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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수진 Jul 07. 2022

허무한 시절 지날 때

장마철은 누구에게나 피로감을 준다. 일단 공기부터 너무 무겁다. 후덥지근한 공기와 수분이 만나면, 극강의 찝찝함이라는 결과물을 낳는다. 그 와중에 깜빡하고 우산을 챙기지 않으면 갑자기 내리는 비에 속수무책으로 당한다. 뭐 우산을 제대로 챙겼다 해도 커다란 빗방울이 사방으로 후려치고 뜨끈한 바람이 사정없이 우산을 흔들어대면, 그마저 아무 소용 없다. 늘 마주하는 장마철이지만 늘 힘든 게 장마철이다. 에어컨이 빵빵한 실내로 들어가 본다. 잠시 숨이 쉬어지지만 그것마저 잠깐이다. 기계를 통해 바뀐 공기는 상쾌함을 냉각 필터에 내어줬는지, 이내 텁텁해진다. 온도계를 보면 문제가 없는데, 이상하리만큼 춥다. 시원하긴 해도 개운하지는 않다.



하지만 이 장마철을 잘 보내야 여름을 겨우겨우 받아들일 수 있다. 아무 준비도 없이 더운 여름을 맞이하는 걸 상상하니 갑자기 아찔해진다. 어쨌든 이 무더운 공기를 폐에 미리 집어넣음으로써 더위를 천천히 받아들이며 이내 익숙해지니 말이다. 호주에 처음 발을 디뎠을 때, 그때는 8월이었다. 10시간의 비행 끝에 만난 시드니는 겨울이었고, 겨울이라고 해봤자, 영상 온도임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았다. 그러니까 계절의 변화에 천천히 적응해야 새로운 계절을 아픔 없이 받아들일 수 있다.



그래서 장마철이라는 계절은 어쩔 수 없이 필요하고, 어쩔 수 없이 중요하다. 인생에 생략하고 싶은 과정이 참 많은데, 그러니까 찝찝함을 남기는 일과 사건은 굳이 없어도 될 것 같은데, 찝찝한 장마 같은 일들이 나를 적응시키고, 나를 천천히 단련시킨다. 긴긴 장마가 끝나면 분명 좋은 일이 생길 거라고 말할 수도 없다. 왜냐면 장마의 끝은 더 뜨겁고 더 무더운 여름이라는 걸 우리 모두가 알고 있으니 말이다.



6월 말부터 7월, 그리고 8월의 여름은 내가 좋아하는 시즌이 아니다. 여름이라는 단어는 형형색색 즐거워 보일지 몰라도, 매미가 빽빽 울어대는 여름은 너무도 덥고, 힘들고, 땀이 많이 난다. 사실은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든 여러 가지가 여름을 형형색색한 것으로 치장해버린 걸지도 모른다. 알록달록한 파라솔, 바다에 동동 떠다니는 동그라미 튜브, 계곡에서 먹는 빨간색 수박과 같은 초록, 파랑, 빨강의 색깔들. 모두 더위를 피하기 위해 만들어진 색깔이다.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다.



그러니까 긴 장마를 보내고 맞이하는 게 기껏해야 여름이라니. 참으로 슬프지 않을 수 없다. 아니, 글의 후반부에 왔으면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접속사를 쓰면서, 적당히 좋게 마무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 아우 근데 여름이 너무 싫은 걸. 이 계절이 길고 지루하고, 지난하고, 피곤하고, 지친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냥 장마도 없고, 여름도 없었으면 좋겠다. 이게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편안한 온도의 공기와 화창한 날씨만 계속되면 좋겠다. 다 필요 없고 인생에 그냥 행복만 있으면 좋겠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를 떠올린다. 어쩌면 작가의 상상 속에 있는 멋진 신세계는 정말 멋진 신세계다. 인간성이 제거된 세계는 아름답지 않다는 걸 말하고 싶었겠지만, 오늘의 괴로움, 소마 몇 그램이면 눈 녹듯 사라지는 그런 세계. 상처받을 일도, 상처 줄 일도 없는 모든 종류의 인간관계. 이 남자, 이 여자 매달릴 일도 없고, 서로 간에 신경쓸 일도 없고, 아무나 동시에 여러 사람과 관계를 맺으며 그저 서로에게 서로가 행복하기만 한 그런 세상. 올더스 헉슬리 선배님, 저는 그냥 선배님이 쓰신 멋진 신세계에서 살고 싶어요.



싫어하는 계절 앞에서 대놓고 투정을 부린다. 싫다고 빽빽거려본다. 하지만 내가 이런다고 해서 장마가 오지 않는 것도 아니고, 여름이 갑자기 삭제되는 것도 아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나는 장마철을 보내고 있으며, 이내 여름은 내 코앞에 의기양양하게 서 있을 거니까. 결국 나는 땀을 한 바가지 흘려 가면서 인생 앞에 두 손을 싹싹 빈다. 너무 싫지만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그러면 나도 모르는 사이 단발이었던 머리가 장발이 된 것처럼, 그러니까 천천히 한 달에 1,2센티씩 길어진 머리카락처럼 가을이 오겠지. 그리고 이내 내가 좋아하는 겨울도 올 거다. 그냥 살아야 한다. 좋든 싫든 살아야한다. 이 허무한 시절을 어떻게든 보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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