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야(視野)

시나리오 도전기 네 번째 이야기

by 프로젝트 시나리오

뒤늦게 돌아오는 인사로부터

허리디스크로 고생하다 겨우 다시 복귀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습니다.

대부분의 택배기사는 구역을 할당받고 매일 같은 곳을 가기 때문에 자기 구역에 계신 분들과 친해지게 됩니다.

아파트에 가면 늘 뵙는 경비원과 청소노동자 분들,

매일 비슷한 시간에 가니 자주 보게 되는 주민들하고도 친해지고요.

상가는 완전히 공생 관계라 더 가까워지게 마련이죠.


새로운 배송지에 한참 적응하던 시기에 어느 아파트에서 배송하다, 청소 중이던 여사님을 보고는 인사를 드렸습니다.

아무런 답이 돌아오지 않자 그러려니 하고 지나가려 했습니다.

택배기사가 건넨 인사가 씹히는 일은 꽤 자주 있거든요.

그런데 반 박자 뒤에 여사님이 저를 보고 반갑게 인사해주시더라고요.


처음엔 청소하는데 집중하느라 못 알아채셨나 보다 했습니다.

몇 번 같은 아파트에 배송하면서 알았습니다.

그 아파트는 청소노동자나 경비원 분들이 주민들과 인사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같은 공간에서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전반적인 분위기라는 것이 있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갑니다.

그렇게 되면 그곳의 노동자는 자신에게 인사를 건네지 않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누군가 '안녕하세요'라고 했을 때 그 인사가 자신을 향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죠.

제가 인사를 건넸을 때 답이 돌아오지 않거나 뒤늦게 돌아오던 게 이 때문이란 걸 알았습니다.

그분들은 스스로를 그 공간에서 지웠습니다.



시야에서 사라진 사람들

과한 억측일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같은 일을 수백 번 겪었던 저 역시 어떤 공간에서는 같은 마음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제 존재가 지워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 일이 셀 수 없이 많아 거기에 익숙해집니다.

둘만 있는 공간에서 택배를 건네주며 인사를 해도 답을 들을 수 없는 경우도 많습니다.

무거운 짐을 들고 사람이 많은 곳을 가는데 아무도 비켜주지 않는 일도 많고요.


택배기사를 배려해주지 않는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게 누구든, 한 존재가 거기 있음으로 해서 달라지는 자연스러운 변화가 없을 때가 많다는 뜻입니다.

왜 그럴까요?

처음엔 불쾌했습니다. 그러다 알았습니다.

제가 어땠었는지 돌아보게 되면서요.

어느 때에 누군가에게는 제가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저 역시 택배 일을 하기 전 분명 보아도 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도 누구는 보고 누구는 보지 못하죠.

볼 수 있는 것과 볼 수 없는 것.

그것은 저 자신의 위치에 따라 달라졌습니다.



사라진 사람들이 보이는 자리

제 이전 직업은 개신교 목사입니다.

목사라는 위치는 그 사람이 별 볼 일 없어도 일정 이상 대우를 받는 자리입니다.

교회가 크거나 목사 개인의 능력치를 인정받을수록 더 그렇죠.

저는 소외되고 어려운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가까이 가려고 나름 노력했지만 그들과 저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걸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습니다.

경제적으로 넉넉지 않은 가정환경이었어도 부족함 없이 부모의 사랑을 받고, 교회라는 온실 속에서 자란 제가 겨우 20대 중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신학을 전공했다는 이유만으로 사람들에게 대우를 받았으니, 존재를 부정당하기 일쑤인 사람들의 마음을 알리가 없었습니다.

교회에서 배운 알량한 동정심으로 그들의 친구인 척까지는 해볼 수 있었지만 그들도 저도 서로 친구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죠.

교회를 나와 택배를 시작하고 전과는 너무 다른 대우를 겪어보며 비로소 보기 시작했습니다.

내 시야에 없던 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든 항상 있었다는 것을요.

교회를 떠난 목사의 이야기를 따로 적어두고 싶네요.


아직 멀었죠.

고작 7년 정도 택배기사라는 자리에 있었지만 여전히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을 이제는 어렴풋이 압니다.

그들은 숨어 있거든요.

누군가 자꾸 숨기려고 하거나, 숨을 수밖에 없는 환경일 겁니다.

사람들 사이에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땅값이 오르고 재건축이 될수록 보이지 않는 사람들은 점점 더 투명해져 갑니다.

여전히 거기 있는데도 말입니다.


전엔 늘 정장차림이었지만 7년 동안 입지 않은 정장에는 먼지가 소복이 쌓였고, 매일같이 택배에, 땅에 쓸려 해어져 버린 옷과 신발은 수북이 쌓였습니다.

그 작업복만 입으면 제 과거는 작업복에 가려집니다.

경비원 분들도, 청소하시는 분들도, 소상공인 사장님들도 저를 경계 없이 대해주십니다.

당연하다는 듯 하대 받기도 하지만요.

그래도 전 제 작업복을 좋아합니다.



택배 일을 하며 배운 것이 하나 있습니다.

존재를 인정하는 좋은 방법!

그것은 유별난 친절이 아니라, "안녕하세요"하는 인사입니다.

인사는 그 존재가 거기 있음을 내가 알고 있다는 명확한 표시입니다.

그 존재를 인정하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이고요.

선거철만 되면 시장엘 들러 인사치레 하는 정치인처럼 말고, 일상에서 늘 하는 편안한 인사.

꼭 친절한 말투가 아니어도 상관없습니다.

그 아무것도 아닌 다섯 글자가 세상을 바꿀지도 모릅니다. 정말로요.

그러니 인사해 볼까요?

"안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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