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이 울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이 찌르는 상처에.
모르는 사람이 그러면 괜찮다.
부정적인 사람이 그러면 이해한다.
나름 사회에 기여하는 일을 하거나
의식 있는 강의를 하는 사람
심지어 상담을 한다고 하거나
성직자의 일을 한다는 사람들까지.
부부 간에도
부모와 자녀 간에도
이러한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이것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 관계로
2~3살짜리 아이를 바라보는
부모의 눈빛에서는 꿀만 떨어진다.
그래서 꿀 떨어지는 관계에서는
상처를 주는 일이 잘 일어나지 않지만
대부분 아이였을 적을 제외하고는
그러한 상태는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들은 따뜻한 말이 무엇인지
들어본 적이 드물다.
그래서 그것을 적용할 줄 모른다.
가장 사랑한다는 사람에게도 말이다.
걱정해서 한다는 말이 찌른다.
건강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 상처다.
밥을 먹지 않아 챙겨주면서 힐난한다.
그들은 모두 해주면서 상처를 준다.
그걸 주변에서 매일 같이 본다.
너무 아프다.
너무 아픈데 말할 수는 없다.
그 상황에서는 끼어들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도
그것이 자신에게 직접적으로 오는
대상화가 될 때 거절한다.
이래서 사람에게는 함부로 조언을 해서는 안 된다.
그가 준비되었을 때는 가능하다.
상담을 받겠다고 한다든지 아니면
전문가의 코칭을 받으려는 자세가 될 때.
이걸 받아들이는 상태에 이른 자를 인격자라 한다.
그 밑 단계에 있는 자는 어느 정도 인정하며 저항한다.
더 밑에 있는 사람은 변명하며 저항한다.
더 밑에 있는 사람은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낸다.
더 밑에 있는 사람은 비난을 하거나 폭언을 한다.
더 밑에 있는 사람은 폭력을 행사한다.
더 밑에 있는 사람은 살인을 저지른다.
분노조절장애는 폭언을 하는 단계부터 나타난다.
내향성이 강한 사람은
저러한 폭력성이 자신에게로 향한다.
그래서 그들은 참는 것으로 견디지만
그것은 자의 반 타의 반 형성된
착함이라는 프레임으로 포장되었을 뿐
엄청난 트라우마로 작동하며
그 한계치에 이르렀을 때
스스로도 감당 못하는 폭발성을 발휘한다.
그래서 독서가 중요한 이유다.
이는 직접적인 대상화가 아니기에
그 문맥을 이해할 때 스스로 받아들인다.
또한 강의도 그렇다.
감동을 받고,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
그는 자신의 언행에 앞서 마음을 살핀다.
설교 또한 그런 효과를 발휘한다.
다만 설교는 매주 듣는 것이
관례화된 습관으로 변질되는 순간
천국행 티켓을 위한 시간 때우기다.
학습된 지식이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경우의 수가 모두 그렇다.
그들에게 배움은
지식의 나타냄을 위한 방편일 뿐
의식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살피고
통제하는 역할로서 작용하지 않는다.
내가 이 말을 하면
상처가 될까 안 될까?
그걸 살피지 않는다.
그러한 내적 교육을 받아보거나 학습되지 않았다.
가정교육이 잘 되었다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잘 된 사람은 상대를 대할 때 내면을 살핀 후
말과 행동을 선택적으로 배려하며 구사한다.
그들은 마음에서 더 나은 것을 포착하고,
생각에서 선택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상처를 주는 사람의 언어에는
상대의 약점을 캐취하여 말한다.
상대의 장점이나 강점을 포착하여 표현하는 법을 모른다.
이것의 차이가 얼마나 놀라운지 모른다.
친구가 없는 아이가 있었다.
일반론으로 친구가 없을 수밖에 없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 아이에게 강점만 말해줬다.
"너는 대화를 하거나 글을 읽으면 그 핵심 맥락을 파악하여
하나의 단어로 표현하는 능력이 탁월해!"
"또 꽃이나 식물, 색채에 대한 감성적 감각이나
디자인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뛰어난 것 같아!"
"내향적인 것만 같았는데, 어떻게 고등학생이 전혀 모르는
낯선 독서토론 모임에 참석할 도전을 했는지 네가 대단하다."
"뜨개질 동아리 활동에서 네가 언니들의 참가 여부와 실 구매에 대한
관리와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고, 너의 배려하는 마음에 감동했어."
이렇게 그 아이의 강점을 최대한 찾아서 말해 주었더니
"중학교 생활도 힘들었는데, 다행히 고등학교에서는 글쓰기 덕분에
학교 생활을 너무 잘하게 되었어요."
이렇게 말하면서 지금은 얼굴에서 여유와 미소가 떠나가지 않는다.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그의 장점을 포착하여
칭찬과 응원, 지지와 격려의 피드백을 해주었다.
사람이 사람에게 인정을 받는 것,
그 사람이 누구인지를 불문하고,
그것은 사람을 가장 행복한 상태로 이끌어준다.
물론 채워줘야 할 부분은 누구나 있다.
지지와 응원은 없고, 책망과 부족한 부분만 드러내니
결국 인간은 영혼이 고갈되어 살아갈 수가 없다.
5번 칭찬하면 1번 정도 지혜롭게 터치해 주는 역량이 필요하다.
같은 말을 해도 왜 그렇게 서운하게 하냐는 상대의 말은
생각보다 커다란 상처가 되었다는 말이다.
너는 그것밖에 못하냐는 말은
너는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이다.
중요한 것도 아닌데 말을 끝까지 지지 않고
자기의 주장만을 하려는 사람은
상대를 무시하고 있다는 의미다.
이러한 내적 상흔은 그냥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래도록 쌓이고 쌓여 관계를 무너뜨린다.
다 내려놓아 보라!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다.
마주하는 사람에 대한 눈빛부터 바꾸어야 한다.
마치 2살짜리 자녀를 바라보듯
무한한 애정을 담아 그의 가장 좋은 장점을 파악한다.
어떤 말을 던질 때 저 얼굴에서 미소가 떠오를까?
그것만 생각하면서 관찰한다.
그때 떠오른다.
가장 적절한 말이...
시간이 흐르면
두 사람 관계에서
예전에는 느끼지 못한
따뜻함을 느낀다.
삶이라는 여정에서
전혀 의식하지 못한 세계로 입성한다.
거기 놀라운 사랑이 기다리고 있다.
가장 놀라운 행복이 둘의 사이에 스며든다.
어린 왕자는 처음으로
여섯 개의 별에서 찾지 못한 행복,
곧 여우를 통하여 진정한 친구가 되는 법을
지구별에서 배웠다.
길들임과 길들여짐은
타인의 마음으로 들어가는 법을
깨달으면서 완성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