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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Oct 24. 2024

영혼의 나이

육체적 인간은 알을 깨고 나오지 못한 상태다


육체는 성장과 함께 나이를 먹지만

영혼은 육체가 성장한다고

나이를 먹지 않는다.


육체의 성장을 위해 밥을 먹듯

영혼의 성장을 위해서도

마음의 양식이 필요하다.


마음의 양식을

얼마나 어떻게 먹었느냐에 따라

그 삶의 가치가 달라지며

주변에 미치는 영향력이 달라진다.


육체만 성장하는 사람은

오로지 자기만 생각하거나

부와 명예, 권력적 성공에만 집착한다.

곧 물질문명의 노예로만 살아간다.


하지만 이들은 항상 내면의 배고픔,

곧 영혼의 갈함을 항상 지니고 산다.

왜 힘든지 그 원인을 찾지 못한다.

마음의 양식을 먹지 않기 때문이다.


지독한 외로움, 고독과 우울감

삶의 무의미와 텅 빈 공허감

무엇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인생의 허무함

그리고 사람을 미워하고

시기 질투와 비교, 이간질이나 불행감 등은

마음의 양식을 먹지 않음으로 인해

평생 따라다니는 영혼의 갈함이다.


마음의 양식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인문학이다.

문학, 역사, 심리학, 철학, 영성 등등

문학은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거울로 제시한다.

역사는 반면교사로 길을 알려준다.

심리학은 마음을 읽는 내면의 분석서이다.

철학은 삶의 이치를 알려주는 지침서다.

영성은 종교가 잃어버린 진리를

다양한 차원에서 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한다.


그러한 책을 읽는 것은 혼자 독학하는 것이요

그러한 강의를 듣는 것은 재해석한 리뷰이며

멘토나 코치를 통해 받는 것은

전문가의 개인 과외를 받는 방식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마음의 거울이 형성된다.

육체적 인간은 마음을 볼 수 있는 거울이 없다.

분노하고, 사기 치고, 살인하고, 전쟁하는 이유다.

찜찜하게는 느끼지만 그것을 무시하고 감정 따라 산다.

내면의 거울은 스스로의 생각을 읽고,

마음의 동기를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선택에 대해 인지하며 책임을 진다.


육체의 인간은 무지의 인간이요

독학은 시간이 오래 걸리며

재해석은 현대인의 언어이기에 이해하기 쉬우며

개인 코칭은 고속도로를 달리는 경험이다.


지식은 무지를 벗는 도구다.

지혜는 지식의 알에서 나온 병아리다.

알을 깨고 나온 해탈의 존재는 이제 걷는다.

걷는 아이는 반복에 의해 경험으로 축적된다.

경험이 체화되면 영혼의 아이는 어른이 된다.


진정한 사랑과 행복은

알을 깨고 나온 존재가 말과 행동을 통하여

지행일치가 이루어지면서 하나로 만나는 상태다.

마음의 동기나 생각까지 말과 행동으로 일치된다.


마음의 양식이 채워지면

그 성장 정도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 다르다.

하지만 삶의 여유와 힐링감을 맛보고,

감정적 성향에서 이성적인 논리를 갖고,

삶의 의미를 배워가면서 함께하는 방법과

나눔의 미학, 공동체 의식의 중요성을 깨닫는다.


더 나아가 진리가 알려주는 즐거움과

진정한 자기 사랑과 이웃 사랑을 나눌 줄 알며

인류에게 준 선물이 얼마나 고귀한지 깨닫는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넘어서면서

살아있는 날 동안의 행복을 누릴 줄 안다.


그리고 물질계인 지구에 온 이유를 발견한다.

우리는 육체의 옷을 입고 이곳에 왔으며

그 옷을 벗고 영의 세계로 이동한다.

의식의 성장을 위한 여행임을 안다.

성장하지 못한 영혼은 그 지겨움을 반복한다.


다음은 마음의 양식인

영혼의 나이를 먹으면서

그 성장에 따른 모습과 상태를 분류하였다.


영혼의 아이는 자기만 챙긴다.

혼자 살아내기도 벅차기 때문에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찾아 헤맨다.

여기서 자기만 챙기는 것은

육체의 인간과 전혀 다르다.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지

길을 찾는 여행자의 찾음이다.

마치 연금술사에서 산티아고처럼

올바른 삶의 길을 찾아 떠난 여행자다.


소년은 가족을 챙길 줄 안다.

이제 철이 들면 부모와 형제자매들이

자신을 어떻게 챙겨주었는지 깨닫는다.


청년이 되면 친족과 친구까지 생각한다.

부모의 뿌리가 있기에 자신이 있고

힘들 때 손을 잡아주는

그런 존재가 친족이나 친구임을 안다.


장년은 지인과 인연을 소중히 여긴다.

그냥 스치면 사라질 사람들이지만

그렇게 만난 인연이 가끔은

생명을 구하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하늘의 이치를 배우게 되었다.


중년은 단체와 이웃, 곧 공동체를 돌본다.

세상은 혼자만 살아가는 곳이 아님을 인식한다.

마음이 넓어지면서 주변까지 돌아볼

안목이 넓어진 것이다.

문명의 발전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노년은 국가와 민족을 생각한다.

지금의 '나'라는 개아는 선조들의 결과다.

어떠한 희생과 죽음으로 지켜내었는지 겸허해진다.

그리고 감사하면서 자신 또한 보답하는 자세로 살아간다.


진정한 성인은 인류를 의식한다.

인류는 적대적 관계가 아니라

하나의 뿌리에서 나온 가족임을 인지한다.

어떻게 하면 지구 공동체가

더 나은 정신문명의 발전과

사고의 전환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고뇌한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일에 혼신을 다 한다.


더 큰 존재는 우주를 기억해 낸다.

상상할 수도 없는 거대한 우주는

인간만 존재하는 곳이 아니다.

모래알보다 많은 우주인과 영적 존재들이

함께 살아가는 다양한 문명의 집단이다.


영적 존재는 체험할 수 없는 지적 정보를

물질계를 선택한 인간을 통하여 간접 배움을 습득한다.

그 고귀한 배움만이 우주 의식을 확장한다.

영적 세계는 이중성이 없기 때문에

반대의 개념 자체를 인지할 수 없다.


진리를 알고

내적 부름을 깨달은 이는

인간이 왜 물질계로 왔는지 찾아내며

그 본연의 존재 목적을 실현한다.


이것이 육체적 인간으로 태어나

영혼이 나이를 먹으면서 성장하는 과정이다.


진리는 오로지 사랑의 실천으로만 완성된다.



윤 정 현



삶의 문제는 왜라는 질문에서 시작되고

왜라는 질문은 삶을 통하여 찾아낸다.

참고서는 선배들의 경전과 철학서다.

그들 또한 찾았고 후배들을 위해 안내서를 기록했다.

"앎은 행의 시작이요 행은 앎의 이루어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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