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다시 짓다
나는 예전부터 '딸바보'라는 단어에 심한 알레르기가 있었다.
그 단어 속에는 내가 결코 가질 수 없었던 두 가지 결핍이 교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들로 태어났기에 감내해야 했던 엄격함(차별), 그리고 딸로 태어나지 못했기에 평생 받아보지 못한 딸로서의 사랑(부재).
학원 원장님은 전형적인 '딸바보' 아빠였다. 딸만 셋을 두셔서인지, 그분의 자식 사랑은 학원 선생님들을 대하는 태도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었다. 여선생들에겐 사적인 안부를 묻으며 살뜰히 챙기셨지만, 남선생들에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며 모질게 구는 경향이 있었다.
그 차별을 목격할 때마다 묘한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다. 지정 성별 남성으로서 겪는 억울함도 있었겠지만, 그보다 더 깊은 곳에는 트랜스젠더로서 느끼는 근원적인 이질감이 자리하고 있었다. 내 영혼의 온도는 그 다정함과 더 잘 맞았기에, 차가운 배제가 더욱 시리게 다가왔다.
나는 판을 바꿔보기로 했다. 내 인생의 설계도를 다시 그리기 시작한 이상, 사회적 관계의 입면도(Elevation) 또한 수정해야 했다. 나는 원장님 앞에서 숨겨왔던 나의 모습을 조금씩 꺼내놓기 시작했다. 과거엔 '남자다움'을 연기하느라 억눌렀던 부드러운 화법, 세심한 리액션, 공감의 제스처들. 억지로 꾸며낸 것이 아니었다. 그저 내 안의 콘크리트벽 속에 갇혀 있던 '진짜 나'를 입면도 밖으로 드러낸 것뿐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위장막이자, 동시에 생존을 위한 수면 밑 물장구였다.
효과는 확실했다. 나의 태도와 외모가 부드러워지자, 원장님의 태도 또한 눈에 띄게 유해졌다. 남성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있을 때는 닿을 수 없었던 다정한 소통의 영역에, 나도 슬그머니 발을 들여놓게 된 것이다.
겉으로는 완벽한 커튼월(Curtain Wall)을 두른 채 사회 속에 섞여 들었지만, 그 유리벽 안쪽의 세입자는 여전히 숨을 죽인다.
나는 오늘도 투명망토를 고쳐 입고 문밖을 나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