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을 통하여 나를 만나는 순간들
1990년 군대에서 병장 때 일이다. 인사과에서 일보계를 맡고 있었다. 제대를 앞두고 후임 이등병에게 인수인계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꾸 틀리는 것이다. 물론 사단 전체 월별 보급과 식수 인원을 파악하여 책상 크기 만한 전지에 통계 자료를 만드는 일이라 쉬운 일은 아니었다. 매월 그 통계 자료를 만들어서 대전 군수사령부에 보고하러 출장을 다녔다. 그런데 후임이 벌써 몇 날 며칠을 가르쳐주고 있는데 자꾸 틀리니 짜증이 올라왔다.
“야! 이 새끼야! 정신을 어디다 두고 하는 거야?” 나도 모르게 화가 나서 의자에서 벌떡 일어서면서 큰소리로 욕을 했다.
“아니 윤병장도 욕할 줄 알아?” 선임상사님의 목소리였다.
그 사무실에는 다른 사병들과 선임상사님도 함께 계셨다. 그런데 너무 화가 나니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던 것이다. 선임 상사님은 내가 착하고, 또 병장 때부터 열심히 교회를 다녔던 터라 욕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셨다. 순간적으로 ‘아차’ 싶어서 ‘죄송합니다’라고 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화를 가라앉히며 자리에 앉았지만 여전한 분노와 함께 창피함도 몰려왔다.
왜냐하면 그동안 선임상사님은 나를 좋은 사람으로 평가하고 있었는데, 그 한순간 분노를 참지 못한 모습으로 인하여 스스로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이때의 충격 또한 평생을 기억하는 삶의 교훈이 되었다. 사람들이 안 보는 것 같지만 각자의 성격이나 성향, 말과 행동에 대하여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였던 존재감에 대하여 인식시켜 준 사건이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떤 존재로 평가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스스로에 대하여 존재감이나 자존감이 약할 때는 저런 사건들이 부끄러우면서도 감동이 된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불러주는지 알 수 있고, 각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알아야 각성하고 반성하면서 성장할 수 있고, 그동안 좋게 생각하였던 부분에 대하여는 감사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에 대하여 계속 알고 싶어 한다. 겉모습과 함께 내재적인 모습에 대하여 사람들이 어떤 존재로 느끼고, 인식되고 있는지를.
사랑받는 존재인지, 미움받는 존재인지, 착한 사람으로 인지되는지, 어떤 부분을 잘하고 재능이 있는지, 못된 사람으로 인지되는지, 칭찬받을 만한 사람인지, 아니면 있으나 마나 한 존재인지를 말이다.
우리는 상대에게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궁금해한다. 그래서 상대방에 대하여 표현해 주는 것은 중요하다.
사랑한다고, 고맙다고, 감사하다고, 너로 인해 훨씬 좋아졌다고...
하나의 분노만 표출하고 끝날 사건이었지만 선임상사님의 한마디를 들으므로 인하여 그것을 가슴에 새기는 선물이 되었다. 이는 또 다른 상황을 마주하면서 삶을 반추하고, 더 성숙한 삶으로 나아가는 트리거가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