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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마는외계인 Feb 11. 2020

프로그램 3기를 마치고

캐나다 취업 프로그램 운영 후기

나는 현재 글로벌 비영리 기업에서 취업 프로그램 운영을 맡고 있다. 우리 프로그램은 이민 여성들의 캐나다 현지 취업을 돕기 위해 연방 정부의 후원으로 개설된 파일럿 프로젝트로, 3주간의 취업 워크샵과 최대 13주간의 1:1 커리어 상담을 제공한다. 지난 10월 프로그램 1기를 시작으로 2020년 올해 첫 기수인 3기를 지난주 무사히 마쳤다.  


결론부터 말하면 폭풍 같은 한 달이었다. 지금은 마치 테이프를 3배속 빨리 감기 했다가 늘어져 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늘어진 테이프를 다시 돌려 감기 한다는 생각으로 지난 한 달간 있었던 큼직큼직한 사건들을 주제별로 정리해 보면 대략 이렇다.


1. 리크루팅 (Recruiting)

프로그램 시작을 불과 일주일 앞두고 지원자가 3명밖에 모이질 않았다. 내가 생각해도 중장기 마케팅/ 홍보 전략이 부족했다. 그동안 프로그램 셋업 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해도 매번 주먹구구식으로 인원수를 채우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 부분은 앞으로도 정말 개선해야 될 부분이라 생각한다. 아무튼 그때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져서 전화를 수십 통 돌린 것 같다. 다행히도 Info Session에 등록한 고마운 분들이 많이 나타나서 그분들을 놓치지 않으려고 설명하고 설득하고 갖은 애를 썼다. 더군다나 때마침 폭설로 Info Session도 다 취소되어서 프로그램 설명과 지원서 작성, 인터뷰도 모두 전화로 진행했다. 그렇게 4일 만에 13명을 채웠고 당일 아침 1명 더 합류하면서 최대 수용 인원인 14명이 3기로 힘차게 출발했다.


2. 워크샵 진행 (Facilitation)

1기 6명, 2기 11명, 3기 14명으로 인원이 많아진 만큼 워크샵 분위기도 달라질 것으로 예상은 했었다. 그런데 이번 차수는 유난히 참가자 간에 격차?가 많아서 워크샵 진행자로서 초반에 균형을 맞추는 게 쉽지 않았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설명을 하면 어떤 참가자는 제대로 이해했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표정을 짓는 반면 다른 참가자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자기 이야기를 주절주절 늘어놓고 질문을 쏟아놓기 바빴다. 어떤 참가자는 작은 직무부터 도전해 볼 생각인 반면 다른 참가자는 시니어급 직무만 관심 있어했다. 다양한 인종, 문화, 환경, 성격, 교육 수준, 직무, 경험 등의 사람들을 한 자리에 모아 놓고 워크샵을 진행한다는 건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일이 재밌기도 한 것 같다.


이번에 가장 힘들었고 가장 많이 배우기도 한 부분은 회의적이고 말이 많은 사람들을 상대하는 것이었다. M은 항상 고개를 갸우뚱한 상태로 피곤에 쩐 듯한 표정을 하며 듣고 있다가 장황한 질문을 정말 많이 했다. 정말 정말 많이 했다. 물론 내 워크샵에서 질문은 언제나 환영이다. 그러나 내용과 상관이 없거나 전체적인 흐름을 방해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닥 도움이 되지 않을 법한 주제는 요령 있게 쳐내는 것도 필요하다. 초반에는 장황한 질문에 끌려 다녔다. 중간에 말을 끊기가 미안해서 계속 듣고 있자니 다른 사람들이 점점 시계를 쳐다보거나 표정이 굳어졌다. 그래서 일부러 시계를 보기도 하고 과감하게 말을 끊기도 하고 질문한 내용을 되묻기도 하고 나중에 더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을 거라며 능구렁이처럼 넘어가기도 했다. 그러면서 점점 요령을 터득해 갔다. 초반에는 M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자신감이 생겼고 오히려 자기 경험을 이야기해 주는 게 고맙게 느껴지기도 했다.


3. 체력 관리

보통 2주 차가 가장 힘든데 레주메, 커버레터, 인터뷰 워크샵이 줄줄이 잡혀 있기 때문이다. 2주 차 첫 날인 레주메 워크샵이 오후 세션에 접어들면서 갑자기 목소리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정말 거짓말처럼 목소리가 탁해지더니 워크샵 끝날 무렵에는 쉰 목소리가 나왔다. 화요일에는 쉰 목소리로 꾸역꾸역 샤우팅을 해 가며 워크샵을 무사히 끝냈고 수요일, 목요일에는 집에서 거의 말을 안 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다. 목소리가 아예 안 나왔다. 용각산과 꿀, 생강차, 레몬차, 목도리는 거의 달고 살았다. 아마 평소보다 말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 것 같은데 아무튼 목 관리, 체력 관리는 정말 필수라는 걸 다시 한번 몸소 느꼈다. 체력도 실력이다 정말.


4. 긴급 상황

그렇게 체력의 한계를 느낄 때쯤 마침 팀원 N이 아프다며 마지막 이틀 워크샵을 펑크 냈다. 3주 차 월화수,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이제 이틀 남았구나 방심하던 찰나, 목요일 당일 아침에 문자가 왔다. 못 온단다... 그 날은 모든 참가자의 프리젠테이션 발표가 있는, 프로그램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 결국 그 날 아침 부랴부랴 달려 나가 셋업하고 종일 워크샵을 진행했다. 워크샵은 성공적으로 잘 진행됐다. 나 또한 참가자들의 프리젠테이션을 듣고 피드백을 주고 하는 것이 크게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다. 피드백 주는 게 생각보다 정말 어렵고 조심스럽고 부담스럽다. 그런데 이것도 하면서 점점 느는 걸 느낀다.

그런데 N이 다음 날도 못 온단다. 다음 날은 프로그램 졸업식이자 N의 워크샵이 있는 날이었다. 워크샵 주제는 내가 애초에 프로그램 목적과 잘 맞지 않다고 생각하던 것이었는데 N이 꼭 넣고 싶다고 해서 넣은 거였다. N은 나를 도와준답시고 메일로 워크샵 진행 순서, 자료 등을 보내줬는데 하루 만에 내가 확신이 있지도 않은 주제에 대한 워크샵을 준비하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매니저에게 내가 백업 플랜으로 가지고 있던 다른 워크샵으로 대체하기로 제안하고 그렇게 했다. 확실히 시간이 부족했고 나 스스로를 납득시킬 만큼 준비도 되지 않았다. 그러면 꼭 티가 난다. 나 스스로를 설득할 수 없으면 다른 어느 누구도 설득할 수 없다. 그래도 아무튼 무사히 지나갔다.


5. 졸업식

마지막 세션에 3주 동안 느낀 점들을 돌아가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많은 눈물과 감동, 다짐이 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초반에 나를 그리도 힘들게 하던 M이 그 똑같은 갸우뚱한 고개와 피곤에 쩐 얼굴로 이렇게 말하는 것이다. "이번에 참가한 건 내 생애 최고의 선택이었어." ("This was the best decision I've ever made in my life.") 물론 이 말을 하기 전까지 나는 왜 이게 하기 싫었고, 2기에 왜 참가를 못했고, 누가 소개를 해 줬고 등등 장황한 설명이 있었다. 하지만 마지막 그 한 마디가 나의 모든 우려와 피로를 한방에 날려 주었다. 나는 M이 때로는 나의 워크샵에 방해 요인 (distractor)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M에 대한 (정확히 말하면 겉으로 보이는 M의 모습에 대한) 나의 인식 또는 편견이 나 스스로를 방해한 건 아닌가 생각했다. 아무튼 정말 고마웠고 겉모습만 보고 쉽게 판단하지 말아야겠다고 다시 한번 다짐했다.          


아무튼 이렇게 다사다난했던 3기 워크샵은 해피엔딩으로 끝이 났다.


+ 변화

사실 N이 워크샵을 펑크 낸 건 어쩌면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3기 시작하기 얼마 전, N은 팀에 퇴사 통보를 했었다. 그래서 나는 워크샵 기간 동안 매니저와 함께 지원자들을 면접하느라 더 바빴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선택한 지원자가 오퍼를 수락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앞으로 팀에 변화가 있을 것 같다. 그것이 긍정적인 변화이길, 나 또한 더 겸손하게 많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되길 기대한다.


p.s. 팀에서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C도 나간단다... 헐 뭐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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