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돌아오면 공허한 이유
오랜만에 초등 동창 친구를 ‘건대맛의 거리’에서 만났다. 시원한 생맥주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처음에 안부를 묻고는 거의 듣는 편이다. 그러고 나서 나의 안부를 물으면 그때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간다.
언어를 좋아하고, 언어에 대한 관심이나 분석을 잘하기 때문에 그 친구의 말을 듣다 보면 명언들이나 사건 또는 시대를 관통하는 핵심을 집어내는 포인트 문장이나 단어들이 가끔 나온다.
상담을 하고, 강의를 하고, 글을 쓰는 나의 입장에서는 그런 언어들은 뇌를 신선하게 하면서 마음을 일깨우는 힘이 있다. 그래서 대화를 하면서도 수첩이나 핸드폰 메모장에 기록하면서 듣는 경우도 많다.
‘글은 삶이다.’
‘아니면 아닌 것은 없어.’
‘글은 관찰력에서 나온다.’
‘많은 사람들, 저 사람들은 외롭지 않을까? 나는 외로워서 찾아왔다. 헌데, 나는 혼자라서 외로운 걸까? 혼자라서 외로운 것이 아니다, 홀로서기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외로운 것이다.’
위의 글은 글쓰기와 홀로서기에 대해서 말했던 내용인데, 마음에 남는 문장이라 기록했던 글이다.
이 친구와 대화를 하면 배우는 것들이 많다.
나 또한 경청을 하면서 듣지만 모든 말을 다 기억하면서 듣지는 않는다. 다만 상대의 핵심 맥락이 무엇인지 또는 전달하고자 하는 요점이나 키워드 그리고 마음속으로 알아주었으면 하는 내재된 의미를 읽어내려는 노력은 항상 하며 경청한다.
그런데 한참 대화를 듣다가 그의 말이 끝난 후 ‘네가 하고자 하는 말이 이거야?’하고 질문하였다. 그랬더니 그 친구가 하는 말이 마음에 꽂혔다.
“너는 내 말을 다 듣고 있었구나!” 하면서 고마워했다.
깜짝 놀랐다. 길게 이야기하여서 핵심 요점을 알고 싶어서 듣던 중 가장 주제가 되는 것을 질문하였는데, 그것을 저렇게 고맙게 받아들이고 있음을 깨달았다.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귀 기울여 듣기보다는 자신의 말을 하고 싶어서 기다린다. 아니 안달한다. 그래서 말을 끊기도 하고, 끼어들어서 자기 말을 한다.
그러므로 상대방이 하고 있는 말에는 관심이 없다. 열심히 말하였지만 옆으로 흘려버린다. 그게 서운한 것이다. 아니 무시받는 느낌이 든다. 관심이 없다는 의미다. 이는 대화가 깊지 못하고, 오랜 시간을 만나고 대화를 나누었지만, 집에 돌아오면 공허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상대가 나의 말에 관심을 가져주지 않는 허공에 흩뿌린 대화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친구의 저 한마디가 커다란 깨우침을 주었다.
‘아! 우리는 모두 그렇게 자기를 알아주기를 바라는구나!’ 이런 생각이 들면서 나 자신을 더 각성하게 만들었다. 사랑을 준다는 것, 사랑하고 있음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큰 것이 아님을 알았다. 상대를 향해 작은 관심의 표현, 네가 가진 관심사에 대해서 나도 흥미를 가지고 있다는 의사 표현 그런 것들이 너와 나의 관계를 행복하게 만드는 요소들이었다.
행복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선택함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