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리모델링 (1) 리모델링을 결심하다

마음을 다시 짓다

by 새롬
"중요한 결정을 빨리 내리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 찰나의 결단 뒤에는, 이미 수천 번의 망설임과 수만 시간의 고뇌가 깔려 있을 테니."




새벽 5시가 넘도록 잠들지 못했다. 전날 마신 카페인 탓이라 핑계를 대고 싶었지만, 실은 오늘이 바로 그 '착공일'이기 때문임을 알고 있었다. 쪽잠을 자고 일어난 오전 10시. 더 이상의 시뮬레이션은 무의미했다. 나는 무작정 몸을 일으켰다. '일단 병원 문앞까지만 가보자. 가서도 아니면 돌아오면 되니까.'


병원으로 향하는 길, 내비게이션의 남은 거리가 줄어들 때마다 마음은 수십 번도 더 유턴을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진료실 문을 열고 산부인과 선생님을 마주한 순간, 내 안의 소란은 거짓말처럼 잦아들었다.


Estradiol Depot(에스트라디올 데포주)[1]. 내 몸에 들어온 이 투명한 액체는 단순한 약물이 아니었다. 그것은 내 몸의 낡은 설계도를 폐기하고, 새로운 구조물을 짓기 위해 투입된 첫 번째 자재였다. 진료실을 나오며 멍하니 생각했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몇 개월 후면 생식 기능이 멈출 것이고, 내 삶은 비가역적인 변화의 궤도에 진입했다.'


마음을 다잡기 위해 5km 러닝을 했다. 기분 탓일까, 평소보다 호흡이 가쁘게 느껴졌다. 남성 호르몬이 줄어들며 심폐 지구력이 떨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숨이 차오르는 그 고통조차 달게 느껴졌다. 내 몸은 이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주 정직하게 허물어지고 다시 지어지고 있었다.


먼 훗날, 나는 오늘의 선택을 후회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미래의 불확실성 때문에 현재의 불행을 견디는 짓은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훗날의 나를 위해, 떨리는 손으로 작성했던 메모를 남겨둔다.




1. 기대 효과

- 고질적인 우울감과 젠더 디스포리아 해결.

- 한 번 사는 인생,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살자.

- 살아갈 수 있는 사회적,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 있음.


2. 위험 부담

- 친자식을 갖기 어려움.

- 결혼 시장에서의 난이도 상승.

-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괴로워할 가능성.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났다. 공사는 순조롭게 진행 중이다. 땀 냄새가 달라졌고, 남성적인 체취가 사라졌다. 거울 속에는 선이 얇아진, 제법 패싱(Passing)[2]이 가능한 사람이 서 있다. 흥미로운 건 외관뿐만 아니라 내부 인테리어도 변했다는 점이다. 감정의 결이 섬세해졌고, 무엇보다 누군가를 연모하는 마음이 이전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깊고 커졌다.


목소리를 내기 전까지는 낯선 이들이 나를 그녀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이제 남은 건 내부 설비, 즉 목소리다. 나는 오늘도 세상이라는 무대에 서기 위해, 훈련된 배우처럼 목소리를 가다듬는다.




[1] 에스트라디올을 주성분으로 하는 여성호르몬 근육주사제

[2] 트랜스젠더가 자신의 성 정체성에 맞게 사회에 인식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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