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하는 이야기
2014년 6월의 어느 날이었을까요. 학교 앞 3평 남짓한 원룸에서 자취를 하던 때였습니다. 책상도 없어서 등을 벽에 기대고 노트북으로 자기소개서의 업무역량 관련 문항을 쓰는데 1,500자 내외로 써야 하는 문항 앞에서 숨이 턱 하고 막혀서 안 그래도 더운 방의 창문을 열어봅니다. 날을 쨍쨍하니 참 좋았었네요.
반지하에서 1층으로 이사를 가면서 좋았던 점은 딱 하나, 밖에 비록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지만 창을 열어는 볼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반지하에서는 매연과 먼지가 너무 많이 방으로 들어와서 창문을 꽁꽁 닫아두고만 살았거든요. 그렇게 창 밖으로 더운 한숨을 내쉬던, 개인적으로는 매우 착잡한 때였습니다.(*2년간 취업 준비를 했고, 약 200여 곳의 문을 두드렸으나 결국은 최종 탈락 엔딩이었습니다.)
이미 상반기 공채는 어느 정도 결과가 나왔고, 이제 인턴 모집 기간이 다가와 바짝 긴장한 채로 도서관과 집을 오가면서 준비했거든요. 그 얘기는 이미 공채에선 남김없이 다 떨어졌다는 얘기였습니다. 다른 경험들이 많이 없이 학교생활만 했던 저로서는 남들에게 나를 소개하는 글이 이렇게 비루할 거라고 생각조차 하지 못했었습니다.
학생회 활동도 하고, 과에서도 열심히 일하고, 학기 중에는 근로장학생도 하면서요. 물론 놀기도 많이 해서 성적은 어디 내놓을만한 건 못되지만 나름 바쁘게 대학생활을 했음에도 불구하고(*사학과 학생회, 문과대 학생회를 비롯한 교내 활동과 함께 친구들과 자취생협의회까지 결성(?)) 뭐 하나 쓸 만한 이야기가 없었다는 건 참, 안타깝다 못해 서글프기도 한 현실이었죠.
군대에 다녀와서 현실을 깨닫고 그동안 놀던 것도 버려두고 부랴부랴 대외활동이니 공모전이니 도전해 봤지만, 그것도 취업 전선의 갈림길 앞에서는 결코 확연한 이정표가 되지는 못했나 봅니다. 썰 푸는 건 정말 자신이 있었는데 그런 소스로나 쓸 정도는 되었지만 주효한 경력은 여전히 전무한 상태였기 때문이죠.(*다 경력을 물어보면 나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나! 하며 되는대로 3번의 대외활동과 공모전 도전...! 해본 기록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거기다가 당시에는 생각을 잘 못 했던 것이, 사학 전공이지만 전공을 하나도 못 살린다고 하더라도 어디든 되기만 한다면... 이란 생각으로 어떤 기업인지, 나는 여기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크게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일에 대한 생각보다는 '나도 어딘가에서 이 사회의 일원으로 보탬이 되고 있어! 근데 생각보다 좀 잘 벌기도 해' 따위의 말이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10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니 그렇게까지 했어야 하나 싶은데, 그때는 자존감도 많이 낮아진 상태이고 뭔가 역전해보고 싶다는 마음과 욕심이 더 컸기 때문에 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아서 준비할수록 미진한 결과만 나오곤 했습니다.(*이때는 심지어 해외봉사활동에 지원한 것마저 떨어져서 난 정말 되는 게 없구나 싶었습니다.)
어떻게 서류만 되면 면접은 그래도 영 못하는 것 같지는 않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싶었지만 면접장에서 이내 염소 소리를 내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뭐든 잘할 수 있다며, 뭣도 못할 것 같은 말들을 외치는 게 다였습니다.
그러던 중 마지막으로 한 번 해보자고 넣었던 상반기 인턴 모집 시즌,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을 전해 듣게 됩니다. 한 주류회사의 영업 인턴직 서류 합격 메일이었는데, 딱히 하고 싶은 일이라고는 생각지 않았지만 당시에 전공불문으로 나를 뽑아주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거기까지 손을 내밀어본 거였죠. 좋은 경험이다 생각하고 해 봐야지, 라며 면접도 열심히 준비했습니다.
잘하면 정규직 전환도 할 수 있고, 잘 안된다고 하더라도 이 경험을 바탕으로 뭐든 해볼 수 있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문득 면접 준비를 하면서 이게 맞나, 나는 취업이 하고 싶은 거였을까, 아니면 이 일을 하고 싶긴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습니다. 이미 일이 저질러진 뒤에 그제야 일에 관한 고민을 해본 거였죠.
그래도 뭐 이제 남은 선택지는 없으니 붙여만 준다면 열심히 한다고 해봐야지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집과 도서관을 오가며 면접스터디도 하고, 시사상식 스터디도 해보면서 차근차근 준비를 해나가던 어느 날, 그동안 연락이 뜸했던 사촌누나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니 요새 뭐 하노?"(*저는 경주가 고향이자 경상도에서 20여 년간 살았던 찐 경상도 사람으로 가족들도 모두 사투리를 많이 씁니다.)
*당시 취업도 안되고 갑갑한 마음에 조계종에서 진행한 2013년 청년출가학교 2기에 참가했었습니다. 총 8박 9일 일정으로 진행되었으며, BBS 불교방송에서 전체 일정을 팔로우해주셔서 '새로운 시작, 출가' 라는 이름으로 방영되었습니다. 궁금하신 분들은 유튜브에서 '새로운 시작, 출가' 를 찾아보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