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순수와 어른의 순수
아이는 자본주의에 물들기 전
곧 사회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영적 순수성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그러기 때문에 순수와 진리에 따른 언어를 구사한다.
하지만 이 아이 또한 자본주의화가 이루어지는 순간
어른과 똑같은 이기적인 테마를 구사한다.
한 순간이다.
인간이 어린아이적 순수함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자본주의의 때를 벗겨내야 한다.
그것의 나타남을 위해
인간은 도덕적 수련, 종교적 수련, 영성적 수련,
그리고 요가와 명상을 하는 이유다.
그 수련을 통하여
나타나는 현상이 진실한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뱀 같이 지혜롭되 어린아이처럼 순수하라!"는 말이며,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가 되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는 말이다.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며,
이웃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동전의 양면이다.
이것을 하면 저것이요 저것을 하면 이것임은
같은 것의 다른 표현일 뿐이다.
어디에 포커스를 맞춰져 있느냐에 따라서
그것은 다른 모습이며 현상이다.
내향적이면 자기를,
외향적이면 타인을 먼저 보는 것과 비슷하다.
진리는 단순함인데,
순수함을 가진 아이가 보는 세상과
순수함을 잃은 아이가 보는 세상의 차이다.
어른 또한 순수함을 잃었기에
자본주의적 이기주의화 되었을 뿐이요
어른이 순수함을 되찾을 때
그는 어린아이의 순수함을 말할 수 있다.
순수는 어린아이의 대명사요
어른이 순수를 찾으면 어린아이의 동심으로 돌아간다.
원리는 같으나 채색이 되면
원리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바뀐 모습이 어른에게 거울처럼 비쳐졌을 뿐이다
진리란 있는 그대로일 뿐이다.
진리는 영원 전부터 영원 후까지 그대로이나
인간은 채색될수록 간사하여 변형되며
변형됨을 인식할 때
바뀜이 일어날 수 있는 인식이 일어나며
그 인식이 알차차림으로 깨달음이 온다.
그 깨달음은 없던 것이 나타남이 아닌
원래 있었던 그대로를 알아차림일 뿐이다.
그것이 순수요 진리다.
윤 정 현
여기와 저기는 있음의 다름이요
다름의 있음이다
나와 너란 결국 있음의 다름이다
아이는 있음이요
어른은 있음의 다름이다
다름이 있음을 아는 순간 그는 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