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잠시 생각의 열차에서 멈춤이 필요하다

by 행복스쿨 윤정현

살다 보면 의견이 다를 때가 있다.
나는 이러고 싶은데,
너는 저러고 싶다.

그게 첨예할 때는 짜증을 내고,
분노하면서 미워하기까지 한다.
그 미움이 극에 다다르면,
주변에 험담과 이간질을 한다.
스트레스는 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주변에 있는 사람은 괴롭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은
가족이나 친척, 친구
그리고 가까운 이웃이나 지인이다.

모르는 남이면 상관없는데
주변이 수많은 끈으로 연결되어 있기에
쉽게 한 쪽 편만을 들기는 어렵다.

솔루션을 찾다가
"굳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산다.
그런데 그 행복을 파괴하면서까지
"생각 전쟁"에 끼어든다.

"네 생각은 그런데,
내 생각은 이래!"
그냥 서로의 생각 다름이다.
그러면 좋으면 하면 되고,
싫으면 거절하면 된다.

그런데 상대방 생각을 거부하면,
거기에는 내 고집과
의견이 관철되지 않음에 대한
자존심의 감정까지 내포한다.
그 거절에는 "네가 감히"라는
"나"의 존재감 상실의 억울함을 끌어와
복수하고자 한다.

"굳이 그렇게까지 피곤하게 살 필요 있나?"
라는 생각이 떠올랐다.

형제끼리 여행 가는데,
사이가 안 좋은 관계로 인하여
누굴 넣고
누굴 빼자는 의견으로 분분했다.
'이 중재를 어떻게 하면 제일 좋을까?'라는
생각이 떠오르면서

"우리가 사는 것은 행복하기 위해 사니
행복한 선택을 합시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그렇게 말을 하며 정리했다.

굳이 하려는 사람은
상대의 방어진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이요.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하는 사람은
그 방어진을 뚫고 들어가기는 원치 않는 사람이다.

'굳이'는
필요 이상으로
무엇 때문에
어째서
구태여라는 의미가 들어있다.
그렇게까지 하려는 이유를 찾아보라는 말이다.

여기서 찾은 결론은
행복을 선택하면 자유로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자존심을 선택하면,
상대방도 불행하고,
나 자신도 불행해진다.

그리고 그 찜찜함은
서로 사과하고 용서하기까지
감정의 찌꺼기로 남아 있다.

"굳이 그렇게 하려는 이유가 무엇인가?"
삶이 잠시 꼬였다면,
한 번 질문해 볼 일이다.


윤 정 현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주인공이다.
누구의 부속물이나
조연으로 살아가는 존재가 아니다.

더 나은 선택권이
내 손안에 있다면

"나"라는 자존심을 내세우기보다
무엇이 더 행복한 선택인지
아니면 불행한 선택을 하고자
고집부리고 있는지

잠시 생각의 열차에서 멈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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