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이 되었다

by 이순신

1.

와 진짜 무섭다.

아침에 임직원 검색을 해 보았더니 벌써 조치가 취해져 있다. "이 사람은 더 이상 우리 학교 직원이 아닙니다. (팀 대왕 보스)에게 연락하세요." 라고 자동 메시지가 뜬다. 소름. 무섭다.

2.

이게 말로만 듣던 구조 조정이고 해고 통보구나... 정말 무섭다.

회사에 온 몸 바쳐 일하면 안 된다는 것, 그것만큼 어리석은 짓이 없다는 게 바로 눈 앞에서 증명되는 순간이다.

3.

이제 한 시간 후면 팀 대왕 보스가 소집한 미팅이 열릴 것이고 아마도 farewell 미팅이 될 것 같지만 더 이상 계정 액세스도 안 되고 참석할 의무도 없으니 사람들이 안 오더라도 이상할 것은 없다.

4.

조금 전 총장으로부터 내일 아침 대면 미팅 초대를 받았다. 참석자 리스트를 보니 대략 70-80명 되는 글로벌 직원 중에서 10-20명 정도로 추려진 것 같다. 내가 아는 각 팀 대장 보스들 중에서 이번에 집에 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중간 관리자와 디렉터들이 사라지고 실무자 몇 명만 남긴 것 같다.

그런데 리치몬드 캠퍼스 리크루팅, 어드민 담당을 제외하고 온라인 팀에서는 클로이, 샌디, 그리고 나만 남았다. 남은 사람들끼리 서로 겹치는 게 많지 않아 보이는데 다시 쪼개질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예상이 안 된다.

5.

방금 또 이메일이 왔다. 새로운 센터가 만들어지는 것 같다. 글로벌 소속으로 만들어지는 건진 모르겠지만 예전에 켈리에게 언뜻 들은대로 Provost 직속 온라인 러닝 관련 서비스 조직이 만들어지는 듯 하다.

그러면 원래 하던 온라인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는거지...? 나는 여전히 스캇에게 리포트 하는 건가?

Job description이 달라지는건가?새로운 계약이 되는건가?

6.

일단 전체 학교 차원에서 서비스 조직으로서 디지털 러닝 센터가 만들어지는 것은 꽤 고무적인 방향인 듯 하다.

내가 컨트롤 할 수 없는 요인이 너무 많으므로 (인생의 많은 문제들이 그렇듯이) 나는 내가 컨트롤 할 수 있고 내가 원하는 것에 집중하련다.

일단 내가 원하는 것:

- 재택근무, 가끔 (주 1-2회, bi-weekly?) 캠퍼스 출근은 괜찮음.

- 아이들 드랍오프, 픽업에 지장 없어야 함.

- 러닝 디자인 일을 계속 하되, 좀 더 영역을 넓히는 것 (웹사이트 디자인, 멀티미디어 디자인, 그래픽, AI 등)

- Autonomy, Flexibility가 있는 것 - 북클럽, 금요일 일대일 양육 지속 가능한 것.

7.

나탈리아도 대상이 된 걸 보면 캠퍼스 출근을 요구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 이렇게 된 거 나도 내가 원하는 걸 당당하게 요구해야지. 약하게 나갈 필요는 없을 듯. 사람도 없는데 너네가 어쩔래의 마인드로.

풍랑을 막아주던 콜린와 켈리라는 큰 바위가 사라진 느낌이다. 그 동안 안락했다. 그리고 조금은 나른했다.

이제 진짜 내 살로 부딪혀야 할 시간. 그들의 시간과 수고가 헛되지 않게 파도가 칠 때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8.

"바다거북은 물의 흐름에 맞춰 움직이고 있더라고요. 파도가 바다 거북 쪽으로 다가올 때 거북은 그냥 떠 있기만 했어요. 그냥 그 자리에서 자세를 유지할 수 있을 정도로만 파닥거렸죠. 그러다가 파도가 먼바다 쪽으로 쓸려갈 때는 열심히 파닥거리는 거예요. 자기가 나아가려는 방향으로 갈 때 파도의 힘을 적극 활용하고 있었던 거예요.”


“바다거북은 결코 파도를 거스르는 방향으로 헤엄치지 않았어요. 대신 파도를 이용했죠. 제가 바다거북을 따라잡을 수 없었던 건, 저는 파도의 흐름과 상관없이 계속 파닥거렸기 때문이었어요. 처음에는 크게 무리가 없었어요. 적어도 바다거북을 놓치지는 않았으니까요. 사실 바다거북과 속도를 맞추기 위해서 일부러 다리를 좀 천천히 휘저어야 할 때도 있었죠. 그런데 밀려드는 파도를 거스르면 거스를수록 더 피곤해지는 거예요. 그러다 보니 파도가 쓸려 나갈 때는 이 파도를 이용해서 빨리 나아갈 힘이 남아 있지 않았던 거죠.”

<세상 끝의 카페>, 존 스트레레키 - 밀리의 서재

작가의 이전글현실과 초현실, 안도와 슬픔 사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