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이 좋아
*본 글은 필자의 주관적인 감상을 담고 있습니다.
첫걸음이 모든 것을 좌우하는 건 아니라지만 적어도 태도와 기분을 어느 정도는 좌우하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프랑크푸르트는 이어질 여행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대하게 만든 최고의 첫 여행지였다. 아직도 그 이름을 들으면 설레는 여행의 시작을 떠올리게 되는.
여행 후반에 가서는 겁이라곤 찾아볼 수 없이 뻔뻔하고 당당하게 다녔지만 여행 초반에는 그렇지 못했다. 이전에 썼던 글들(특히 포즈난 편에서)에서 말했듯이 낯선 환경에 당황하고 무서워하기는 기본,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어쩔 줄 몰라하곤 했다. 특히 처음 가는 유럽, 처음 떠나는 혼행, 처음 해 보는 장거리 비행까지. 무엇 하나 익숙한 것 없는 여행의 첫날은 초짜 여행자가 겁을 집어먹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춘 날이라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겁먹은 배낭여행자_그것도 혼자라면 더더욱_는 각종 범죄의 1순위 목표가 아닌가. 그것만은 면하고 싶어 (혼행의 가장 소중한 소지품들 중 하나인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할까) 공항에서 예약해둔 숙소까지 가는 길을 통째로 외우고서야 출발했다.
걱정이 무색하게도 비행 내내 어찌나 잠이 오던지, 도하까지 가는 첫 비행기에서는 밥 먹는 시간 빼고는 내내 숙면을 취했고 갈아탄 비행기에서는 책을 읽다 보니 어느새 도착이었다. 가뜩이나 혼자 가는 여행, 온갖 예약 내역들과 구글맵이 깔려 있는 휴대폰을 잃어버리면 끝장이기에 비행기가 착륙하자마자 가방에 넣고 단단히 잠가버렸다. 입국 수속을 밟고 한참을 기다려 되찾은 짐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전철에 올랐다. 역 이름과 지도까지 전부 외워버린 덕분에 무사히 숙소까지 도착할 수 있었고, 그제야 긴장이 조금씩 풀렸다. 물론 그 후로 돌아다니며 알아가게 된 프랑크푸르트는 휴대폰을 꺼내 지도를 보는 것쯤으로 소매치기를 당할 만큼의 도시는 아니었지만 미리 길을 알기 때문에 보다 편한 마음으로 여행의 첫걸음을 시작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는 많은 우연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프랑크푸르트에서는 지금까지도 연락을 주고받는 인연인 취향 메이트를 만났다. (우연과 인연에 대한 이야기는 전의 베를린 편에서 언급한 바 있다) 취향이 비슷한 데다 나를 좋아해 주고 또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일은 항상 즐거운 일이고, 머물게 된 한인민박의 스태프였던 취향 메이트 덕분에 도시의 소소한 명소들_100년도 넘었다는 커피집이나 도시에서 1-2등을 다툰다는 양조장 같은_을 알게 되어 잔잔한 도시인 프랑크푸르트에서의 여행이 더 즐거울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을 만나 들뜬 탓인지 경계가 조금 느슨해졌고, 덕분에 여행 초장부터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됐다. 프랑크푸르트에 조금 익숙해지고서 혼자 야경을 보러 다리로 향했고, 멋진 노을을 감상하고서 마저 여운을 즐기러 근처의 벤치에 앉았을 때였다. 옆에 있던 모로코 남자가 말을 걸어왔고, 귀찮긴 해도 기분이 좋았던 덕분에 스몰토크겠거니 하며 말을 이어가다 보니 점점 이야기가 이상해졌다. 급기야는 본인 집이 비었다며 놀러 오라고 하는 남자에 기겁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숙소로 돌아왔다. 스몰토크라도 최소한의 경계를 할 것. 이야기를 하고 싶지 않다면 단호하게 거절할 것. 무엇보다도 사람을 조심할 것. 이후의 여행에서도 많은 도움이 된, 하지만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사람으로 인해 웃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프랑크푸르트였다.
어째 쓰고 보니 프랑크푸르트에서 얻은 것들_특히 즐거운 이야기와는 약간 거리가 있는_을 위주로 글이 진행되었지만 여행 이야기를 하면 프랑크푸르트 이야기를 빼놓지 않을 만큼 이 도시를 좋아하고 또 여행의 첫 도시로 추천한다. 도시와 자연이 적절히 어우러져 유럽 특유의 푸릇푸릇함과 편리한 도시생활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환경과 예쁜 노을_날씨가 끝내주게 좋았던 덕분일지도_ , 알차게 구성된 많은 박물관들까지 프랑크푸르트는 꿈꿨던 유럽의 모습이었다. 심지어 많은 유럽 도시들을 방문하며 많은 한국인들이 느낄 것이라 생각하는 각종 불편사항들까지 별로 느껴지지 않는 유럽 말이다. 유럽이라는 낯선 곳에 천천히 적응하며 여행을 시작하기에 역시 프랑크푸르트는 최적의 도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