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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Aug 14. 2023

목적의식 目的意識

네가 여기에 있음은 이미 의미가 있는 삶이야!


목적(目的)이란


목적이란 실현하려는 일이나 그 방향성 또는 실현하려는 목표의 관념이다. 목표가 도착지라면 그것을 왜 하며, 무엇 때문에 거기에 가려는가 하는 의도 또는 동기다


'나는 그것을 하려는 관점이 이것이다!'와 같이 표현된다.



의식(意識)이란


의식이란 깨어 있는 상태에서 자신이나 사물을 인식하는 작용이다. 우리는 모두 대상을 본다. 하지만 그건 견(見)의 상태이며, 관(觀)의 상태로 보지 않는다. 견(見)은 무관심으로 스치듯 지나가지만, 관(觀)은 의식적으로 관찰, 인지하며 본다.


이 차이는 완전히 다르다. 견(見)은 상대가 말을 할 때 딴짓하며 들으므로 기분 상하게 하며, 관(觀)은 경청하는 자세로 호응과 지지를 보내며 듣기에 기분이 좋아진다. 건성으로 보느냐 아니면 집중과 몰입으로 보느냐의 차이다.


깨어 있는 상태란 불교나 기독교에서 말한 것처럼 각성한 상태의 알아차림으로 정보를 능동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다.



목적의식(目的意識)


그러므로 목적의식은 무엇을 할 때 명료한 과정과 지향성을 필요로 하는 것이다. 삶의 목적성, 곧 목적의식이 있는 사람과 목적의식이 없는 사람은 완전히 다르다.


길을 걷는 사람에게 어디 가느냐고 질문할 때, 한 사람은 서울 간다고 하고, 한 사람은 어디 가는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몇 날 며칠을 방황하며 걷는 것과 같다. 그는 시간과 비용과 체력을 소모하듯 인생을 소모하는 것이다.


물론 목적한 대로 인생이 살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방향성이나 삶의 취향성들을 찾아 함께 나누며, 시간을 들여 쌓아 가는 사람과 마냥 시간을 죽이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중년이 지나면서 확연히 갈리며 현실이 구체화된다.



정체성의 혼돈


정체성의 위기나 가치관의 혼란이라는 단어가 중년의 나이를 먹으면서 생활은 안정되어 가지만, 내적 갈등과 외로움, 방황과 고독, 우울감은 도피처를 찾지 못하는

고독한 영혼으로 전락한다.


이것은 삶에 대한 목적의식의 상실로 찾아온다. 물론 현시대는 정글과 같은 경쟁과 각자도생의 고립 사회로 말미암아 젊은층이나 학생들에게도 나타난다.


혼돈이 온 이유는 간단하다. 정신이 피폐해지는 삶, 곧 정신이 배고픈 삶을 선택하며 오랜 시간 살아온 것이다. 벗어나려면 어떻게 하는지 그 방법을 찾아 배고픔을 채워야 한다.



생계와 정신을 위한 삶


사람이란 존재는 두 가지를 양립할 때 존재할 수 있다. 하나는 생계를 위한 삶이요

다른 하나는 정신을 위한 삶이다. 생계는 가족과 자신을 위한 것이요 정신은 삶에 대한 의미와 가치 투자다. 삶이 가치를 느끼려면 정신이 보람을 느끼는 의미 있는 일을 별도로 찾아서 해내야 한다.


육체의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하듯, 정신의 건강을 위해 가치 투자를 한다.


단순히 오감이 즐거운 것들, 곧 운동, 영화, 게임, 드라마, 여행 등은 마치 술이나 마약처럼 일시적 효과만 있다. 그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다. 안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다. 그것은 단순히 취미나 취향이다. 스트레스 해소나 즐거움으로는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정신의 배고픔 현상


하지만 그것을 다시 재가공하는 2차원적 접근을 할 때만 정신이 살찌우는 단계로 나아간다. 의미 부여는 그때부터 이루어진다. 삶이 무의미하고, 공허하고, 외롭게 느껴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과정의 삶을 모르거나 하지 않기 때문이다.


육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밥을 먹지 말라고 해도 먹는다. 왜냐하면 죽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이 죽는 것은 무엇인지 인지하지 못하기에 아무것도 안 하거나 또는 배고프다고는 하면서 무엇을 해야 그 영혼의 고픔을 채우는지 모른다.


영혼이 곤고하고, 삶이 재미없고, 무료하거나 지겹고, 무엇을 해도 의미가 없고, 삶이 짜증 나거나 분노하는 것들은 모두 정신이 배고픈 현상이다. 이것은 물질이 풍요하고, 그렇게 물질적 부(富)만을 최고로 여기는 사회로 나아갈 때 더 심해진다. 왜냐하면 정신과 물질의 차이가 더 극명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관찰 그리고 재해석과 의미 부여


무엇을 하거나 무엇을 보았으면 자신만의 언어로 이해한 부분에 대하여 재해석하여야 한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지금까지의 지식은 모두 남의 지식이기 때문이다. 내 지식은 하나도 없었다.


먹고살기 위한 기능인을 위한 지식은 있어도,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내가 아는 지식, 곧 나의 지식은 하나도 없는 것이다. 그래서 무엇을 해야 옳고, 무엇을 해야 행복하고, 무엇을 할 때 행복하지 않고, 불행하게 되는지 명료하게 인지해야 선택적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남의 지식만 가지고 있으니 타인에게 조언을 해도 힘이 없다. 머리로 알기만 많이 알았지 자기도 그렇게 살지 못한다. 왜 사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누구를 조언해 주겠는가?


하버드 졸업생을 대상으로 10년 후의 삶을 조사하였다.

생각 없이 사는 26%의 사람은 하버드를 졸업했어도 가난하게 살았다.

열심히 사는 58%의 사람은 평범하게 살았다.

비전을 가지고 있는 13%의 사람은 부자로 살았다.

삶에 대하여 명료하게 글로 쓴 비전이 있는 3%의 사람은 거부가 되어 있었다. 이는 모두 목적의식을 있느냐 없느냐 또는 명료하느냐 아니냐의 차이로 나뉘었다.


보고 들은 타인의 지식을 나의 지식으로 가져오려면, 삶의 다양한 지적 정보들, 곧 운동, 영화, 게임, 드라마, 여행 또는 직업 가운데서도 일하면서 배우고, 느낀 것들을 정리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 정리된 지식은 자신만의 지적 체계로 정립되며, 논리적, 합리적 개념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한다.


무엇을 보았으면 그것을 글로 남긴다.

리뷰, 후기, 일기, 감상평, 피드백, 재해석, 심리분석, 서평, 토론, 에세이 등과 같은 글이 자신의 지식으로 소화하는 과정이다. 그에 앞서 필요한 것이 관찰과 사색, 명상과 반추, 산책과 같은 되새김의 과정이다. 오감을 통해 들어온 정보를 나의 이해의 영역으로 인지하기 위하여 가공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것이 나의 지식으로 재해석되는 과정이다.


글로 쓰는 단계도 2단계로 나눠진다.

1차적인 단계는 단순 표현이다. 일기나 시, 에세이와 같이 생각이나 감정을 표현하는 단계다. 2차적인 단계는 그것의 Why를 분석하는 단계다. 리뷰, 후기, 감상평, 피드백, 재해석, 심리분석, 서평 등이 그 단계다.


그러한 사건들은 왜 발생하였으며, 누구의 어떤 말과 의도로 결과가 발생하였는지 과정의 흐름을 이해하는 것이다. 어떤 말속에 어떤 감정과 생각이 내포되어 있는지 이해하면 나 또한 타인에게 말을 하는 데 있어 적용하기 쉬워진다. 어떤 말이 상대에게 상처를 주며, 어떤 말이 상대에게 위로와 기쁨을 주는지 알게 되면, 나 또한 그런 말을 듣고 싶은 이유를 알게 되면서 타인에게 공감이 가는 말을 사용하게 된다.



내재화의 과정 체화 ; 삶의 철학


그러한 따뜻한 말과 행동을 명료하게 인지하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몸에 체화된다.


그렇게 확립된 개념들은 삶을 살아가면서 만나는 무수한 문제들과 갈등, 고민 또는 선택지에서 자신에게 맞는 것들로 채워간다. 처음에는 실수하고, 부족하고, 넘어지지만 그것들을 차츰 자리를 잡으면서 개념 있는 사람으로 주변에서도 인정받는 사람이 되어 간다.


그것들이 삶의 가치관이 되고, 성숙한 단계에 오르면 자신만의 철학이 된다. 이는 이미 자신보다 앞서 걸어갔던 성현들의 삶을 책과 다양한 지적 통로를 통하여 검증하고, 반추하고, 사색과 기록을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색깔로 내재화된다.


어느 정도 성숙의 단계에 이르면 이제 스스로 터득한다. 누가 말하지 않아도, 성현들의 글이나 외적 제재 없이도 아름다운 삶을 살아간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도 그는 어떻게 살아야 올바름 삶인지 명료하게 아는 삶을 살아간다. 삶에 대한 목적의식은 전인격의 성숙까지 이끌고 간다. 그래서 목적 있는 삶이 중요한 이유다.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이 없다면 당연히 그의 삶은 공허하게 된다.

진정한 목적의식이 있는 삶, 그것은 결국 정신을 살찌우는 삶이다. 외적인 것만을 위하여 달려가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삶이 피폐해질 수 있다. 그때 돌이켜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삶은 그렇게 만나고, 이어지고, 깊어지면서 정신이 익어감으로 성숙해진다.



윤 정 현



네가 여기에 있음은 이미 의미가 있는 삶이야!

모른다면 찾아내는 것은 너의 역할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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