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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스쿨 윤정현 Apr 23. 2022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죽고 싶다는 친구에게

"근데 어차피 뛰어내릴 거, 먹고 사느라 바빠서 못 본 드리마들, 전부 다 질릴 때까지 보고 와."

"멀리서 보며 좋아했던 사람한테, 밥이라도 한 끼 먹자고 하고 와."

"울면서 다닌 그 회사, 때려치우고 네가 좋아하는 여행도 다녀와."라고 말했더니

퉁퉁 부은 얼굴로 환하게 웃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이런 생각을 해봤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다 끝났다고 생각될 때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질문을 적어보았다.


인생에서 한번 다른 방식으로 살아 보는 것.
변화를 위해 한번 도전해 보는 것.
무섭고 두렵기 때문에 평소에 못했던 것을 실행해 보는 것.
아무 조건 없이 무조건적으로 무한한 사랑을 모르는 사람에게 나누어 보는 것.
답답해서 숨이 막힐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만의 여행을 떠나 보는 것.
스트레스에 갇혀 폭발하려고 할 때 땀이 비오듯 육체 노동을 해 보는 것.
일이 너무 안 풀릴 때 내가 전혀 해보지 않은 영역의 일을 도전해 보는 것.
힘들 때, 아무도 몰라 줄 때, 만날 사람이 없을 때 오로지 나 자신만을 위해 행복한 시간을 갖는 것.
무언가를 할 수 없을 때 자기계발을 위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여 자격증을 취득해 보는 것.
이렇게도 저렇게도 잘 안 될 때 상상할 수 없는 커다란 것을 시도해 보는 용기.


이러한 것들은 이루고, 못 이루고를 떠나 내가 알지 못한 영역의 세계가 너무 많이 있구나! 그런 생각을 하면서 의식이 엄청나게 확장된다.

그리고 그러한 시도 속에서 보이지 않던 영역의 세계가 보이는 세계의 영역으로 하나 둘 들어오면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도 있음을 발견한다.

할 수 없다고 여겼던 일들이 작은 성취를 맛보면서 스스로에게 '나도 할 수 있는 일이 있구나!'라는 경험을 통해 뿌듯함과 자신감, 자기 효능감을 느낀다.
예전에는 못하고, 자책하고, 물러서고, 위축되어 있던 시간이 많았다면,
방법을 알고 나서는 도전하는 것을 즐기는 모습을 본다.
하다 안 되면 뒤로 물러나는 법도 배우고, 전혀 모르는 미지의 영역도 도전할 수 있는 여유를 배운다.
배우다보면 요령도 터득하고, 삶의 지혜도 배운다.
그렇게 걷다보니 전혀 모르던 사람과 만나고, 그들이 손을 내밀어준다.
시작은 정말 보잘 것 없이 미미하지만, 진짜 보여줄 것 없이 미숙하고, 비난 받지만 그걸 오랜 시간 걷다보면 여유를 배운다.
공격도 능수능란하게 받아내는 법도 배운다.

첫 도로운행을 12인승 승합차에 사람을 태우고 인천에서 시내운전을 했을 때를 기억한다.
혼자 도로운행을 할 때는 아무렇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타고 있다는 생각에 두 다리가 얼마나 부들부들 떨리든지 손으로 살짝 모르게 누르는데도 그 떨림은 멈추지 않았다.
타고 있던 분들이 걱정할까봐 모르게 살짝살짝 누르는데도 초보운전의 미숙함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 경험도 시간이 지나니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모든 분야가 이와 비슷할 것이다.
무언가를 배운다는 것은 초보다.
초보는 늘 실수하고 넘어진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과해야 능수능란하게 잘 다루는 시간이 온다.
그때는 개구리 올챙이 시절 잊는다고, 자신이 예전부터 잘하는 줄 착각한다.
달인이 되어서도 초보를 잊지 않는 것, 그것이 겸손이요 배려다.

신은 빠름을 모른다.
너무 멀다고, 갈 수 없다고, 시간이 없다고, 돈이 없다고, 능력이 없다고 여겼던 그곳에 이르렀을 때, 기다림과 그래도 걷는 법을 통해 신을 만난다.
신은 그곳에서 그곳에 이르까지 나와 동행하였다.
이르기 전에는 모른다.
이르고 나서는 깨닫지 말라고 해도 깨닫는다.
온몸으로 깨달음이 스며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때가 오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 살아왔던 꺼풀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타인을 향해 손을 내미는 법을 저절로 터득한다.

거기에 삶의 이유가 있음을 발견하기 때문이다.자신 또한 그러한 사람들, 보이지 않던 손길들에 의해 여기까지 왔음을 깨닫는다.
그토록 외롭고, 그토록 의미 없고, 그토록 공허하며, 그토록 살기 싫었던 이유들이 이웃과 손을 자연스럽게 내미는 여유 속에서 찾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흐르면 삶은 살아내는 것이 아니라 그냥 그렇게 어울려서 살아가는 것임을 알게 된다.

살아가다 보면 진짜를 만난다.

향기 없는 세상인 줄 알았는데, 어마어마한 향기를 품은 인간들이 여기저기 숨어서 그 향내를 무한한 사랑으로 발산하고 있었다.

아닌 줄 알았던 사람도 그 깊은 마음을 알게 되면 또 다른 이를 위해 알게 모르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썩은내가 가득한 곳에도 삶은 살아간다.

마치 진흙 속을 뚫고 아름다운 연꽃을 피워내듯 눈물이 가득한 곳에 삶은 의미를 찾아내길 기다리고 있었다.


다시 태어난다는 것은 보이는 세계에서 보이지 않던 세계를 발견하면서 시작된다.


어렵지만 진짜 어렵지만 그런 도전을 경험으로 쌓아가련다.

태어났기에.

여기 이 지구에 왔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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