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의 격차, 사고방식의 격차
"책을 왜 읽어야 하나요?"
답하기 쉽지 않은 질문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분명 많은 사람들이 책 읽기는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한국인 셋 중 한 명은 연 독서량이 0권일 만큼 한국은 책을 안 읽는 나라다. 그래서인지 그들은 항상 책을 읽어야 할 구실을 찾는다.
누군가 나에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물을 때 “교양 있는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라는 뻔한 답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기가 생각처럼 만만치는 않다. 사람마다 책에서 얻고자 하는 가치도 다르고 목적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름대로의 보편적인 대답을 하기 위해서 책을 읽어야 하는 이유를 한편으로는 실증적으로 고민을 해보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추상적으로 고민을 해보았다. 결론적으로 책은 단순 교양을 넘어서서 지식의 양극화와 관련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또한, 책은 앞으로 내가 살아가기 위해서 갖춰야 하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에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생각을 했다.
책이 얼마나 중요하면 헤르만 헤세는 독서에 대해서 “독서는 사람이 음식을 먹는 것과 같다”라고 말했겠는가? 밥을 먹지 않으면 인간은 죽는다 그와 비슷하게 우리가 인간이라면 생각하고 고민하는 것은 필수적이고 존재를 증명하는 방법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시대는 빠르게 변하고 있고 인공지능은 우리의 일자리를 뺏어가고 있다. 그리고 일자리 양극화 역시 이미 시작되었다.
1. 지식 습득의 양극화
한 인간이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과 사안을 자주 접하고 그것들을 잘 이해를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좋은 식견을 제공해줄 수 있는 무언가를 보고, 듣고, 읽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보통 다른 시각으로 생각하는 사람을 만나기란 쉽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책, 영화, 고급 콘텐츠 (신문이나 잡지), 여행과 같은 방법으로 이러한 점을 해소하려고 노력한다. 이러한 활동 전부가 좋은 영향을 주지만 시간과 금전적인 비용을 생각했을 때 단연 책과 고급 콘텐츠가 가장 효과적이고 저렴한 지식 습득의 수단이다.
세계 최대 규모의 출판사인 펭귄 랜덤 하우스의 2013년 매출은 27억 유로(약 3.5조 원)였다. 그 후 2년 동안 37%의 매출 성장을 보이며 2015년에는 약 37억 유로(약 4.8조 원)라는 매출을 달성할 수 있었다. 전자책이나 소셜 미디어의 영향으로 종이 책을 읽는 사람은 사라질 것이라는 사람들의 기대와는 달리 종이 책의 수요는 다시 회복기로 접어들었다. 그렇다면 종이 책은 누가 소비할까? 아래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 미국에서 종이 책의 79%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들이 소비한다. 미국인의 32%가 대학 졸업장을 가지고 있는 점을 감안했을 때 이는 지식이 있는 사람들이 지식을 더 탐한다는 증거가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인 영향력을 지닌 영국 유력 시사주간지인 The Economist 역시 지속적으로 성장을 하고 있다. 2015년에는 2014년 대비 순익 6,000만 유로(약 810억 원)를 증대시키며 크게 성장을 했다. The Economist는 광고수익이 줄었음에도 온라인과 오프라인 구독자를 증가시키며 꾸준히 성장을 하고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점은 The Economist라는 잡지의 특징이다. The Economist는 어렵고 수준이 높은 잡지로 유명하고 빌 게이츠도 “매주모든 기사를 빠짐없이 (from cover to cover every week)” 읽는다고 말할 정도로 미국이나 유럽 국가의 고소득층이 즐겨 읽는 잡지다. 아래 그래프에서도 볼 수 있듯 The Economist는 미국의 다른 유력 매체와 비교해도 고소득층 구독률이 가장 높은 잡지다.
물론 소셜미디어나 인터넷 포털을 통해서 다양한 정보를 습득할 수 있다. 하지만 소셜미디어를 통해 가볍게 접할 수 있는 정보는 큰 덩어리의 일부분일 뿐이다. ‘잘 정돈된 지식에 접근하는 것’, ‘새로운 정보를 얻는 것’, 이러한 활동이 모여 한 사람의 통찰력을 형성하게 된다.
존 스튜어트 밀이 말했다.
결국 만족해하는 돼지보다 불만족스러워하는 인간이 되는 것이 더 낫다. 만족해하는 바보보다 불만을 느끼는 소크라테스가 더 나은 것이다. 바보나 돼지가 이런 주장에 대해 달리 생각한다면, 그것은 그들이 한쪽 문제만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비교 대상이 되는 다른 사람들은 두 측면 모두 잘 알고 있다.
한쪽 문제만 접한 사람은 양쪽 문제를 이해하지 못한다. 하지만 양쪽 문제를 다 접해본 사람은 두 측면 모두 이해하고 있다. 고급 콘텐츠와 책을 읽어보고도 스스로의 경제적 활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된다면 그때 가서 결정해도 된다.
2. 미래의 양극화의 원인: 인공지능
특별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보다 현재와 같이 좋은 시간은 없었다. 하지만 평범한 기술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이보다 더 안 좋은 시대는 없었다. 왜냐하면 컴퓨터, 로봇, 디지털 기술들이 평범한 기술들과 능력들을 굉장히 빠른 속도로 획득 하고 있기 때문이다.
- MIT Sloan 경영대학 교수 에릭 브린욜프슨 저서인 ‘제2의 기계 시대’ 중 -
윈스턴 처칠은 “책은 가끔 문명을 승리로 전진시키는 수단이 된다”라고 말했다. 큰 업적을 위해서는 독서는 필수라고 주장한 셈이다. 물론 “그래서 뭐 어쩌란 말인가?”라고 묻는 사람도 있고 “우리는 충분히 소셜 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많은 ‘정보’를 얻기 때문에 굳이 책이나 고급 콘텐츠를 소비할 이유가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다.
물론 소셜미디어나 인터넷을 통해 단순 데이터나 정보를 쉽고 효율적으로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핵심적인 정보는 그곳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가 얻어야 하는 지식은 누군가의 통찰력이고 누군가의 지혜다. 그리고 남들과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통찰력과 지혜를 되도록이면 자주 접해야 한다.
인공지능의 성장으로 없어질 직업과 그로 인해 발생될 직업 그리고 소득의 양극화 역시 개인의 사고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우리는 가까운 미래에 인공지능과 경쟁을 해야만 한다. 다만 인공지능은 다량의 데이터와 정보를 통해서만 특정 사물이나 사건을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인간이 사고하는 방식과 많은 차이가 있다. 예를 들면 어린아이가 고양이를 인식하는 방법은 몇 번 본 고양이의 모습과 고양이라는 개념적 이해를 통해서 고양이라는 생물을 판단한다. 즉, 인간은 추상적 사고를 통해서 배우고 생각을 하고 인공지능은 구체적 사고를 통해서 학습을 한다.
광고를 통해 생각해본 미래 인간의 역할
내비게이션을 통해서 A라는 장소에서 B라는 장소까지 최단 거리를 찾는다고 가정해보자. 내비게이션에서 감안해야 할 변수가 너무 많다. 진짜 “최단거리”를 찾는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 한 이유는 A부터 B까지 이동하는 중 도로의 상황이나 기타 변수가 계속해서 변화하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마다 차선책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진짜 단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하다. 만약 정확하게 모든 변수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해도 가장 큰 문제가 있다. 딱 한 사람만 A부터 B까지 이동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예를 들면 A부터 B까지 도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최소 10만 명이 있고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은 최단거리를 제시한다면 그 순간부터 그 경로는 최단거리가 아니게 된다. 그 경우 차선책이지만 우회하는 길이 최단거리가 되어버린다.
위의 내비게이션 예제와 비슷하게 광고에 사용될 최적화된 창작물을 만드는 알고리즘(혹은 AI)이 존재한다고 생각해보자. 그 경우 시장의 모든 데이터, 고객 정보, 과거 광고 성과를 고려해서 알고리즘은 최적의 이미지와 비디오의 형식을 제공해줄 것이다. 알고리즘마다 결과가 비슷하게 나올 것이고 모든 광고주는 비슷하게 최적화되어있는 창작물로 광고를 집행할 것이다. 물론 평균 약간 상회하는 정도의 성과를 달성할 수는 있겠지만 고객 입장에서는 비슷한 형식의 광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는 뜻이기도 하다(모두가 같은 것을 하면 더 이상 최적이 아니게 된다). 인간의 변덕은 예측할 수 없기 때문에 비슷한 형식의 광고에 지속적으로 노출된다면 그에 따른 피로도 역시 계속해서 증가하게 된다. 이 경우 시장에서 보편적으로 보이는 광고를 탈피한 전혀 새로운 광고에 반응을 보일 확률은 올라가게 된다. 물론 알고리즘이 이러한 점까지 모두 고려해서 유전적 알고리즘과 비슷하게 완전 다른 방식의 광고(돌연변이: mutation)를 하나씩 만들 수도 있다. 여기서 질문은 그러한 돌연변이 역시 ‘현시점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창작물인가?’에 대한 질문이다. 우리가 상대하는 건 결국 인간이고 인간은 익숙해지면 지겨워한다. 이러한 이유로 끊임없이 그들에게 새로운 창작물을 제공을 해야지만 그들 역시 일시적으로 만족을 하게 된다.
우리가 말하는 '최적'이라는 단어는 오해할 소지를 많이 가지고 있다. 최적을 논할 때 시간에 대한 변수를 같이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광고에서 '최적'이라는 것은 그 시점에서의 최적일 뿐이다. 가까운 미래의 최적은 변할 수밖에 없다.
적절한 대상에게 적절한 광고를 노출시키고, 광고 효과를 분석하고, 최적의 예산 분배와 같은 일은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더 잘 수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좋아하고 즐거워하는 창작물은 ‘인간’이 더 잘할 가능성이 높다. 인공지능이 제안하는 창작물을 인간이 참고를 할 수는 있겠지만 인공지능이 독자적으로 무언가를 만들기란 쉽지 않아 보인다. 즉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광고를 운영할까?”에 대한 고민은 점점 사라지고 “사람들이 무엇에 열광하고, 왜 열광할까?”에 대한 고민은 점점 많아질 것이다. 현재 마케팅 인력의 대다수는 마케팅을 효율적으로 운영하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 만약 가까운 미래에 이러한 운영 활동을 훨씬 더 잘 수행해 줄 수 있는 알고리즘이 등장한다면 그들은 다른 분야에서 자신들의 직업적 가치를 창출해야 하지 않을까?
결국 지식격차는 사고방식의 격차를 만들어낸다. 그리고 더 나은 사고방식을 위해서는 지식을 탐해야만 한다. 출퇴근 시간에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보고 페이스북에 공유된 글을 읽는 것이 나쁘다는 말은 아니다. 다만 가끔은 돈을 지불하고 남의 머릿속을 훔쳐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다. 다른 누군가 열심히 생각하고 정리한 내용은 시간을 투자하고 읽을만한 가치가 있다. 인공지능을 통해 인지능력을 확장시키고 그것을 자신의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더 중요해질 것이다. 인공지능과 기계가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인간의 본질 그리고 인간 그 자체에 대한 관심과 고민은 점점 커지고 있다. 그 고민을 어떤 식으로 해소할지는 개개인마다 다를 수는 있지만 여전히 읽는 것만큼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은 없다고 생각한다.
Written by 조경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