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을 알아보고 표현을 해준다는 것
동생에게는 4남매가 있다. 둘째 딸이 가장 먼저 시집을 가고, 어제는 수원에서 첫째 아들이 약혼식을 하는 날이었다. 조촐하게 가까운 지인들을 모셔놓고 식사하는 자리였는데 참 대견했다. 4자녀가 모두 긍정적이면서 자립심이 컸다. 내가 자랐던 시대의 아이와 다른 느낌이었다.
첫째 아들이 참석한 사람들에게 감사 인사를 먼저 하고, 약혼자를 어떻게 만났고, 그동안 교제하면서 어려운 과정을 지나 약혼까지 하게 된 배경을 간략하게 이야기하였다. 사람들 앞에서 여유 있고 논리적으로 말하는 것이 참 훌륭했다.
기분 좋게 모든 행사를 마치고, 둘째 차를 타고 서울로 왔다. 오면서 그 아이와 대화를 나누었다. 예전에 제수씨가 수원에서 옷가게를 하던 때가 있었다. 그때 그곳에 갔던 날이 있다. 딸이 결혼하고, 직장을 서울에서 다니던 때였다. 그런데 쉬는 주말에 그곳에 내려와 엄마의 옷가게 디스플레이를 도와주었다. 엄마가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내려와서 해주었다. 그것도 억지로 해주는 것이 아니라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면서 하는 모습이 너무 예쁘고, 정겹게 느껴졌다. 자기도 쉬고 싶을 텐데, 엄마가 서울에서 도매로 옷을 많이 구매했기에 혼자 해야 하는 모습이 안타까웠던 모양이다. 그 인상이 오래오래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었다. 그 이야기를 말하면서 칭찬을 해주었다.
또 『너의 오빠도 아일랜드로, 캐나다로, 호주로 혼자 여행을 다니고,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해서 영어 강사가 된 자립심이 대견하다. 그리고 가족들을 챙기는 모습이나 동생들이 하고 싶은 말을 조율하여 부모님께 말씀드리는 신중성이 예쁘더라. 그것도 논리적으로 조근조근 말하는 모습은 참 훌륭했다.』
차를 타고 오면서 이렇게 둘째와 첫째를 칭찬했다. 그랬더니 자신도 오빠의 그런 모습 때문에 존경한다고 한다. 또 큰아빠가 그렇게 예쁘게 봐주시니 감사하다고 하면서 앞으로 더 잘해야겠다고 다짐한다. 모르는 사람에게 받는 칭찬도 좋지만, 가까운 사람으로부터 진정성 있는 칭찬을 받으니 기분이 훨씬 좋다고 한다.
예전 같으면 이런 말을 할 줄도 몰랐다.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 열등감에 사로잡혀 있을 때는 상상할 수 없었다. 시선의 노예가 되어서 타인에게 시선을 향하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포커스를 맞추다 보니 더 그랬다.
칭찬을 해주는 사람은 그냥 되는 게 아니다. 내공을 쌓았을 때 가능하다. 상대방을 칭찬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보다 자신의 존재감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칭찬했던 경험이 없기 때문에 어색하고 민망하다. 하지만 해주었을 때의 행복감은, 몽골인들이 편의점에서 처음에는 민망했지만,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라는 인사가 서로 행복한 것처럼 기분 좋음을 선사한다.
사람들의 장점을 알아보고, 그 가치를 표현하는 것은 삶의 예술이다.
인간의 내면이 아름다움으로 채워지면 타인의 단점보다는 장점을 찾아내는 예술성을 발휘할 줄 안다. 영혼이 배고픈 상태에서는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타인의 단점이 두드러져 보이기 때문이다. 나도 짜증 나는데 상대방까지 짜증 나는 단점이 보이니 기분 좋을 수가 없다. 하지만 ‘인지’라는 각성이 하나씩 파트적으로 자리 잡아가면 서서히 관점의 전환이 일어난다.
조카 이야기는 인격적 장점이었다. 재능적 장점을 이야기한 두 가지 사례가 있다.
우연처럼 만났던 사람이었다. 그분은 미술치료 석사과정을 하시는 분이었는데, 여러 병원에서 소액을 받고 재능기부 차원에서 경험을 쌓고 계셨다. 첫 만남에 벤치에서 HTP 그림 진단으로 집, 나무, 사람을 그려보라고 하였다. 나에 대한 아무 정보도 없이 성격을 90% 정도 분석하는 것을 보고 놀랬다. 그때 사람의 심리를 분석하는 도구로 미술치료가 이렇게 장점을 가진 도구인지 처음 알았다. 그분은 많은 사람을 진단하고, 치유하는 재능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신의 실력을 낮게 보았다. 겸손해서가 아니라 진짜 그랬다. 그래서 저희 모임에 특강으로 1회 강의를 부탁했더니 거절했다. 왜냐면 강의는 한 번도 안 해보셨고, 교안도 없다고 하셨다. 우리 모임은 사람도 많지 않고, 지금의 실력으로도 우리에게 충분히 좋은 도움이 된다고 했는데도 자신이 없고, PPT도 만든 것이 없다고 하였다. 그래서 기본 자료만 주시면 제가 미술치료 강의안을 만들어드리겠다고 하여 승낙을 받았다. 며칠 후 모임에 오셔서 멋지게 강의하셨고, 모두 좋은 경험을 하였다고 하면서 좋아하셨다.
나중에 식사하면서 그렇게 말씀드렸다. “선생님! 가지고 계신 재능은 정말 훌륭하십니다. 모두 좋아하셨고, 저 또한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기회가 되신다면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이렇게 강의도 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랬더니 “선생님 덕분에 좋은 경험이었고, 이렇게 처음으로 강의할 수 있게 되어 감사드립니다. 저를 그렇게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좋아하셨다.
또 한 번은 2013년도쯤 20대 중반의 직장인 여성을 카페에서 만났다. 그런데 취미로 타로를 배워서 지인들만 봐준다고 하였다. 점성학이나 사주로서 보는 것이 아닌 심리 타로와 색채 타로의 방식으로 봐주었다. 이분도 저의 성격이나 성향을 단번에 90% 이상 읽어냈다. ‘어떻게 그림 카드에 그런 것이 들어있을까?’ 생각하며 참 신기했다. 이분도 우리 모임에 초대해서 모든 사람을 봐주었다. 모두 신기해하면서 즐거운 모임이 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타로는 돈을 주고, 몇 번 봤지만 이분은 취미로 하는데도 훨씬 구체적이고, 디테일하게 이야기해 주었다. 그래서 가지고 있는 재능이 취미로 할 수준이 아니라 직업으로 하셔도 좋을 정도라고 하였다. 본인은 재미로만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그래도 이렇게 칭찬을 들으니 너무 감사하다고 하였다. 이분은 지금도 가끔은 만난다.
이런 경험들 이외에도 꽤 있다. 사람들은 그런 것 같다. 자신이 이미 가진 것은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 그것은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고, 또 프로 선수만큼 뛰어나지 않으면, 그렇게 특출 나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오디션에 나가고, 국전이나 공모전에서 상을 받기 전까지는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잘 모르는 것과 같았다. 그래서 주변에서 진정성 있게 성격이든, 재능이든 알아봐 주고, 칭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러한 경험이 나 자신에게도 타인의 좋은 점, 강점을 관심 있게 보게 하였고, 또 그것을 진정성 있게 표현하는 법을 알게 하였다. 나 자신도 나를 몰랐던 것처럼,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의 쓸모 있음이 타인의 장점을 보고, 표현할 수 있는 내공이 쌓이지 않았는가 한다.
이런 예화도 있다. 어떤 분이 어린 여자애를 베이비시터로 알바하신 분이 있었다. 그림을 그리면 올림픽 중계하듯 그림 감상평을 해주었다.
“이 색칠 수준을 보세요! 크레파스로 이렇게 완벽하게 칠하는 건 쉽게 찾아볼 수 없는데요. 또 이건 뭔가요. 이러한 표현은 아무나 할 수 없어요. 핑크빛으로 캔버스 전체를 칠했군요. 저도 이런 건 처음 봅니다. 아무리 봐도 너무 멋집니다!” 이렇게 칭찬하면 아이는 막 쓰러질 정도로 웃으며 좋아했다. 아이는 그 말이 진정성이 있는지 또 밤에 물어봤다. “선생님! 그 그림이 진짜 좋았어요?” 확인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럼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눈에 띄는 부분을 피드백해주었다. 그 후 이 아이는 커서 예술학교 3 군데에 합격했다. 그리고 자기를 칭찬해 주었던 선생님께 편지를 썼다.
“고마워요. 내 안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사람에게” 이렇게 써서 어릴 적 핑크빛으로 물들인 그림을 들고 있는 사진과 함께 보냈다. 나는 이 글을 읽고 너무 큰 감동을 받았다. 충격적인 감동이었다. 가능성을 봐주는 것 그리고 그것을 멋지게 표현해 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우리는 있는 가능성도 죽인다. 무시한다. “너 같은 게 뭘 할 수 있느냐?”라고...
말 한마디로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이왕이면 우리는 가능성에 투자하자. 그렇다면 없던 가능성도 나타날 수 있으니깐. 그로 인하여 우리가 사는 세상은 훨씬 밝아질 것이다. 또 따뜻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