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 차려 이놈아! 지금 뚱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결혼 초기에 아내와 함께 태릉에 있던 장모님 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상봉동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지금은 너무 오래되어서 기억나지 않지만, 의견 차이로 한바탕 말다툼을 하고서 걷고 있었다. 서로 토라져서 말도 없이 뚱한 상태로 걷기만 했다. 그런데 너무 오래 말없이 걷다 보니 어색하고, 미안한 감정도 들었다. 그때 마음에서 ‘이걸 풀어야 하는데, 어떻게 풀지?’ 하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무슨 말을 꺼내려고 입을 벌렸다. 첫음절을 내뱉는 순간 앞에 살짝 튀어나온 돌부리에 신발코가 부딪혔다. 그러자 몸이 앞으로 휘청거리는 것과 동시에 말소리와 마주치면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가 튀어나왔다.
그 순간 두 사람 모두 웃음보가 터졌다.
나도 그렇고, 아내도 그렇고 무슨 말을 하려다가 부딪혀서 나온 말이라는 것을 눈치챘기 때문이다.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민망하기도 하고, 풀기 어려운 부부싸움을 그렇게라도 풀어져서 기분이 좋기도 하였는지 둘이 깔깔깔 거리고 웃는 상황이 행복했다. 오랜 옛날의 추억이 되었지만, 그 강렬했던 순간이 잊히지 않았다. 그럴 때면 우연을 가장한 수호천사가 “정신 좀 차려!” 하면서 도와주는 것 같다. 행복해도 부족할 시간에 싸우고 입다물고 있다니...
또 한 번은 둘이서 김치를 담그는 날이었다. 소금에 절였던 김치를 물에 헹구는 일을 마주 보며 하고 있었다. 그때 아내에게 기분 상하는 말을 나도 모르게 하였나 보다. 그 순간 배추가 든 고무통을 뒤집어서 아내가 바닥에 다 쏟아버렸다.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가해자는 기억나지 않고, 피해자는 디테일한 것까지 모두 기억난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때 깨달았다. ‘아내도 한 성격 하는구나!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신중하게 해야겠다!’라는.
이 이외에도 부부싸움을 참 많이 한 것 같다. 결혼 초기 몇 년 간은 셀 수 없이 많은 것 같다. 무슨 의견 차이가 그리도 많은 지, 사귈 때는 모르는 것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다툼은 많아졌다. 그런데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대부분이 하찮은 것이라는 의미다. 드라마에서도 보면 그렇지 않은가? 신발 벗는 방향 때문에 싸우고, 양발을 뒤집어 놓는 것이나 세탁기에 넣지 않는 일 그리고 치약을 쓸 때 위에서부터 쓰느냐 아니면 아래서부터 쓰느냐의 문제로 다툰다고.
나는 누룽지를 좋아했고, 아내는 누룽지를 싫어했다. 또 나는 단김치를 싫어했고, 아내는 단김치를 좋아했다. 그래서 항상 김치에 설탕이나 조청, 꿀을 넣어서 담았다. 아내는 잡채나 부침개를 좋아했다. 나는 밀가루 음식은 라면이나 호떡만 좋아했다. 쇼핑을 가면 아내는 몇 시간을 돌아다녀도 지치지 않았다. 난 1시간도 너무 길었다. 아내는 옷을 입어보고도 마음에 안 들면 그냥 나왔다. 나는 입어 보면 거의 사야 했다. 나는 내향적이라 부부싸움을 하면 며칠 갔다. 그 감정이 풀어지고, 누그러지는데 시간을 필요로 했다. 아내는 조금 외향적이라 뒤돌아서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웃었다. 조금 전에 싸웠는데, 식사 시간이 되면, “여보! 식사하세요.”라고 부른다. 나는 ‘헐’ 했다. ‘어떻게 저럴 수 있지? 가식인가?’ 이런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나중에서야 그것이 가식이 아니라 그런 성격이라는 것을 알았다. 살다 보니 다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같이 살면 살수록 많아졌다.
결혼하기 전에는 이런 것은 모르고, 좋은 점 한두 가지에 빠져 결혼한다. 결혼하니 다른 점이 많아졌다. 다시 오래 살다 보니 다른 점이 줄어들기도 한다. 하지만 줄어드는 것보다는 이해하고, 조율하면서 성장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전한 상태로 사는 사람은 바뀌지 않는다. 그러나 문제점을 발견하고, 그것이 왜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하면 고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사람은 바뀐다. 다른 점이 적다가 늘었다가 다시 줄어드는 그런 성향을 따른다. 우리는 그랬다. 그리고 조금씩 서로를 닮아갔다. 토라져서 감정이 식는 시간이 짧아졌다.
결혼을 통해 커다랗게 바뀐 것 하나가 있다.
아내의 존재는 인지하지 못하는 것을 인지하게끔 만드는 가장 강력한 존재다. 남들은 단점을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아니 굳이 말해서 감정 상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입을 다물지만 아내는 그렇지 않다. 자신의 남편이 존중받는 사람이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도 모르게 말하게 된다. 아내의 잔소리가 많은 건 그런 연유이기도 하다. 교양과 인격이 쌓이면서 이런 잔소리는 고상하고 품위 있는 조언이나 권면의 형태로 바뀐다.
‘어깨를 펴고 걸어라!’, ‘넥타이를 똑바로 매라!’, ‘목소리를 크게 내라!’ 등등 ‘이것은 하지 마라! 저것은 하라!’라는 그런 소리가 짜증으로 쌓였던 것이다. 결혼하기 전까지는 남들에게 좋지 않은 소리를 들어보지 않았는데, 아내에게는 그런 잔소리를 듣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나는 예전에 착한 사람이었는데, 아내를 만나 내가 나쁜 사람이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원죄를 아내에게 전가시켰다. 내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아내가 잘못이라는.
그런데 나중에서야 깨달았다. 그 누구도 내 안에 있는 구정물(나쁜 습관)을 끄집어낼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아내만이 그것을 끄집어낼 수 있었다. 가장 가깝기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고, 모든 것을 고칠 수는 없지만,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하는 ‘사랑의 표현’임을 깨달았을 때 바뀌었다. 아내를 바라보는 안목이 바뀌었다. 나를 힘들게 하는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나를 예쁘게 가꾸는 정원사처럼 사랑스러운 존재임을 인정하게 되었다.
사람은 경험 없이 자라지 않는다.
다만 그 경험을 통하여 어떤 것을 깨닫고,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자신의 몫이다. 인간은 누구나 실수한다. 그리고 부족하다. 크든 작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고자 하는가 그것이 중요하다. 그런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내게 잠시 아픔의 ‘가시’를 선물해 준 아내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