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부족함보다는 상대방을 비난하는 쉬운 길을 택하다.
열등감은 자신보다 훨씬 잘난 사람과의 관계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넘볼 수 없는 산이기 때문이다. 대부분 자신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사람이 자신보다 더 잘난 경우 나타나는 현상이다.
상대방이 나보다 못생겼는데 인기가 많다든지, 공부를 못했는데 더 좋은 직장이나 연인 또는 더 멋진 사람과 결혼하면 시기와 질투가 생기고, 열등감이 생긴다. 또 나보다 능력이 부족한데 먼저 승진한다든지, 친구는 항상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는데, 자신은 인정받지 못하는 존재감의 상실에서 오기도 한다. 그때 사람들은 ‘나는 아무 쓸모없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열등감을 시기, 질투, 미움으로 표출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의 경우 자책이나 자괴감으로 자기 비하를 택하기도 한다. 혼합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무언가 모르는 긴장감이나 견제 심리를 표출하기도 한다. 한번 열등감에 사로잡히면 그것이 열등감인지도 모르면서 무의식 가운데 트라우마처럼 작용한다. 그 상대만 보면 그런 방어기제가 작동하면서 스스로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든다. 그런 심리를 가지고서는 성숙한 사람으로 성장할 수 없다.
나는 동생에게 그런 열등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게 열등감인 줄도 몰랐다. 두 살 차이지만 고3 때까지만 해도 항상 어리고 부족하게만 봤었다. 그때까지는 열등감이 전혀 없었다. 교회 청년부에도 같이 다니며 활동했었다. 나는 가족들에 의해 형식적으로 다녔는데, 동생은 달랐던 것 같다. 군대에 가서 병장 휴가 때 나왔는데 동생이 달라져 있었다. 어느 날 동생이 근엄하게 가족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었다. 부모님도 있고, 형님 가족도 있는데 어리디어리게 봤던 동생이 가족 앞에서 어른스럽게 설교하는데 기가 죽었다. 나는 성경도 잘 모르는데 동생은 성경 몇 장 몇 절을 줄줄줄 외웠다. 얼마나 많이 보고, 읽었는지 척척 구절을 찾아냈고, 가족들에게 성경을 강해하는데 무슨 전도사나 목사님처럼 위엄이 있었다.
‘아니, 쟤가 어떻게 저렇게 하루아침에 바뀌었지?’
이런 생각이 들면서 어리게만 보던 동생을 예전처럼 함부로 대할 수가 없었다. 뭔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면서 쉽게 대할 수 없는 어려운 감정을 느꼈다. 나는 성경을 잘 모르는데, 동생은 시간이 지날수록 성경에 대한 기억력이나 깊이 있는 해석을 잘하였다. 그럴수록 위축이 되는 느낌이 들었다. 동생이기에 겉으로는 내색을 하지 않았지만, 10년 이상을 그런 어려워하는 관계로 지내오지 않았는가 한다.
30대 후반과 40대에 접어들면서 그런 감정들은 사라지기 시작했다. 많은 사람들과 인간관계를 하고, 다양한 인생의 경험을 하면서 성장한 것이 아닌가 한다. 또 문학, 과학, 종교, 심리학, 철학, 자기 계발서, 영성 서적 등 다양한 분야의 책과 강의를 들으면서 사고의 폭도 넓어졌다. 그걸 통하여 나 자신과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심리도 알게 되었고, 어떤 방어기제들이 작동하는지 알게 되었다. 또한 인격이 성숙하기 위해서는 열등감과 같은 부정적 감정을 인정하고, 잘못한 부분에 대해서는 사과할 줄도 알고, 칭찬받을 만한 부분에 대해서는 감사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아량도 필요함을 알았다.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곧 열등감을 느낀다는 것이다.”
“열등감은 새로운 도약의 원천이다.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극복하느냐가 삶의 방향을 결정한다.”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긍정적인 괴로움이며, 적어도 해결되지 않은 과제, 욕구, 긴장 등이 있는 한 지속된다.”
“인간은 누구나 우월성을 추구한다. 이것이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노력이다. 그러나 그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을 때 병적인 열등감 콤플렉스가 된다.”
심리학자 아들러가 열등감에 대하여 한 위의 말을 통하여 터닝포인트가 된 것 같다. 열등감이 무엇인지 명료하게 인지하였고, 그것이 내 안에 있었음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벗어나려는 성숙함에 대한 노력도 하였기 때문이다.
열등감 자체가 잘못이 아니다. 그건 인간이라면 누구나 크고 작은 열등감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자체에 머물러 있으면서 타인을 비교하고, 시기하거나 자책에 머물러 있는 것이 영혼을 피폐하게 한다. 그 열등감을 인정하고, 그것을 통하여 더 나은 사람으로 성장하려는 노력이 자신과 타인에게 이로운 존재로 태어난다는 의미다.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힘이 얼마나 위대한지 배웠다. 어느 순간 동생을 대하는 나의 모습에 있어서 훨씬 여유로운 모습을 발견하였다. 위축되거나 어려워하지 않고, 편안하게 동생을 대하는 나 자신을 보면서 아름답게 보였다. 그리고 행복했다. 동생도 훨씬 사랑스러웠다.
인간은 스스로를 모를 때 쉬운 길을 선택한다. 자신의 부족함을 해결하는 것은 어렵다. 그리고 오래 걸린다. 그래서 자신의 부족함을 넘어서는 사람을 비난하는 쪽을 선택한다. 시기하거나 질투한다. 또는 무시한다.
그러나 어른으로 성장하고, 세상을 보는 안목이 넓어지면서 자신과 타인을 비교하는 내면의 눈이 열린다. 그때 자신의 초라함을 느낀다. ‘내가 이것밖에 안 되는 인간인가?’ 하는 그런 감정 말이다. 그 앎이 인지다. 자신을 알아차린 것이다. 그게 바뀔 수 있는 기회다. 그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정신적 미숙아로 남는다. 그걸 알아차릴 때 우리는 삶을 배운 진정한 어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