람이 당신은 그런 사람이라고 하는데, 자신이 거부하면 자신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환상에 빠진다. 그래서 그는 그걸 지속할 수 있게 된다. 자신이 그 행위를 할지라도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했으니 계속해도 상관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이래야 자신에게는 자기모순에 안 빠진다. 자기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스스로 선언했으니 계속 나쁜 짓을 해도 그에겐 상관없는 것이다.

그래서 나쁜 사람은 자신이 나쁜 사람인지 모른다는 것이다. 자신을 아는 것이 그래서 중요하다.


인정의 놀라운 효과

하지만 다른 사람이 잘못이라고 말할 때, 그것을 인정하면 자신은 그런 나쁜 사람이 된다. 그래서 고통스러운 것이다. 자신이 나쁜 사람이 아닌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들이 모두 당신은 잘못했다고 인정하라고 한다. 고통스럽지만 그것을 받아들이면 그는 스스로 자신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게 된다. 잘못되었는데도 계속하면 그 또한 자기모순에 빠진다. 아는 것과 행하는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힘들어도 인정과 사과를 한 후에는 올바르게 살려는 힘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진리와 인문학적 지식(문학, 예술, 철학, 심리학, 종교, 영성 등)을 많이 알면 알수록 고통스러운 것은 아는 것과 삶의 언행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모를 때는 상관없었던 일도 알게 되면 그것이 상관없지 않다. 아는 것은 행해져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의식과 학습 효과

시민의식이 높다는 것은 교양 있는 지식을 쌓아 삶 속에서 질서와 규칙, 예절과 배려들이 누가 말하지 않아도 생활 속에서 스스로 실천하기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대한민국의 시민의식이 높은 것은 대한민국 전체가 스스로 배운 지식들을 삶 속에서 실천하려는 의지가 강하고, 그걸 경험하면서 스스로 내적 충족의 경험과 만족이 쌓이면서 지속하는 내공이 강해졌기 때문이다. 이것이 경험을 통하여 배우려는 학습 효과다.

물론 이웃을 이롭게 하려는 홍익인간의 민족성이 오랜 역사의 시간 속에서 DNA에 뿌리내린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여기에 눈치와 센스의 빠름도 한몫했으며, 답답하거나 옳지 않은 것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서 빨리빨리 하도록 도와주는 참견이나 '우리'라는 개념과 정(情)을 통하여 간섭하는 성향도 대한민국이라는 공동체에 조미료와 같은 역할을 했다.


양심의 작동 원리

왜 인간 마음의 심리가 이렇게 작동하는가?

그것은 양심이라는 내적 나침반과 같은 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양심은 무엇을 인식하면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명확하게 가리킨다.

어린아이는 이 양심의 기관이 잘 발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양심 없는 짓을 할 때도 있다. 하지만 성장하면서 이 양심은 강력한 바로미터로 작동한다.

양심은 잘못된 말이나 행동을 하면 마음이 꺼림칙한 느낌으로 나타난다. 한마디로 기분이 나쁘다는 것이다. 올바른 말이나 행동을 하면 기분 좋은 느낌으로 나타난다.

그래서 기분 나쁜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모두 기분이 상하는 것이고, 기분 좋은 말을 하면 듣는 사람이나 하는 사람 모두 기분이 좋은 것이다.

'너는 양심도 없냐?'라고 말하는 것은 '너의 이기심만을 위해 상대방에게 손해를 끼치는 것은 옳지 않아! 그것은 잘못된 행동이니까 하지 마!'라고 항변하는 말이다.


우리의 내적 심리는 이렇게 작동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당신이 잘못했다'라고 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기분이 나빠진다. 평소 하던 습관대로 했는데, 잘못이라는 말을 들으면 당연히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잘하지 못한 행동이라고 하니 기분이 상하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것과 상충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잘못된 행동이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한 두 명이 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말한다. 그때 그는 갈등한다. 이것을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거부할 것인지를.

인정하면 그는 바뀌기 시작한다.


인지부조화의 인간 심리

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그는 자신의 행동이 옳다고 밀고 나가는 것이다. 그는 양심이 자신을 괴롭히기 때문에 그 상충된 마음의 작용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자신의 행동이 스스로 옳다고 세뇌하는 것이다. 이러한 과정을 심리학에서는 인지부조화라 한다. 인간의 자아는 내적 존재와 갈등이 생기면 그것을 양심이 들려주는 바로미터에 의해 조정하려는 심리를 갖는다.

그 조정이 거부와 부정적 성향으로 흐르면 그는 불평과 불만, 짜증과 분노, 우울과 불행한 삶으로 점점 쌓여간다. 그래서 폭언과 폭력적이 되며, 분노조절장애와 같은 화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삶에 대해 부정적이며, 타인과 갈등을 멈추지 않는다. 인생이 불행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 조정이 인정과 긍정적 성향으로 흐르면 잠시 고통스럽지만 그는 감사와 기쁨, 미소와 배려, 나눔과 행복이 가득한 삶으로 쌓여간다. 그러므로 이 사람은 인생이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인지부조화란 마음속에서 분명히 틀렸다고 했는데, 스스로 그것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분명 상충되었지만 그 상충됨을 인정하는 상태로 사는 것은 더욱 힘들다. 그래서 완충 보완재로 인지, 곧 알고 있는 것과 부조화시킴으로 양심의 작용을 조금이나마 상쇄시킴으로 살아가려는 영혼의 발버둥이다. 그렇게 거짓으로 사는데, 스스로는 거짓이 아니라고,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내적으로 소리치면서 살아야 하니 얼마나 고통스럽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위선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겉과 속이 다른 이중성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스스로를 그렇게라도 거짓으로 포장해야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기 때문이다.

범죄자들이 가끔 수년이 지나고, 공소시효가 만료되었어도 자수하는 것은 그런 양심의 소리로 인해 그 고통과 갈등을 견딜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 내적 갈등으로 인해 무서운 꿈을 꾸거나 밤에 잠을 잘 수가 없다. 양심의 소리는 그렇게 무섭게 작동한다.


인지부조화의 역사적 교훈

친일파들이 그랬고, 밀고자들이 그랬으며, 사기를 치고, 거짓말을 밥먹듯이 하며, 국민을 위한다고 입으로는 말하지만 온갖 추악한 정치를 하는 인간들이나 독재시대 반대파를 숙청하기 위해 간첩으로 몰아 사법 살인과 국가 폭력을 행사한 검찰과 사법부의 수장들이 그런 삶을 살았다.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 아낌없이 바친 사람들에게 살인적 고문을 행한 인간들이 버젓이 당당하게 살아가는 이유가 모두 인지부조화를 통한 양심을 소리를 꺾고, 더러운 거래를 통해 양심을 무마하고, 팔아먹었기 때문이다. 진리를 가르친다는 종교인들 가운데도 그런 인간들이 수두룩하다.

그런데도 그들은 잘못을 시인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렇게 되는 순간 그는 천하의 패악질을 한 살아서는 안 될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역사의 죄인인 것을 모두가 이미 아는데, 스스로의 입으로는 그것을 거부해야 그나마 자신이 괜찮은 존재로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이들은 계속 자기 세뇌를 통해 자기부정의 삶을 자기 긍정으로 치환한다.


양심에 화인 맞은 인간들

그럼 이렇게 부정적이며, 거짓되고, 추악한 삶을 긍정화시키는 인지부조화 작업의 결과는 어떻게 변형되는가?

한마디로 양심을 팔아먹었기 때문에 소시오패스나 사이코패스화 된다. 점점 잘못이 커지고, 거짓을 거짓으로 치환하면서 나중에는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도 분별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르게 된다. 일베나 차별을 심하게 하는 인간들, 그리고 일본의 극심한 극우단체들이 그런 인간들이다. 역사를 부인하면서 독일에 가서 위안부는 거짓이라는 망상에 빠진 인간들이 구제불능으로 양심에 화인 맞은 자들이다.

이들을 성경에서는 '양심에 화인 맞은 자'라고 했다. 양심이 굳어져서 양심 자체가 없는 짐승처럼 무지하게 살아가는 존재로 낙인이 되었다는 의미다. '이 짐승 같은 인간아!'라는 말은 이미 인간이 아니라는 선언이다. 예수님은 이들을 '독사의 새끼들'이라고 했다. 결코 이들은 설득하거나 교화로 바뀔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돈과 악마의 하수인이 되어 사악하게 살아가고 있으니 관심을 끄라는 의미다. 이들에게 처벌은 법적인 강력한 제재나 불법 이익의 환수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늘의 천벌만이 그나마 자신의 삶에 대하여 후회하게 만들 수 있다.


지식이 지혜로 나아가지 못하는 이유

하지만 선하고, 올바르게 살고 싶은데 방법을 모르므로 갈등과 방황하는 사람들이 있다.

책이나 강의도 많이 듣고, 어떤 사람은 나름 종교 생활도 꽤 오래 하면서 더 나은 삶을 살고자 하는데 그것이 그렇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사람들은 마치 수학에서 정답은 알지만, 그 정답이 나오기까지 풀어지는 과정을 모르는 것과 같다.

좋은 글이나 말들은 들어서 많이 알고 있지만, 그것을 어떤 경우 어떻게 대처하는지 논리적, 체계화된 방식으로 적용되는 프로세스를 모르는 것과 같다. 그리고 일어나는 현상이나 말과 행동 속에 감추어진 내적, 심리적 의미를 명확하게 분석할 줄 모르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그렇게 배운 지식을 삶에 어떻게 적용하는지 명확한 연결 고리를 언어적으로 인지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언어적으로 인지함이란 어떤 사건이나 문제, 갈등과 고민에 대하여 상대방에게 언어적으로 논리와 근거에 의해 설명, 전달할 수 있어야 하며, 단순 설명을 떠나 상대방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단계까지 나아갈 때 그는 그 지식에 대하여 명확하게 인지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지식을 배운 사람으로서 지혜로움으로 성장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선언이 중요한 이유

이렇게 지식이 지혜로 성숙해지려면 자기가 알고 있는 지식에 대하여 자기 선언이 이루어져야 한다. 이렇게 자기 선언을 할 때 사람은 '나는 어떤 사람이다!'라는 규정이 만들어지면서 스스로 신념이 쌓인다. 그런 신념들은 자기 가치관을 형성하면서 스스로 정체성이 확립된다. 나이가 들어도 내가 누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 어떤 것은 거절하고, 어떤 것은 수용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정체성이 없기 때문이다.

정체성 확립을 위한 배움이나 연습은 한 번도 해보지 않고서, 아니 어떻게 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떻게 그런 것이 만들어질 수 있겠는가? 그래서 중년이 되어 방황하고, 갈등하는 사람들은 그런 지식과 지혜를 쌓지 않았기 때문이다. 청소년 때부터 형성되어야 할 자아정체성이 오로지 생계를 위한 경쟁과 수능 공부로 인하여 인생 공부를 게을리하였기 때문이다.


자기 검증을 통하여 성찰하고, 그 검증에 맞는 사람임을 입증하면서 어떠한 방향으로 살아갈 것인지를 자기 스스로 규정하고, 자신의 현재와 미래 존재 상태를 선언하는 것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

사람은 그렇게 선언할 때 그런 사람임을 증명한다. 증명되지 않는 상태는 항상 가상의 상태라 오락가락한다. 그래서 그렇게 기분 좋다가도 어떤 부정적 감정의 파도가 몰려오면 그토록 땅으로 고꾸라지는 것이다. 갈등은 그래서 반복된다. 이것이 맞는지 저것이 맞는지 헷갈리는 것이다.


언행일치와 인생철학

한번 증명을 하고, 그렇게 선언한 사람은 그 상태를 떠올리며 다시 바로 선다.

이러한 자기규정과 선언을 통한 증명이 매 순간 반복되어야 한다. 그때 자기 믿음이 생기고, 자기 신뢰의 상태에 도달한다. 반복된 신뢰가 신념이 되며, 그 신념은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하게 인지한 자기 가치관을 형성한다. 알고 있던 지식이 완전히 몸에 배어 체화된 상태, 곧 언행일치를 이룬 것이다.

그 가치관이 인생철학이다.

이들은 생각을 통한 사고의 작용이나 느낌을 통한 감정의 작용을 초월하여, 어떤 도움이 필요한 상황을 보면 인식하기도 전에 몸이 먼저 반응하여 선(善)을 행한다. 몸에 진리가 배었기 때문이다.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나 지하철에서 일본인을 구하려다 사망한 의인 이수현 같은 분들이다. 이들은 자신보다 먼저 남을 생각하는 의인들로 생각보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삶의 철학이 완성되면 또 다른 제자들에게 길을 알려주는 진정한 멘토와 코치가 된다.


그때 그는 저 높은 산의 정상에 이르러 이렇게 선언한다.

"스스로를 신뢰하는 순간 어떻게 살아야 할지 깨닫게 된다"라고 (괴테)

이제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깨달은 것이다.

이것을 아는 것이 통찰이다. 공자는 이를 '일이관지(一以貫之)'라 했다.

하나의 이치로 모든 것을 꿰뚫는다는 의미다.


나는 누구다!

나는 어떤 사람이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이다!


나는 신성한 존재다!

나는 진리와 진실을 사랑하며, 이타적인 사람이다!

나는 인류의 공존을 위한 행복과 사랑을 나누며,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살아갈 것이다!

나는 신성한 존재의 성품을 닮아 그것을 삶에서 구현할 것을 선언한다!


이것은 하나의 예시다.

좀 더 디테일하게 쓰거나 또는 현실적으로 쓸 수 있다. 각자 삶의 방식이나 가치관에 따라 그것은 설정한다. 다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스스로를 신뢰하는 행위다.

스스로를 신뢰한다는 것은 내가 누구인지 명확히 깨달았다는 의미다.

당신은 누구인가?


동물의 세계처럼 약육강식의 세계에서 강자에게 물고 뜯기며, 무시와 모멸감 속에 슬금슬금 눈치나 보면서 하루하루를 생존의 두려움으로 살아가는 가녀리고 슬픈 존재인가?

아니면 먹고살기 위해서만 태어난 존재인가?

아니면 마약 하고, 살인하고, 도둑질하며, 온갖 폭언과 폭력으로 살아가려고 이 지구에 태어났는가?

아니면 평생 월급만 받고, 기술과 재능을 갈아 넣기 위해서 인생을 살아가는가?


아니다.

우리는 그 이상의 존재들이다.

생계를 위한 직업도 충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와 가치를 추구하며, 그것이 무엇인지 배우고, 깨달아 그것을 이 땅에 구현하는 것 바로 그것이 인간이 이 땅에 살아가는 의미다. 철학가와 성현들은 그것을 외쳤다.

주 1회 아니 한 달에 한 시간만이라도 더 나은 가치를 지닌 취미와 자기 계발을 위해 투자하라.

삶이 풍요로운 느낌은 외적인 것으로는 항상 2% 부족함을 느낀다.

사람들은 그것이 왜 그런지를 모르며, 어떻게 해야 그것을 채울 수 있는지도 모른다. 이는 오직 자기 내면의 만족을 이룰 때 마음의 평안과 함께 진정한 행복도 찾아옴을 스스로 발견한다. 내면의 만족을 이룬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평안함과 안정감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여유와 함께 잔잔한 미소와 행복이 스며 있음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자기 선언을 통해 만들어낸 결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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