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다는 것

4

by 로처

우연히 신촌에서 열린 '어둠 속의 대화' 전시회에 가게 되었다.

시각장애인의 삶을 체험할 수 있는 특별한 공간이었다.


사람의 오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이 봉쇄된 상황.

촉각, 청각, 후각, 미각만으로 익숙했던 장소와 물건, 자주 마시던 음료를 경험했다.


우리는 얼마나 시각에 의존하며 살아왔는지.

그리고, 시각이 사라지면 얼마나 많은 불편과 어려움이 찾아오는지 느끼기에 충분했다.


나는 사람이 많은 공간을 좋아하지 않는다.

진로를 방해받으면 짜증이 나고, 부딪치면 얼굴을 찌푸리며 노려보곤 했다.

그런데 이곳에서는 달랐다.


눈을 뜨나 감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협소한 공간에서 한 명의 로드매니저의 안내에 의지해 줄지어 걷다 보니 우리는 서로 부딪쳤고, 어깨나 머리를 스치기도 했다.

하지만 아무도 화내지 않았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이 자연스러웠고,

"괜찮습니다."라는 말이 따뜻하게 돌아왔다.


우리는 서로 배려했고, 웃었다.


오기 전 '반전이 있다'라고 많이 봤지만, 마지막 로드매니저의 말을 듣기 전 여러 정황으로 미루어 짐작은 가능했다.

그녀는 자신이 시각장애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 고통까진 감히 짐작할 수 없었다.


체험이 끝난 뒤,

눈을 빛에 적응하기 위해 어둑한 작은 방에 둘러앉았다.

어둠 속에서 함께 웃고 배려하던 사람들은, 빛 속으로 나오자마자 각자에게 충실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나는 퇴장하기 전 로드매니저와 인사를 나눌 때

악수를 청했었다. 그녀는 내게 웃으며 말했었다.

"피부가 정말 고우시네요"


내게 느껴진 그녀의 손 역시 나와 다르지 않았었다.


그리고 다시 생각해 본다.

고통받는 것은 우리가 아닐까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