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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Jan 07. 2022

인연의 바다

  어머니가 남긴 선물

  마음이 내려 앉아 길을 잃으면,

  다시 길을 찾아 걷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왜 성격이 안으로만 안으로만 향하도록 주눅 들었는지 알 수 없었지만,

  고등학생이 되었어도 교무실에 들어가는 것을 무서워했다. 


  아마도 어머니의 성격을 닮지 않았는가 생각이 든다. 일제강점기 어머니는 17살의 어린 나이로 엄한 시부모가 있는 가난한 농가로 시집을 오셨다. 가난했기에 그 가난을 벗어나고자 아버지는 일본 홋카이도 광산으로 징용을 선택했다.

  지금으로 생각하면 고등학교 1학년 나이인 어린 신부는 신혼의 꿈도 없이 이별의 삶을 살아내야 했다. 그 어린 나이로 시부모를 부양하고, 더구나 시어머니는 치매로 3년이 넘도록 온갖 수발을 들어야했다. 그러면서 소와 돼지, 닭을 키우고, 논밭을 돌보며, 살림살이에 8남매의 아이들을 키워냈다. 어렸을 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은 밤늦게까지 뒷산 너른 밭을 매고, 달이 떠오른 시각에야 집으로 들어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식민지속 가난의 생활은 살아있는 것이 고통처럼 느껴진다. 


  다시 그 순간을 떠올리며 글을 쓰고 있는 동안 그 아픔과 외로움이 긴 침묵을 타고 가슴으로 파고든다. 벌써 오래 전 돌아가셨기에 기억에서는 많이 흐려졌지만, 그 순간을 살아냈을 어린 소녀의 심정으로 들어가려하니 예전 점촌에서 위암으로 홀로 휴양하면서 사람을 만나고 싶었지만 만날 수 없었던 지독한 외로움에 떨고 떨었던 기억이 떠올라 슬픔이 밀려온다.

  그때는 친구들이 서울에 있었기에 보고 싶었지만 갈 수가 없었기에 사람을 만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었다. 너무 외로워서 친했던 친구에게 전화를 했는데, 그 친구도 삶이 바빠 내려올 수 없다고 했다. 우리는 이렇게 부모 세대보다 훨씬 풍요로운 세대를 살아가면서도 생계를 위해 삶이 너무 바쁘다. 진짜 그때는 살아있다는 것이 더 힘들도록 지독한 외로움은 내 영혼을 짓눌렀다.


  그때가 40대 중반이었다.

  그런데 어머니는 10대 후반의 소녀였다.

  그 어린 소녀였던 어머니는 얼마나 외로우셨을까?

  친정 부모님이 얼마나 보고 싶었을까?

  아무도 모르는 타지에 홀로 뚝 떨어진 어린 아이는 얼마나 밤이 무서웠을까?

  만나고 싶어도 갈 수 없고, 도망가고 싶어도 도망갈 수 없고, 말하고 싶어도 말할 친구도 없었던 시절을 어떻게 견디어 냈을까?

  글을 쓰기 전에는 잊혀진 기억이었지만,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도 모르게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른다. 


  글을 쓴다는 것은 감정을 어루만지는 작업 같다.

  그리고 기억의 대상들과 다시 만나 풀지 못했던 회포를 푸는 시간들의 만남 같다. 다시 그 시간을 되돌릴 순 없지만 그래도 미안했던 감정, 죄송했던 감정, 말하고 싶었던 감정 그리고 진짜 사랑했다고 말하지 못했던 감정을 쏟아내는 그런 시간 말이다.

  어머니는 내 곁을 떠나갔지만 이제 글로나마 나의 어머니로 와 주셔서 감사했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사랑한다고, 아주 아주 많이 사랑한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그때는 너무 어려서 몰랐고, 나이 들어서는 내 갈 길로만 갔었고, 결혼을 하여 살면서도 어머니의 삶을 몰랐습니다. 그땐 너무 철이 없어서 몰랐습니다. 왜 그때는 고마웠다고, 사랑한다고 말이라도 한번 해드리지 못했을까요? 그 수많은 시간을, 그 아프고 힘들었던 날들을 어찌 홀로 안고 견디셨는지요? 이제 아픔이 무엇인지, 외로움이 무엇인지, 슬픔이 무엇인지, 홀로 남겨진다는 것이 무엇인지, 삶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면서 어머니의 삶을 더듬어갑니다. 다시 만나서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언젠가 우리의 시간이 되면 다시 꼭 만나요. 그때 큰절로 문안 인사드리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나의 어머니!” 


  그 가난한 농촌에서의 시간을 뒤로 하고 우리 가족은 하나 둘 서울로 자리를 옮겨왔다. 8남매와 두 부모님, 10명이나 되는 식구가 2층 단칸방과 좁은 다락방을 우리의 터전으로 겨울이면 벽에 성에가 끼는 그런 추위를 이겨내면서 다가올 미래에 대한 무관심속에 학창시절을 마냥 놀기 좋아하는 소년으로 보냈던 것 같다.

  먼저 형님들과 누님들이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할 때 어머니는 가을걷이를 마치면 어린 자녀들을 아버지와 같이 남겨두고, 이것저것 살림을 챙겨 뒷바라지 하러 홀로 상경하셨다. 농사에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겨우내 식모 아닌 식모살이와 같은 시간을 보내시곤, 봄이 되면 다시 시골로 내려와 농사짓고, 시부모와 남편, 남은 자녀들을 챙기셨다. 


  형님들이나 누님들은 모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는 서울로 그 어린 아이들을 어머니는 품에서 떠나보냈다. 시골 깡촌에서는 먹고 사는 것이 힘들고, 그 당시 중학교에 보낼 학비가 없었기에 8남매의 미래 살아갈 길을 위해 어머니께서 그런 결정을 하신 것 같다.

  아버지는 남자였어도 그걸 반대하였고, 서울로 떠나갈 때도 많이 우셨지만, 어머니는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그 후로도 많은 삶의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어머니는 너무나 힘든 시간들을 살아오신 내공이 있었기에 겉으로 슬픔을 표현하는 일이 없으셨다. 그 울지 않음의 의미를 세월이 많이 흐른 후에야 알 수 있었다.

  한번은 큰형님이 일하는 곳에서 프레스 장비에 손가락이 잘라나간 사건이 있었다. 그때가 중고등학생 청소년기인데 아무리 표현을 하지 않으신다지만 어린 나이에 고생을 해본 어머니로서 큰아들의 고생과 아픔을 어떠한 심정으로 바라보셨을까?

  아들보다 더 속으로 통곡하시면서 우셨을 것이다.

  그때는 하나의 이야기로, 하나의 사건으로 무감각하게 느껴지던 것들이 나이를 먹고, 수많은 삶의 경험들을 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그 당시를 글로 회상하면서 어머니의 심정이 가슴으로 다가온다. 


  인생이란 하나의 수레바퀴 같다.

 어릴 때는 동심의 세계에 천방지축 뛰어놀고, 청소년기 자기들의 세계에 갇히고,성인이 되어 생계의 전쟁에 바쁘게 살다보면 어디로 가는지 모르면서 달려간다. 하지만 그런 바쁨의 시간이 지나면 자신과 자신의 주변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찾아온다.

  그때 그런 길을 달려갔던 부모님과 만난다. 그냥 어른이기에, 그냥 나의 부모님이기에 당연히 나를 키워준 줄 알았던 순간들이 그렇지 않았다는 것에 당황한다.

  아! 나의 어머니도 어린 소녀였고, 마냥 놀고 싶었던 청소년기를 살아왔고, 자기만의 세상을 살고 싶으셨던 꿈 많은 여인이었다는 사실을 인식하면 미안함과 함께 그런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가끔이라도 아주 가끔이라도 그런 마음을 노크해보려고 관심조차 주지 않았던 어리석음에 가슴이 아려온다.

  어찌 그리도 무심할 수 있을까?

  어찌 그리도 매정할 수 있었을까?

  얼마나 많은 수레바퀴를 돌아야만 우리는 우리의 부모님을 이해하는 시간을 살아낼 수 있을까? 


  이 시간은 오로지 어머니와 만나고 싶다.

  아버지에 대한 시간도 기회가 된다면 꺼내고 싶지 않은 기억의 저장고에서 감정을 토해내는 시간이 오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시 어머니를 만날 수는 없지만 이제 조금이나마 편안한 마음으로 어머니를 보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주어진 시간 어머니께 해드리지 못한 마음에 간직했던 미안함의 조각을 하나씩 떼어 향기로움으로 입혀 가리라. 고맙고 감사해도 말하지 않았고, 알고 있어도 말로 전하지 못한 사연들이 이제는 상대방이 알 수 있도록 따뜻하게 속삭여 주리라.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우리 엄마에게 진 빚이 있어서 그걸 갚고 가고 싶다고 말이다. 남겨진 시간만이라도 후회하지 않도록 마음껏 내가 알고 있는 사랑을 표현하면서 살겠노라고 약속한다. 


  “어머니! 당신의 아들이 알을 깨고 나왔어요. 당신의 사랑의 힘으로 말이에요. 예전에 그렇게 내향적이라서 표현하지 못하고, 사람을 두려워하고, 항상 위축되어 세상을 무서워했던 그런 깊은 구덩이에서 나와 밝은 빛의 세상으로 이제 걸어갑니다. 당신의 침묵 속에서, 당신의 아픔 속에서, 당신의 눈물 속에서 오로지 자식만을 위해 걸어가셨던 그 사랑 때문입니다. 이제 저는 두려워하지 않아요. 이제 저는 사람을 좋아해요. 그들을 만나기 위해 그들 곁으로 가는 법을 배웠어요. 어머니의 사랑의 힘으로요. 그 사랑의 약속 지키며 살아갈게요. 걱정 마세요. 이제는 앞으로만 앞으로만 계속 나아갈 거에요. 사랑합니다.” 


  골짜기의 계곡을 따라 시냇물이 흐르고, 다시 강을 만나 바다로 흘러간다. 골짜기에 있을 때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흐름에 맡겨 인연을 따라 가는 법을 배우니 따뜻함이 느껴진다. 저기 저 넓은 들판을 지나 흐르는 강은 따사로운 태양의 빛을 받아 나에게 내리 쪼인다. 차가운 계곡 물에 닫혀진 마음이 그 빛살을 받아 윤슬처럼 아롱지게 빛난다. 이제 더 큰 바다로 여행할 시간이다. 인연의 잔물결이 어루만지면서 대양의 파도치는 푸른 물결 속으로 나를 데려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주저함을 잊은 나는 이제 두려움도 물결 속 내맡김에 스쳐지나가는 과정임을 알아차렸다. 


  저 바다로 가기 위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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