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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May 23. 2024

이 모든 게 연극이라면

나, 인류의 미래를 선택할래


나는 어느 순간

삶이 연극이라면 것을 깨달았어.


천년만년 인간이 사는 것도 아닌데

천년만년 인간이 누리는 것도 아닌데


왜 그토록 지지고 볶고,

싸우고 미워하고,

죽고 전쟁하기를 멈추지 않을까?


생각했어!


그건 어쩌면 우리를

나 자신을

게임의 릭터처럼

테스트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어.


왜냐하면 인생이란 무의미야!

허무의 무의미가 아니라

가치의 관점에서 보면

의미 없는 인생의 연속보다는

의미 있는 인생의 연속이

인간으로서 추구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지.


그것이 비록 한 인간의 생애일지라도

그의 삶을 통하여

인간은

인류의 역사를 이어가니깐


그럼 유구한 인류는

역사를 통해 무엇을 선택할까?


장수한 인간의 추잡함을 선택할까?

단명한 인간의 존경스러움을 선택할까?

당연히 후자이겠지.


그래서 나 이 연극의 무대에서

후자를 택하겠다고 선언해.


존경스러운 존재로 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인류가 지속되어야 할 가치를 위해서야!


왜냐하면 역사와 올바름을 몰랐을 때는

나도 전자인 무의미를 선택했거든

하지만 인류의 거대한 뿌리를 알고부터

하루살이처럼 잠시 왔다가는 여행에서


징기즈칸의 정복과 권력

진시황의 부와 권력

히틀러의 거대한 욕망과 세계 정복

클레오파트라의 미와 권력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는 거야!


그래서 이들의 발자취를 생각해 봤지.


소크라테스는 옳음을 위해 독배를 들었고,

갈릴레이는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신념을 가졌으며,

루터 킹은 자유를 위해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는 명연설을 남겼으며,

이순신은 조국을 위해 '내 죽음을 알리지 마라'고 했으며,

예수는 진리와 인류를 위해 죽음의 잔을 마셨어.


전자는 개인의 야욕이며,

후자는 인류를 위한 희망이라는 거야!


우리가 관객으로서

연극과 드라마, 영화의 한  장면으로서

목도한다면 무엇을 바랄까?


모든 걸 다 접어두고,

이다음의 장면에서 내가 살아가야 할

세상이라면

누가 만든 세상에서 내가 살고 싶냐는 거지.

아니 내 아이가 살아갈 세상이라면


그래서 난 후자를 선택하기로 했어.

눈앞만이 전부인 욕심만을 위한다면 전자이겠지만

진짜 사랑하는 우리 후손이 살아갈 미래라면 후자이겠지.


이 연극의 무대에서

너는 무엇을 선택할 거야?


나, 인류의 미래를 선택할래.

나, 그분들께 빚을 갚으며 살아갈래.



윤 정 현



내가 사는 지금의 자유와 행복은

먼저 그것을 지켜내기 위해

독립운동가와 민주투사들이

전 재산과 자신 그리고 가족의 희생까지

감수한 미래의 희망으로

오늘의 내가 누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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