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리' 없는 '아우라'

시나리오 도전기 다섯 번째 이야기

귀촌을 했습니다.

2주 정도는 이사하느라 온통 정신이 없었네요.

한 주를 지내본 소감은 대만족입니다.

아내나 저나 대도시와 첨단 문명은 맞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 왔는데 역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대자연의 품으로 들어가기엔 너무 나약해서, 지방 소도시 외곽으로 온 지금이 딱 맞다 싶습니다.

집을 나서기만 하면 온통 푸른 풍경과 남한강의 물결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숨통이 트이던지요.

겨우 집이 좀 정리가 되고 나니 짬이 나 오랜만에 글을 올리네요.




오늘의 이야기는 배테랑 기사님들의 아우라와 그런 아우라를 탑재하지 못한 신입 기사의 일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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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겪었던 일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흔합니다. 택배기사가 오배송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지만, 제대로 배송을 했는데 못 받았다고 했다가 나중에 찾았다고 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대부분은 가족이 들여놓은 걸 몰라서 그렇고, 심지어 본인이 받아놓고도 다른 물건과 착각해서 못 받았다고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연차가 어느 정도 된 분들은 그런 일이 하도 많다 보니 침착하게 대응을 하고 물건도 금방 찾게 하지만, 신입에게 이런 일은 너무나 당황스럽기 마련이죠. 값이 나가는 택배일 땐 도둑으로 몰리는 경우도 있어서 이런 류의 스트레스를 줄이고자 바디캠을 사용하는 분들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반대로 택배기사가 오배송을 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택배사마다 다르지만 일반 택배의 경우 한 사람이 배송하는 물량이 한 달이면 3-4천 개에서 많게는 만 개에 이르는데 그중 한 두 건 오배송이 생기기도 하죠. 수치상으로는 매우 낮지만 오배송을 당하는 고객의 입장에서는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습니다. 급한 물건이거나 비싼 경우엔 더 그렇죠. 오배송의 경우엔 택배기사 개인이 모든 책임을 지고 물건 값을 고스란히 물어냅니다. 그걸 당연히 여길수도 있지만, 기업에 소속된 직원이라면 기업체와 직원이 공동책임을 질 수도 있는데 택배기사는 개인사업자로 택배사와 위탁계약을 맺는 관계이기에 그럴 수도 없습니다. 플랫폼 노동자들 대부분이 같은 현실에 있죠.


문제는 오해에서 비롯된 분노로 받은 스트레스와 못 받았다는 물건을 찾기 위해 들인 애먼 노력과 시간에 대해 아무런 보상을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땀과 시간을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택배기사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모두가 어떤 일로든 억울한 일을 겪고, 먹고사는 것이 걸린 일에는 참아야 하는 일들이 수도 없이 많습니다. 그럴 때마다 그에 상응하는 보상을 받아야 한다고 외치면 온 세상이 온종일 소란스럽겠죠.


중요한 건 물질적 보상이 아닙니다. 별 것 아닌 부탁을 들어줬다고 몇 번이나 감사하다며 음료 한 잔 건네는 분을 만나면 제가 감사하다고 기꺼운 마음으로 인사를 하게 되죠. 고객의 오해로 헛걸음을 하는 일이 생겨도 진심 어린 사과 한 마디에 화가 눈 녹듯 누그러지기도 합니다. 반대로 마음이 전해지는 사과가 없이는 어떤 금전적 보상을 준다고 해도 화가 가라앉지 않습니다. 고작 택배 하나에도 그런데, 몸이 다치거나 직업을 잃거나 심지어 가족을 잃는 경우에는 말할 것도 없죠. 마음이 다쳤을 땐 마음이 전달되는 방식으로만 치유가 됩니다. 온갖 논리로도 되지 않습니다. 진심 어린 말, '고맙습니다', '죄송합니다'는 인간의 문명이 닿아 있는 모든 곳에서 세상을 구하는 비밀 코드입니다. 드러난 비밀이죠.


모두가 알면서도 자주 잊고 있는 비밀입니다. 어쩐지 문명의 이기를 많이 누릴수록 잊혀 가는 것 같네요. 서로가 사과를 받지 못해 상처 난 마음이 굳어지고, 또 상처가 나고 다시 굳어지길 반복해 단단해져 버린 사람들의 '쏘리'없는 '아우라'가 다시 녹아 없어질 수 있을까요? 동화에서나 있을 법한 일을 여전히 꿈꾸며 부드러운 마음으로 다가가보려는 저는 아직 철이 없는 것일까요? 거친 상황에 많이 노출될수록 굳어지기 쉬운데 여전히 사람다움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모든 분들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당신 덕분에 세상이 그래도 살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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