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라(AURA)

시나리오 도전기 세 번째 이야기

by 프로젝트 시나리오

7년의 택배 생활을 마무리하다

지난주, 6년 8개월 동안의 택배 생활을 마무리했습니다.

귀촌을 결심했거든요. 농사를 배워 볼 생각입니다.


사람은 참 안 변합니다.

택배를 시작할 때도, 시나리오를 적기 시작할 때도 일단 그 상황에 저를 던져 놓고 몸으로 배워가면서 했습니다.

농사를 쉽게 보는 게 아니라 그냥 제가 그런 사람이라 이번에도 일단 이사부터 하고 고생하면서 배우기로 했습니다.

먹고살아야 하니 어떻게든 도망 못 가고 하게 되겠죠.

그간의 택배 생활 마무리에, 이사 준비에, 가서 먹고살 일 준비에 이래저래 참 바쁜 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글을 쓰면 쓸수록 온종일 여기에 집중하고 싶은데 그럴 수 없는 상황이 아쉽습니다.

어쩌나요 제가 만든 상황인걸.


택배 일을 하면서 배운 소중한 것 중 하나가 주어진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할 수 있는 일, 해야 하는 일을 그저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그렇게 하나씩 합니다.



택배 생활

그리 긴 편은 아니지만 제 청춘을 보낸 택배 생활을 마무리하려니 감회가 새롭더군요.


택배 생활.

제겐 택배가 그저 생계 수단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이었습니다.


사실 초반엔 도구일 뿐이었습니다.

택배를 오래 할 생각도 아니었고, 경험 삼아 1-2년 해보자는 거였습니다.

결혼한 직후 시작한 만큼 아이가 생기기 전 열심히 돈을 모아 세계여행을 떠나려는 원대한 계획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여행 책과 블로그를 통해 정보를 얻고, 한 동안 놓고 있던 영어 공부도 다시 시작하고요.


누구에게나 계획은 있습니다. 인생의 몽둥이로 맞기 전에는요.

3개월 만에 허리 디스크가 터지고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자 모든 계획이 바뀌었습니다.

다행히 한 달 반 정도를 쉬고 무게가 적은 홈쇼핑 택배로 복귀했지만, 한 번 고장 난 허리가 제 역할을 할 때까지 적은 수입으로 근근이 버틸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이켜보면 정말 철이 없었던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여전히 택배는 계속할 일이 아니라는 인식 때문에 매일 반복되는 단순한 일이 지겨워 그만둘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1년 반 만에 그만두고 아내와 사업을 시작했다가, 쓰디쓴 삶의 탕약을 먹고 정신을 차린 뒤 다시 택배업으로 돌아왔답니다.


이때를 기준으로 저의 택배 생활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인생이란 학교에서, 마치 놀러 온 기분으로 잠시 머물다 가는 교환학생처럼 굴었던 제게, 이후의 택배는 완전히 제 삶 자체인 것을 받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평생 해야겠다는 생각이라기보다는, 늘 머리를 굴려 어떻게 하면 효율적이고 빠르게 퀘스트를 통과할까 하면서 게임하듯 살아왔던 저의 태도를 직시하게 된 시기였죠.


언제까지 이 일을 하든 관계없이 주어진 하루, 순간순간 들을 충실하게 보내기로 했습니다.

가장 빠르고 정확하게 그날 일을 끝내는 것에만 몰두하던 제가 방문하는 집과 택배 하나하나를 생각하고, 일하며 스쳐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앞으로 시나리오로 적어볼 생각입니다.



아우라, 두 골프장 이야기

오늘은 이 시기에 돌아보게 되었던 배송지를 추억하며 시나리오를 적어 보았습니다.

시나리오에 등장하는 배경은 본격적으로 택배를 시작하고 초반에 배정받았던 구역입니다.

신도시 외곽에 있던 두 개의 골프장인데요.

바로 옆에 붙어 있어 차례로 배송을 갔던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두 골프장이 비교가 되었죠.

더 그럴 수밖에 없던 이유는 두 곳이 서로 너무나 달랐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이야기 지금 보실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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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라(AURA)
신체에서 발산되는 보이지 않는 기나 은은한 향기 혹은 사람이나 물건을 에워싸고 있는 고유의 분위기.


지문으로만 구성된 씬입니다.

대사보다는 보이는 사물들과 사람들, 그 안에 녹아진 분위기로 전달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느꼈던 것을 이 글을 보시는 분들은 어떻게 느끼셨을지 궁금하네요.


여전히 씬 구분은 어렵습니다.

실제 촬영을 고려했을 때는 장소가 달라지면 장비가 이동해야 하고 촬영 방식이나 모든 게 달라지니 같은 시간에, 동일한 건물의 안과 밖이라도 씬을 구분해서 적어야 하는 것이 맞는 건지 잘 모르겠습니다.

누구든 알려주시면 좋겠어요.


두 골프장은 전혀 다른 의미로 아우라가 느껴지는 곳이었습니다.

앞서 등장하는 곳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고급스러웠습니다.

입구부터 건물과 정원, 사람들, 그곳을 방문한 차들까지도요.


도착하는 순간 우와 하게 되는 것은, 건물 앞에 일렬로 도열한 훤칠한 직원들이 정확히 타이밍을 맞춰 90도로 인사하는 광경이었습니다.

모두 멋들어진 카우보이 모자와 복장을 하고서요.

각이 잡힌 자세와 안내하는 동작, 나이스한 표정은 고객들이 대접받는다는 인상을 받을 만했습니다.

그래서 택배기사를 대하는 태도와의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지기도 했죠.


뒤에 등장하는 골프장은 바로 옆에 있는 곳이라고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다른 분위기였습니다.

전자는 우렁찬 인사 소리와 분수대의 물줄기 소리, 사람들의 대화 소리로 시끌벅적했는데, 이곳은 적막할 정도로 고요했습니다.

아무도 없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요.

들어가 보니 사람들이 없던 것도 아니었는데 워낙 골프장 자체의 분위기가 그렇다 보니 조용해지는 것인지, 그런 분위기의 사람들이 선호하기 때문인지, 아무튼 정말 극과 극이었습니다.


정원을 잘 알진 못합니다만 확실히 일본식이었습니다.

건물이나 전반적인 분위기도 일본에서 느낄 수 있는 것들과 많이 닮아 있었어요.

그 자체는 분명 어떤 아우라가 있었지만 꼭 좋다고만 할 순 없었습니다.



표정과 손짓, 그 안에 삶의 태도

당시 제게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던 건 표정과 손짓입니다.

밝고 우렁차게 인사하던 직원의 일그러지는 표정과 귀찮다는 듯한 손짓, 그와는 사뭇 다른 경비원의 은은한 미소와 각 잡힌 경례 자세를 유지하던 손짓.

보통은 직원이 속마음은 어떨지 몰라도 아주 드러내놓고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지 않죠.

종종 드라마에서 그런 과장된 차별대우가 나오면 몰입이 깨지기도 하는데요.


사실 택배기사에겐 익숙한 일입니다.

사람들은 겉모양에 따라 본심을 감추기도 하고 본인도 모르게 드러내기도 합니다.

제게 인상을 찌푸렸던 직원을 매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들의 한 단면을 보고 있을 뿐입니다.

제게도 그런 모습이 보일 때가 자주 있어요.

택배를 하기 전과 후, 저 자신의 그런 모습을 인지하는 감도가 달라지긴 했지만요.


후자의 경비원 분은 택배를 하는 동안 손에 꼽히게 기억에 남는 분이었습니다.

택배차인 줄을 뻔히 알고 제가 젊은 나이의 택배기사인 것도 아시면서 매번 갈 때마다 그렇게 정자세로 서서 경례를 해주셨습니다.

나중엔 경례 후에 밝은 표정으로 손을 흔들며 인사도 해주시더라고요.

처음엔 친절함 때문이 아니라 그 아우라에 눈물이 핑 돌 정도였고, 나중엔 경비실을 지날 때마다 기분이 좋았습니다.


어떤 태도로 살면 저렇게 될 수 있을까 궁금했습니다.

당시엔 택배에 적응하느라 바빴고, 한동안은 제가 살고 싶은 삶을 위한 도구로만 택배 일을 생각했기 때문에 두 골프장에서 느꼈던 아우라의 의미를 깊이 생각하진 못했습니다.


택배를 그만두었다가 다시 돌아왔을 때 제게 하루의 의미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고, 그제야 그 시절을 다시 생각해 봤었습니다.

무엇보다 그 나이 지긋하신 경비원 분의 아우라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질 수 없다는 걸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제 삶을, 택배 일을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하루와 순간들이 모여 어떤 아우라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졌습니다.


이 글을 읽어주시는 여러분은 어떤 하루를 살고 계신가요?

누구로부터 어떤 아우라를 느끼나요?

나를 마주하는 사람들은 내게서 어떤 아우라를 느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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