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의 닻: 피와 시간으로 맺어진 인연

무조건적인 사랑과 희생의 철학 그리고 침묵의 정(情)

by 행복스쿨 윤정현

가족의 인연이란 피와 시간으로 맺어진 인연이라 생각한다.


는 혈연의 뿌리이며, 그가 가진 유전적 특징이기 때문이요 시간이란 동고동락을 하며 맺어진 '함께'라는 의미가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 '함께'에는 아픔과 눈물을 함께 나누었고, 기쁨과 미소도 함께 나누었다. 미운 정 고운 정든다고 하듯, '함께'에는 정(情)이 시간 속으로 녹아들어 있다.


거기에는 조건 없는 사랑으로 이어진 인연의 연결 고리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믿음과 신뢰를 잃지 않도록 누적되었다.


'아! 비록 힘들 때도 있고, 화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려울 때 손을 내밀어 주는 존재는 가족이구나!'라는 믿음은 넘어지고 지칠 때 기댈 언덕이 되어 준다. 그 보이지 않는 힘은 우리가 멀리 여행을 떠나도 다시 돌아올 안전장치가 있음을 알게 한다. 그것이 불안 요소의 제거다. 현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힘든 것은 늘 불안하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 어떤 고난과 어려움이 닥쳐올지 알 수 없는 그런 불안한 세상인데, 언제든 도망갈 수 있는 피난처가 있다는 안도감은 삶을 도전할 수 있게 하고,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한다. 그 가족 연대기에는 사랑과 희생이라는 침묵의 정(情)이 보일 듯 말 듯 무언의 돌담처럼 쌓여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족이 주는 연대감이다.


그 약속은 피와 시간으로 맺어진 언약이기에 서로 말이 없어도 신뢰가 쌓여 있는 것이다.


그런데 어려서 이런 신뢰가 쌓이지 못한 환경에서 자라난 사람들이 있다. 폭력의 언어가 난무하고, 심지어 물리적 폭행까지 보면서 자라났다면 그 피로 맺어진 인연의 언약은 의미가 없다. 겉으로 드러난 폭력은 없을지라도 믿음이 무너진 가정들이 있다. 서로 상대방 탓을 하고, 무시와 거절, 비난과 비하가 난무하는 부모 밑에 자라다 보면 마음은 갈 곳을 잃고, 정처 없이 방황하게 된다. 가장 신뢰해야 할 친부모에게서 조건 없는 사랑을 받지 못한다면 어디서 그 사랑을 받아들일 마음이 생길 수 있을까? 그래서 가족 안에서 이루어지는 사랑은 중요하다. 그 신뢰가 세상을 향해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알고 보면 그 부모도 그의 부모로부터 그런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대물림이다.


사랑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사랑을 주기는커녕 사랑이 무엇인지 인지하지도 못한다.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란 사람은 모른다. 모든 사람이 다 자기와 같은 줄 안다. 부모가 행복하게 사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모든 부모가 그런 줄 알고, 또 결혼이나 사람에 대한 인상이 좋다. 하지만 불행한 가정에서 자란 자녀들은 사람에 대한 생각이 적대적이다. 마음이 닫혀 있고, 의심부터 먼저 한다. 인간관계에 많은 걸림돌이 발생한다. 친구를 사귀고, 연애를 하면서도 어려움을 겪고, 결혼과 부부 사이의 소통도 힘들고, 그로 인해 자녀들 또한 따뜻한 애착 관계를 형성하지 못한다. 그런 무지의 불행과 대물림을 끊으려면, 그런 사랑을 받아야 한다. 그런 사랑을 받을 수 없다면 그런 사랑을 찾아내어 스스로 구현할 때 끊을 수 있다.


인간의 내면에 사랑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랑을 받아보거나 만나 보지 않았기 때문에 나타나지 않았을 뿐이다. 내면에 잠든 거인이 깨어날 때 그런 사랑은 누구나 있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 사랑을 통하여 우리는 깨닫는다.


진정한 가족이란 혈연으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님을...


시간으로 맺어진 인연에, 신뢰가 쌓이면 그 또한 가족임을 인지한다. 그렇게 맺어진 인연들이 나에겐 꽤 있다. 피로 맺어졌을지라도 원수가 된 가족들이 많이 있다. 그건 가족이 아니다. 21세기 가족이란 우리 모두가 하나임을 아는 것이다. 그것을 알고 나눌 수 있는 힘을 발휘할 때 신뢰는 인연의 고리를 타고 이어진다. 조건 없는 사랑은 피를 나눈 가족의 전유물이 아니다. 육체적인 혈육만이 그런 사랑을 갖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진정한 사랑에 눈이 뜰 때 그 사랑은 모든 인류의 자산임을 안다. 그 사랑만이 인류가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열쇠다. 전쟁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 우리 모두가 가족임을 인지할 때.


인간은 '나'라는 에고에 갇혀있다. 그래서 부부간의 갈등에는 '나'가 먼저이기에 갈등이 발생하지만, 타인 간의 갈등이 발생하면, 부부가 먼저이기에 부부의 갈등은 사라진다. 그것은 이웃과 지역, 국가와 민족, 인종과 종교 간의 갈등에도 적용된다. 더 작은 공동체에서 더 큰 공동체로 나아갈 때 인간은 그 '작은 틀을 벗어날 조건'을 '대가 없이' 받아들인다. 그 작은 틀 안에는 자기 이익, 곧 '나'라는 이익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국가 간 갈등에는 무엇으로 그 이익을 넘어설 수 있을까?


하나는 외계인의 침공이다. 그때 지구인이 하나가 되는 것에는 '나'의 이익도 포함되기 때문에 국가 간의 갈등을 넘어설 수 있다. 외계의 침공에 살아남기 위하여 인간은 지구에 소속된 '하나의 공동체'로 묶이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인류 공동체 의식'이다. 인류가 하나의 가족임을 깨달을 때 국가 간의 갈등은 사라진다. 결국 '하나의 공동체' 의식 차원에서 보았을 때는 외계인의 침공과 같은 개념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갈등은 외부적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의식이 바뀜'으로 현상계의 바뀜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이 홍익인간의 정신이다.


대한민국이 오랫동안 이어온 '우리'라는 정(情)의 개념이 바로 가족 공동체 개념이다. '나'와 '너'가 아닌 '우리'라는 개념으로 그 울타리를 넓혀왔다. '우리'는 함께다.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로 묶일 때 우리는 가족이 된다. '하나의 공동체'다.


정(情)은 신뢰다. 또 함께 나눔이다. 내가 먼저 너에게 보내는 마음의 편지다. 시간은 신뢰를 쌓는다. 그 시간을 줄여주는 것이 정(情)이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서 정(情)을 단번에 느끼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 정(情)은 보이지 않는 줄로 연결되어 있지만, 작은 친절과 배려에서 나타난다. 전혀 알지 못한 남이었지만, 산에서 떡과 물을 나눠주고, 남의 물건에 손대기는커녕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주는 신뢰에서 한국인의 정(情)을 배운다. 정(情)은 그렇게 전달된다.


진정성 있는 신뢰를 보내줌으로 내가 먼저 마음의 문을 열어주는 것이다. 이 문으로 들어와도 된다고. 그리고 함께 우리의 따뜻한 행복을 누려보라고.


대한민국이 가진 세계인의 보배인 정(情)은 모든 인류가 배워야 할 정신문명의 정수다. 이것만이 갈라진 인간의 삭막한 정서를 어루만지며, 따뜻한 마음의 고향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이다.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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