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

외로움에서 사랑을 배우기까지 멀지만 아름다운 길

by 행복스쿨 윤정현


인간은 태어나 자라면서 자기 자신이 주인공이 되는 방향으로 성장한다. 그 주인공이란 개인화된 이기적인 상태를 말한다. 이기적 사랑이다. 왜냐하면 태어나면서 배운 사회적 지식이 그렇게 성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조건과 환경으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기적 사랑에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다. 외로움이다.

이기적인 성향이 클수록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등을 돌린다. 친구였던 사람도 멀어진다. 심지어 가족 하고도 상극이 된다. 부부, 부모, 자녀 하고도 담을 쌓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 성향이 서로의 관계를 갈라놓기 때문이다. 자기만 생각하는 그 마음을 타인에게는 감추지만 그렇다고 타인이 모르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기적인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은 배려적인 성향의 사람이 하는 말과 행동에서 느끼지 못하는 차가움과 배타성이 무의식적으로 묻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와 마음으로 가까이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외로움의 감옥에 갇히게 된다. 누가 추운 겨울과 같은 집에 함께 하기를 바라겠는가?

또 가정환경이나 성향으로 인하여 자기 비하나 혐오, 비관에 매몰된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오랜 트라우마로 인하여 그 감옥을 쉽게 빠져나오지 못한다. 이들은 사람을 믿지 않는다. 가까운 사람들로 인해 받은 상처가 크기 때문이다. 항상 경계의 눈빛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어떤 기회나 인연을 만나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마음을 열어주는 사람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따뜻함이라는 것을 경험한다.


삶의 경험을 통하여 이것을 깨달은 사람은 이제 마음을 열어주는 법을 배운다. 진심으로 자신을 향하여 마음을 열어주는 경험은 처음으로 깊은 신뢰를 형성하는 기회가 된다. 그 경험을 통하여 타인의 마음을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감각이 의식적으로 작동한다. 마음을 열어준다는 것은 타인의 마음을 알아주는 데서 출발한다. 타인을 생각하고, 배려하고, 존중하고, 따뜻하게 대하는 법을 알아가면서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기 시작한다. 타인의 마음을 이해하면서 자신의 마음을 이해한다.

타인이 자신을 그렇게 대해줄 때 미소 지을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그 작은 배려에 행복이 깃들어 있음을 발견한 것이다. 그것이 겨울과 같았던 스크루지 할아버지가 이웃에게 자기 집을 개방하였던 것처럼 마음을 열어주는 시작이 된다.

인간이 살아가는 행복은 커다란 곳에 있지 않음을 깨닫는다. 커다란 부를 얻고, 기업을 성공시키고, 훌륭한 명예를 얻는 것들은 행복의 목적이 아님을 발견한다. 그것들은 부수적인 것들이다. 목적이 아닌 수단으로써 활용하는 도구일 뿐임을 배운다. 목적이 되는 순간 거기에 도달하면 공허해진다. "어! 이게 뭐지? 이게 성공의 의미였나? 왜 행복하지가 않지?" 이런 고민에 빠진다. 그것은 수단을 목적으로 착각하였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행복은 관찰을 통하여 선택하고, 표현하는 주체적 현상이다.

행복은 그저 작은 하나하나의 표현과 배려 그리고 호흡하는 삶 속에서 누리고, 선택하는 것임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래서 행복은 목표가 아니라 매 순간 선택이며, 망각이 아니라 관찰을 통하여 발견하는 주체적 현상이다.

어떤 부부의 행복한 일상을 보았다. 남편의 평발에 대해서 나누는 대화였다. 평발이라 박수를 칠 수 있다고 하면서 발과 손으로 동시에 박수를 치는데 얼마나 소리가 우렁찬지 여러 명이 치는 것 같았다. 그걸 보고 아내가 얼마나 즐거운지 깔깔거리며 웃으며 말했다. 혼자 치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며 엄청 기분이 좋은 것 같다고. 다음에 자기 생일에도 노래 부르면서 그렇게 박수 쳐달라고 한다. 그러면서 둘이서 엄청 기분 좋게 한참을 웃는다.

별거 아닌 일상으로 늘 이렇게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부부채널이다.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이렇게 별거 아닌 것으로 대화를 나누며 서로 표현을 해주는 것, 호탕한 웃음소리와 즐거운 리액션, 바로 그런 것들이 행복이다. 우리 주변에는 그런 행복이 널려있다. 누리는 것은 그런 것을 섬세한 감각으로 발견하고, 표현하고, 나누는 데 있다. 결국 상대에 대한 관심과 배려다.

이런 주고받음에서 외로움은 사라지고, 함께라는 따뜻함이 솟아난다.

상대에게 진심으로 주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상대로부터 진심으로 받는 법도 배울 수 없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어쭙잖고, 민망하지만 그런 걸음마를 통해 아이도 걷는 법을 배웠다. 어른이라고 더 나은 성장을 위해 배우지 말란 법은 없다. 사랑도 배움을 통해 사랑을 전달하는 법을 배운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아 보지 못한 어른은 부모가 되어서도 아이에게 사랑을 주는 법을 모른다. 마찬가지로 행복해지는 법도 배워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부모가 행복했던 가정은 자신도 그런 배우자를 꿈꾸지만, 부모가 행복하게 살지 않았던 가정은 자녀들도 결혼에 대한 거부와 두려움을 여전히 가지고 성장한다.

그러므로 행복은 따뜻하게 주는 법을 통하여 다시 돌아오는 따뜻하게 받는 느낌이다.

이때 사람은 자기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마음을 배운다.

이기적이었던 사람이 외로움과 공허라는 방황을 거듭하고, 누구도 알지 못하는 가슴의 응어리를 안고 살다가 다시 돌아온 느낌이다. 성경에 아버지를 떠났던 탕자가 모든 것을 잃고 헐벗은 거지가 되어 다시 아버지 곁으로 돌아왔을 때 뜨거운 포옹으로 안아주었던 아버지의 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 우리는 모두 그 사랑을 필요로 한다. 영혼이 배고프기 때문이다. 인간은 그 사랑이 채워지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공허하며, 또 그 누구에게도 진정한 사랑을 줄 수가 없다.

이런 사랑을 배우기 위해 우리는 육체를 입고 지구로 온 여행자다. 우리는 인간 세계를 경험하기 위해 온 천사들이다. 물질계는 시뮬레이션 세계다. 육체는 NPC다. 게임 속 영혼 없는 생명체요 캐릭터다. 그렇게 먹고살기 위해 수많은 NPC와 경쟁하며 생존 경쟁을 벌인다. 그게 전부인 세상처럼 말이다. 그러나 육체로 온 목적을 이해하는 자는 NPC에서 깨어나 플레이어가 된다. 이제 넋이 빠진 NPC처럼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주체성을 가지고, 자신과 연결된 존재들에게 관심을 갖고, 플레이어로서 삶을 컨트롤한다. 그것이 타인에 대한 배려요 표현이다. 예수는 NPC를 잠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한다고 하였다. 헤세는 소설 데미안에서 새는 알을 깨고 나와야 한다고 하였다. 알을 깨고 나오는 것, 그것이 이기적인 자아상에서 빠져나와 공존하는 삶을 배우므로 함께 행복을 누리는 세상이다.

주고 돌려받으려는 마음 없이 주는 법을 배워간다.

이러한 사랑, 곧 조건 없는 사랑을 지속하면 삶의 진정한 주인공이 된다. 이기적인 주인공에서 이타적인 주인공으로 살아간다. 이기적일 때는 보여주기 위해서 살았다. 하지만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다. 그래서 외롭고 공허한 것이다. 그러나 이타적인 사랑을 하는 사람은 알아주지 않아도 지속한다. 처음에는 조건 없는 사랑을 받아도 알아주지 않는다. 시간이 흐르면 알아주는 이가 나타난다. 그래서 공자는 德不孤 必有鄰(덕불고 필유린), 곧 "덕이 있는 사람은 외롭지 않으며, 반드시 이웃이 있다."라고 하였다. 그 사랑에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는 의미다.

이제 가끔씩 진정으로 고마움을 표현하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말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작은 선물로 표현하는 사람도 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메시지나 편지로 표현하기도 한다. "선생님으로 인해서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어요."라고. 이런 증명들이 쌓이면 스스로 외로움에서 벗어난다. 삶의 무의미와 공허감도 씻은 듯 사라진다. 그리고 '올바른 길을 가고 있구나!' 생각하면서 스스로 대견해한다. 내공이 쌓이면서 자존감이 올라간다.

한 생명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으면서 자신 또한 그런 소중한 존재임을 인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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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진리, 곧 진정한 사랑과 진정한 행복의 증명값이다.

그러나 그 증명은 몇 번의 경험으로 끝나지 않는다. 우리 안에서는 끊임없이 확증을 요구한다. 스스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지 아는 것에 대한 증명이 더욱 필요해진다.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는가?

첫 번째는 올바른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붓다의 팔정도에서 정어(正語)에 해당한다. 거짓말, 꾸며낸 말, 욕설, 이간질하는 말을 하지 않고 진실하고 이로운 말을 할 때 그는 올바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진실하고 이로운 말은 이해하고, 배려하고, 친절하고, 존중하고, 격려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는 말이다.

두 번째는 올바른 행동이다. 정업(正業)에 해당한다. 살생, 도둑질, 음란한 행위 등 몸으로 짓는 그릇된 행위를 삼가고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다. 바르게 행동하는 것이란 이해하고, 배려하고, 친절하고, 존중하고, 격려하고, 편안하고, 따뜻하게 하는 행동이다.

그럼 말과 행동을 올바른 하면 다 된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외적으로 보여주는 것에만 해당한다.

세 번째는 정사유(正思惟)이다. 바른 생각이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는 바른 의도와 생각을 갖는 자세다. 아무리 말과 행동이 옳을지라도 동기가 불순하면 의미 없다. 사기 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달콤한 말과 행동으로 다가오는 사람들이 있다. 그건 의미 없다는 말이다. 동기와 의도가 자신의 자녀를 대하는 마음, 부모를 대하는 마음으로 대가 없이, 조건 없이 이타적인 사랑을 할 때 진리는 완성된다.

자신의 말과 행동 그리고 마음의 동기까지 일치된 삶을 지속할 때 스스로를 존경하는 위치에 이른다. 이것이 증명값이다.

타인으로부터 돌아오는 진정한 고마움의 표현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사랑하는 법을 배운다. 더 나아가 말과 행동이 일치하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살펴서 그것이 일치될 때 그는 깨닫게 된다. 자신이 얼마나 존귀한 삶을 살고 있는지 깨달으면서 스스로를 존경하는 사람이 된다. 누가 보든 안 보든, 알아주든 몰라주든 상관없다.

이것이 영혼의 존재였던 우리가 인간계에 내려와 배워야 하는 과업이다.

사랑은 사랑으로서만 완성된다.


윤 정 현


공허하고 외로웠던 인간은
마음을 열어주는 존재를 만나므로 다른 세계를 만난다.
채워가는 경험을 통해 자신이 받은 사랑이 진실함이 증명되고
신뢰가 쌓일 때 자신도 마음을 열어주는 존재가 된다.
닫혔던 마음이 열리면서 진실한 사랑을 주는 법도 알아간다.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고
자신마저 미웠던 존재는 이제 타인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면서
세상의 따뜻함을 알아가면서 주체자의 삶으로 승화된다.
그렇게 살아가는 세상이 얼마나 자유롭고
이전에는 맛보지 못했던 행복한 세상이라는 것을 알아가면서 누린다.
그리고 겸손하면서도 스스로 존경하는 사람이 된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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