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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Feb 13. 2020

Visible minority를 아시나요?

비차별을 위한 차별

"Are you a visible minority?" 

캐나다에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영어 연습이나 해 볼 생각으로 센서스 인구 조사원 모집에 지원한 적이 있다. 그때 온라인 지원서 항목 중에 이 질문이 있었다. "Are you a visible minority?" 솔직히 말하면 처음 나는 이 질문을 "당신은 시각 장애가 있습니까?"로 해석했고 바로 No라고 답했다. 이어지는 다음 질문은 인종을 묻는 것이었는데 나는 스크롤 바를 한참 내려 Korean을 선택했다. 긴 질문지에 답을 하고 마지막으로 지원 버튼을 눌렀는데 지원이 안 되는 거다. 모든 항목에 빠짐없이 제대로 답한 것 같은데 계속 오류가 났다. 그렇게 한참을 헤매다 화면 상단의 오류 메시지를 보았는데 빨간색 글씨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It is impossible you're not visible minorty if you're Korean."   


뭐지? 기분이 묘하게 나빴다. 그리고 그때 처음 찾아봤다. Visible minority가 무슨 뜻인지.


"우리는 visible minority를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현재 내가 비영리 기업에서 참여하고 있는 취업교육 프로그램은 이민 여성을 돕는 것이 목적인데 좀 더 정확히 말하면 바로 이런 visible minority 이민 여성을 대상으로 한다. 프로그램 지원 자격 중의 하나가 visible minority여서 센서스 인구조사에서처럼 우리도 똑같이 지원서에 비슷한 질문이 들어있다. 그런데 이 용어가 많은 사람들에게 친숙한 용어도 아니고 (원어민 중에서 모르는 사람들도 꽤 있다) 설명하자니 시각적 '판단(judgement)'에 의존할 수밖에 없어서 난감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한 번은 히잡을 쓴 아랍계 지원자가 No라고 답해서 (예전의 나처럼 뜻을 잘못 이해한 것 같았다) 설명하는데 애를 먹기도 하였다. 또 다른 지원자는 누가 봐도 금발의 백인이었는데 브라질에서 갓 이민을 와서 프로그램에 꼭 참여하고 싶다”고 한 적도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그분은 visible minority가 아니지만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서 누구나 쉽게 이민자임을 알 수 있다는 사실에 기반해 그 뜻을 확대 적용한 사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Are you a visible minority?"라고 직접적으로 묻기보다는 "Do you identify yourself as a visible minority?"라고 간접적으로 묻는 방법을 택했고 순전히 본인의 판단에 근거해 답하도록 안내하고 있다.


프로그램 홍보 관점에서 봐도 visible minority는 그리 호감 가는 단어는 아니다. 맨 처음 홍보를 시작했을 때 프로그램 포스터는 물론이고 브로셔, 홈페이지, 온라인 광고 모두 대문짝만 하게 강조했다. "우리는 visible minority를 위한 프로그램입니다!" 그게 우리 프로그램의 시작 배경이고 목적이니까 너무 당연했다. 그런데 참가자 모집이 정말 힘들었다. 온라인 광고 노출/클릭 횟수 대비 지원자가 말도 안 되게 낮았다. 마케팅팀 디렉터도 이런 적은 없었다며 의아하게 생각했다. 한 번은 다른 비영리 단체와 프로그램 소개차 전화 통화를 했는데 미안하지만 우리 고객 중에는 visible minority가 한 명도 없다고 했다. 그 단체의 핵심 고객군은 중국인이었다. 그 후로도 용어 사용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고 결국 우리는 어쩌면 프로그램의 핵심인지도 모르는 visible minority라는 말을 모든 마케팅 커뮤니케이션에서 삭제했다. 놀라운 것은 단어 하나 지운 것뿐인데 똑같은 광고에 지원자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딱 봐도 소수'

사실 visible minority는 나쁜 말이 아니다. 오히려 매우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말이다. 사전적 의미의 핵심은 결국 '백인이 아닌 사람'이지만 이는 캐나다 정부에서 국가 고용 평등 정책의 일환으로 인구 통계적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진 말이다.


A visible minority is defined by the Government of Canada as "persons, other than aboriginal peoples, who are non-Caucasian in race or non-white in colour". The term is used primarily as a demographic category by Statistics Canada, in connection with that country's Employment Equity policies.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가시적인 소수 인종 집단 (겉보기에도 사회 대다수 구성원과 다른 인종에 속함이 뚜렷이 드러나는 집단)'이라고 나오는데 한 마디로 '딱 봐도 소수' 정도로 정리할 수 있겠다.


그러나 아무리 소수자를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백인 중심의 관점이라는 느낌은 지울 수가 없다. 다수와 소수라는 개념은 지역이나 상황에 따라 역전될 수 있고 (BC주 Richmond 시는 백인 대비 중국인 이민자 비율이 훨씬 높다) 시각적 혹은 인종적 차이로 인한 부당한 차별을 막기 위해 그 '차이'에 대해 아예 낙인찍어 버리는 (labeling) 역효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Visible minority의 현재와 미래

인구 통계를 살펴보면 캐나다 전 지역에서 백인이 다수인 것은 여전히 사실이다. 2011년 통계에 따르면 캐나다 전체 인구의 약 5분의 1에 해당하는 63만여 명이 visible minority이다.


 




오른쪽 그래프는 2016년 데이터인데 BC주를 보면 캐나다 전체 평균보다 높은 30%가 Visible Minority이고 Chinese > South Asian > Fillipino 순으로 많다. Korean도 한국 전체 인구에 비하면 정말 많은 편이다.




그리고 visible minority가 캐나다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계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20년 후에는 34.4%까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러한 사회적 흐름을 반영하듯 최근 들어 Diversity, Inclusion이 사회 전반에 중요한 화두로 등장했고 (이 주제는 나중에 따로 다룰 예정이다) 다양한 인종의 정치인들도 많이 주목받기 시작했다. 최근 몇 년 간 캐나다 의회는 역사적으로 가장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고 2016년 리서치에 따르면 visible minority 의원은 47명으로 전체의 14%에 해당한다. 아래는 실제 캐나다 정치인들의 사진이다.


고용 시장에서의 visible minority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변화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갈 길이 멀다. 2016년 센서스 조사에 따르면 고용 시장에서 visible minority 그룹, 특히 여성은 백인 이민 남성 > visible minority 이민 남성 > 백인 이민 여성 다음으로 가장 낮은 연간 수입을 얻고 있다. 또한 비 고용률도 visible minority 이민 남성과 백인 이민 남성보다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Visible minority newcomer women have the lowest median annual income of all newcomer groups at $26,624, compared to non-visible minority newcomer women ($30,074), visible minority newcomer men ($35,574), and non-visible minority newcomer men ($42,591).
Visible minority newcomer women are more likely to be unemployed. The unemployment rate of visible minority newcomer women (9.7%) is higher than that of visible minority (8.5%) and non-visible minority (6.4%) newcomer men.                                  
                                                                                                               *Source: 2016 Census                   


이런 배경에서 우리 프로그램이 기획되었고 연방정부의 투자를 받아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Visible minority 여성을 대상으로 하다 보니 우리 팀도 자연스럽게? 대부분 visible minority다. 영국에서 태어나 캐나다에서 쭉 자란 타지키스탄 출신 (출신이라는 말이 글로 적고 보니 좀 어색하다), 갓난아기 때 캐나다로 이민 온 히잡을 쓴 파키스탄 출신, 그리고 나, 코리안. (나는 코리안 출신 캐네디언 아니고 레알 코리안) 그리고 유일하게 visible minority가 아니지만 강한 아일리쉬 악센트 때문에 여전히 minority 취급을 받는다고 주장하는 아일리쉬.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더 다양한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다. 다 같은 visible minority라서 비슷한 경험을 나누고 공감할 수 있고 현실적인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다는 점이 좋은 것 같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가까운 미래에는 visible minority라는 용어 조차 필요해지지 않길 바란다. 소수와 다수의 구분이나 비차별을 위한 차별이 필요 없어지길 바란다. Visible minority라는 말 자체가 구시대적으로 느껴지는 보다 넓은 의미의 다양성이 자유롭게 공존하는, 모두가 majority인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는 그 벽을 조금씩 허물기 위해 내일도 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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