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ccent reduction 워크샵 해프닝
프로그램 1기 때 있었던 일이다. 스태프 미팅에서 N이 외부 강사를 초빙해서 accent reduction 워크샵을 진행하자는 제안을 했다. N의 워크샵에서 한 인도인 참가자가 자신의 인도식 영어 악센트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고 다른 참가자들도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었다고 했다. 매니저를 포함해서 팀원 모두 우리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주제라며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처음 들었을 때 내가 제대로 들었나 싶고 어쩐지 마음이 찜찜했는데 다들 너무 좋아해서 선뜻 더 물어보지는 못했다.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집에 돌아오고 나서도 한참 동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이게 정말 옳은 일일까? 이게 정말 우리 프로그램 참가자들에게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아침 워크샵 시작 전에 매니저와 잠깐 이야기 좀 하자고 했다. 그리고 단도직입적으로 accent reduction 워크샵은 결코 좋은 생각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다음 세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1. 두 시간 워크샵 만으로 악센트에 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 ("It's not gonna make a huge difference within 2-hour workshop.") 하지만 워크샵이 끝난 후에 참가자들은 자신의 악센트가 고쳐야 할 대상이라는 인식을 영원히 가지게 될 것이다.
2. 우리 프로그램은 연방 정부의 펀딩으로 운영하는 취업 프로그램인데 여기서 accent reduction 워크샵을 한다면 (비록 우리 의도가 그렇지 않더라도) '악센트를 고치면 취업에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하면 '악센트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는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수도 있다. 개인이 원해서 관련 워크샵에 참가하거나 트레이닝을 받는 것은 상관없지만 취업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우리가 공개적으로 모든 참가자에게 해당 주제의 워크샵을 제공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인터넷 검색을 해 보니 실제로 UBC에서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캐나다 BC 주립대학인 UBC에서 국제 학생들을 대상으로 '악센트 제거 워크샵 (accent reduction workshop)'을 주최했다가 많은 반발을 일으키고 결국 하루 만에 취소되었다는 뉴스였다. 나는 이 기사를 매니저에게 보내줬다.
"악센트는 '없애야 되는 것'이 아니야. 이는 한 가지 방식의 영어만 존재한다고 전제하는 지극히 식민주의적 관점이지. 완벽한 미국식 백인 영어를 구사하더라도 효과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못 하면 취업을 못 할 수 있어."
3. 악센트는 단순히 언어 문제가 아니라 정체성에 대한 문제이기도 하다. 우리 팀의 C는 아일리쉬인데 캐나다에서 고향 사람들을 만나면 일부러 더 아일리쉬 악센트를 쓴다고 했다. 악센트가 때로는 동질감을 느끼게 해 주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영국이나 인도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다. 그러면 이들도 accent reduction의 대상이 되는 것인가? 과연 어떤 게 standard English 인가? 그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건가? 세상에는 다양한 방식의 영어가 사용되고 있고 언어라는 것은 본질적으로 계속 변용되고 진화한다.
이 영상은 유튜브에서 찾은 건데 67개의 영어 악센트를 들을 수 있다. (아쉽게도 Korean은 없지만 한 번 보세요. 재밌어요!)
그뿐만이 아니다. 아는 분들은 다 알겠지만 그 유명한 기업 구글의 CEO는 인도계 미국인이고 2017년 키노트를 자세히 들어보면 인도식 악센트가 (심하지는 않지만) 얼핏 얼핏 들린다. 그럼 순다 피차이에게도 accent reduction 워크샵을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을까?
이어서 나는 매니저에게 말했다. "나도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고 악센트가 있어. 그런데 사실 나는 내 악센트가 정말 자랑스러워. 그건 내가 영어 말고도 다른 언어를 할 수 있다는 뜻이거든. 실제로 나는 한국어도 하고 중국어도 할 수 있어. 이건 내 정체성에 대한 문제야." 사실 조금만 더 확장해서 생각해 보면 악센트 때문에 취업이 어렵다는 주장은 언제든지 이름 때문에, 나이 때문에, 성별 때문에, 인종 때문에로 번질 수 있다. 어려운 이유를 찾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이들 중 대부분은 개인이 단시간에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들이다. 이건 결국 정체성과 자신감에 관한 문제라는 것이 내 결론이었다.
고맙게도 매니저가 내 이야기를 잘 들어줬다. 본인은 영어가 모국어라서 이런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오후에 열린 스태프 미팅에서 나는 내 의견을 다시 한번 팀원들과 공유했다. N은 accent reduction 대신 accent modification, accent addition이라는 부드러운 용어를 쓰면 되지 않겠냐고 받아쳤지만 내 생각에는 프로그램 전체적인 관점에서 볼 때 우려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대안으로 accent reduction 대신 communication skills 워크샵을 준비하겠다고 이야기했고 그렇게 진행하기로 했다.
이번 사건은 어찌 보면 가벼운 해프닝으로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내게는 요즘 같은 시대에 언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나중에 accent redcution 워크샵을 기대했던 몇몇 참가자들과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왔다.
“나는 언어가 바로 이 컵 같은 거라고 생각해. 만약 네가 가진 컵이 흠이 없고 완벽하다면 좋겠지. 근데 진짜 중요한 건 그 안에 들어있는 커피지. 만약 네가 통역가나 언어학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컵 자체보다 컵 안에 뭐가 들어있는지가 더 중요하지 않을까? 너의 컵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그 안에 정말 값진 커피가 들어 있다면 사람들은 결국 너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일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