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설 뒷 이야기

by 이순신

1.

지난 주말은 감정이 제멋대로 요동쳤다. 시부모님이 늦은 설 식사를 하시러 우리 집에 오시기로 한 날, 마음을 지키게 해 달라고 기도했는데 아무래도 실패한 것 같다.


올 설날은 컨디션도 안 좋고 직장 구조 조정에 대한 불안감으로 그냥 좀 조용히 넘어가고 싶었는데, 설날에 떡국을 안 먹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우리 교포 남편은 일주일 전부터 내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지난 주말에는 아이들만 데리고 시부모님 댁에 다녀오더니, 갑자기 목요일 저녁에는 퇴근하자마자 불쑥 할머니가 보고싶다고 앞으로 정기적으로 할머니집에 가는 날을 만들자고 하면서 큰 애만 데리고 할머니댁에 또 찾아갔다.


평소에 나한테 직접 전화를 잘 안하시는 어머님은 '설 식사 건'은 꼭 나한테 전화를 하시고 아들에게 전화해서는 꼭 나를 바꿔보라고 하신다. 설 식사준비에 대한 어머님의 책임감인건지, 미안함인지, 기대감인지 정체를 잘 모르겠는 그 마음은 부담감이라는 이름으로 나에게 고스란히 전가된다.


"마음 같아서는 우리집에서 떡국을 먹으면 좋겠는데 내가 요새 하도 몸도 안 좋고 해서... 순신이 너도 힘들면 그냥 우리가 안 갈게."

마음이 좀 누그러진 나는 어머니에게 투정을 부려본다.

"어머님, 제가 보니까 어머님이 아들 버릇을 잘못 들이신 것 같아요. 엄마가 캐나다 명절에는 캐나다 밥상 차려주고, 한국 명절에는 한국 밥상 차려주시니까 그게 습관이 돼서 무슨 교포가 설날에 떡국 안먹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나봐요. 그렇게 떡국이 먹고 싶다네요."

옆에서 어디 내가 뭐라고 하나 보자 하며 스피커 폰으로 울려퍼지는 어머니의 웃음 소리를 듣고 있는 남편이 얄밉다.


"어머니, 당뇨에 떡국 드시면 안 되시지 않나요? 오빠랑 아버님 아쉬운대로 떡국은 조금 끓이고, 제가 당에 부담없는 나물 준비할테니 비빔밥 처럼 건강하게 드시면 어떠세요?"

그 날 나는 당뇨로 십 년 넘게 약을 드시는 어머니에게도 좋을 나물을 준비하기로 마음을 고쳐 먹었다.


2.

그런데 시부모님이 오시기로 한 토요일 하루 전 날, 남편이 퇴근길에 장을 봐 오더니 선전포고하듯 말했다.

"넌 너 할 거 해. 난 내가 하고 싶은 거 할 테니까."


그러더니 당일 새벽 네 시부터 온갖 전을 부치기 시작한다. 전은 꼭 다섯 가지로 만들고 싶단다. 호박전, 깻잎전, 육전, 고추전, 표고버섯전. 오복을 상징한단다. 온 집안이 기름 쩐내로 진동을 했다. 그러더니 인스턴트 팟에는 갈비찜이, 애들 어릴 때 목욕통으로 썼던 큰 다라이에는 잡채가 한 가득이다.


나한테 하라는 것도 아니고 (나한테 하라는 거였는데 내가 하는게 마음에 안 드니까 본인이 직접 하는 걸로 노선을 바꾼 것 같다) 본인이 직접 하겠다니 그냥 뒀지만, 나는 잘 이해가 안 된다. 요즘같이 매일 고기로 과식하는 시대에 명절이라고 갈비찜에 잡채에 육전 타령하는 것, 당뇨약 드시는 어머니에게 떡국과 단짠 고기요리를 대접하는 것, 캐나다에 이민와서 설 떡국상에 대단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 나는 정말 잘 이해가 안 간다.


전라도 출신 대식가 집안에 먹는 걸 유난스럽게도 좋아하는 집이라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지만 나는 꼭 뭘 이렇게 과하게 차려서 과하게 먹어야 하나 싶다. "얘가 뭘 먹질 않아서 우리 아들이 잘 먹고 사는가 모르겠다"던 어머니의 옛 푸념이 생각난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나는 뭘 못 먹고, 손이 작고, 그릇이 작고, 정도 없고, 남에게 베풀 줄도 모르는 차갑고 인색한 인간이 된다. 그리고 남편 말처럼 "가난하게 자란 애" 같이 된다.


3.

어릴 적 우리 집 명절 풍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큰 엄마와 우리 엄마는 좁은 부엌에서 누가 다 먹을지 모르겠는 전을 계속 부치셨고, (명절 마지막날 느끼함을 달래줄 고추장 넣은 전 찌개로 그 많은 전을 다 먹어치워야 끝이 난다) 큰 아빠와 아빠는 텔레비전을 보셨다. 큰 엄마는 가부장적인 큰 아빠가 마음에 안 들어 궁시렁 궁시렁 하면서도 정말 맛있는 음식들을 뚝딱 뚝딱 만들어내는 실력있는 요리사였다. 내가 전 부치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 부엌을 들락날락 거리면 엄마는 "커서 지겹게 할 텐데 너는 이런거 하지마" 하시며 부엌에서 나를 쫓아내셨다.


큰 엄마와 큰 아빠가 한바탕 시끄러운 이혼을 한 후 우리는 더 이상 명절에 큰 집에 가지 않았다. 그 후로도 엄마의 전 부치기는 관성처럼 계속 됐지만 그래도 우리 집은 명절에 오손도손 티비를 보며 과일을 깎으며 얼굴을 마주한 시간을 소중히 했다. 우리에게 명절은 무슨 대단한 요리를 하고 대단한 음식을 먹는 시간이기보다는 함께 있는 시간 그 자체였다.


4.

마흔을 먹어서 아직도 그런 명절을 기대한다면 너무 철 없는 행동일까. 캐나다 명절, 한국 명절마다 밥상 메뉴를 고민하고, 상다리가 부러질 정도로 차려내고, 밥을 다 먹기도 전에 (흐름 끊기지 않게) 과일을 깎아내야 하고, 설거지는 어른들 대화에 방해 안되게 조용히 하든지 나중으로 미루든지 해야 되는게 마흔의 명절이 맞나?


나도 아들, 딸 키우는 엄마로서 이런 명절을 물려주고 싶지는 않다. 이런 명절의 내 모습을 기억하게 하고 싶지 않다. 부엌에서 일 하느라 대화 자리에 없는 엄마이기보다, 작은 밥상이라도 가족들과 눈을 마주치고 요즘 무슨 생각을 하며 사는지, 재미있는 건 없는지 또 힘든 건 없는지, 감사한 것은 무엇인지 등등을 들어주고 함께 나누는 엄마이고 싶다. 그런 아내이고, 그런 며느리로 대우 받기를 꿈꾸는 건 너무 지나친 기대인가. 아니 어쩌면 다른 이들의 기대를 무참히 짓밟는 괘씸한 일이 되는건가.


5.

본인도 몸이 안 좋아서 간단하게 먹자던 시어머니가 그리도 흡족해 하시는 모습을 보니 좋기도 하고 어리둥절 하기도 했다. "이 육전이 알려지기 전부터 우리는 어릴 때 할머니가 꼭 이 육전을 해 줬어." "이건 두 장으로 붙여야 맛있어."


상다리가 부러지게 차려놓고 어머니에게 "조금만 먹어" 하는 남편도 신기했다. 이 또한 그들이 추억하는 명절의 한 풍경이었겠지 하고 마음을 추스려보지만 온 집안에 진동하는 기름 쩐내 때문에 자꾸 짜증이 난다.


6.

밥 먹고 큰 아이가 할머니에게 루미큐브를 가르쳐주면서 같이 게임을 했는데 나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옆에서 훈수도 두고 격려도 하면서 분위기를 띄우는 내가 철 없어 보였는지는 몰라도 그런 시간이야말로 내가 추억하는 명절이다.


손주들 세뱃돈에 손으로 직접 쓴 카드까지 준비해 오신 어머님은 절도 받으시고 한복을 입기 싫다며 떼 쓰는 둘째를 어르기도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내 것은 없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내게도 카드를 쓰셨더라. 눈물이 났다. 어머님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아실까. "이렇게 집에서 차려 먹으면 좋은데 요즘 애들은 무조건 나가서 먹어요 한다" 하는 말씀이 왜 그리도 야속하게만 느껴졌을까. "어머니, 그 때는 그 때고요, 지금은 저도 일 하고 대학원 공부도 하고 있고 아이들도 어리잖아요" 라고 왜 말을 못 할까.


남편은 왜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할까. 이해는 커녕 더욱 앞장서서 집밥을 찬양하고 엄마밥이 그립다고 우리 엄마는 항상 이렇게 해 줬다고 할까. 어머니를 닮아 요리 솜씨가 좋은 남편은 "엄마, 나는 전 부치는 거 힘들다고 불평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안 돼. 내가 해 보니까 이렇게 쉬운데." 아버님 말씀으로 어머니 별명이 '전의 여왕'이셨단다.


7.

“나는 어쩌면 결혼과는 맞지 않는 사람인가봐" 했더니 남편도 그제야 서운함이 밀려오는가 보더라. 아니면 그냥 새벽부터 일어나 요리하는게 힘들었던건지 초저녁부터 쓰러져 잠이 들었다.


나는 왜 그렇게 화가 났을까. 나는 아직도 왜 화가 나고 억울하고 서러울까. 그리고 또 왜 이리도 외로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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