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이유가 되어주는 곳으로
맑은 영혼
순수의 아이
넌 빛의 아이였지.
언어를 알면서
모든 것에 이름을 붙였어.
이것도 내 것
저것도 내 것
‘나’라는 거울에 서서히 갇혔어.
갈수록 소유는 늘어났지만
갈수록 공허도 늘어났지.
채워도 채워도 채울 수 없는
세상을 향해 묻기 시작했어.
왜 살아야 하지?
무엇을 향해 걷고 있지?
나는 누구지?
이 질문들이 마음속을 파고들었어.
그제서야 다른 여행을 시작했어.
그 길엔 이정표도 없고,
지도가 되어주는 건
먼저 걸은 이들의 숨결뿐.
사색하고 침묵하면서
내 안의 목마름을 어루만질 때
그 이름은 조금씩 비워져 갔어.
채우려는 것이 비워질 때
그 비움 속으로
다른 것들이 들어왔지.
혼돈과 갈등 가운데서도
문득 느껴지는 작은 미소,
바람처럼 스치는 기쁨.
처음으로 살아있음을 느꼈어.
그리고 마침내,
어디에도 가려하지 않고,
무엇도 되려 하지 않으며,
그저 지금 이 순간에
고요히 머무르게 되었지.
나 지금 여기,
평범한 하루가 가장 빛나고
우리의 미소가
모든 것의 이유가 되어주는 곳.
거기에서 너를 봐!
윤 정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