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있는 용기
해외 살이 10년 차,
해외에서 만난 많은 지인들은 한 번쯤 향수병에 걸려 한국이 그립다고 말하곤 했다. 나 역시 그리울 때가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한국’이라는 땅이 아니라, 그곳에 있는 소중한 사람들이다.
귀국을 결정하는 사람들의 이유도 대부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어느 곳에 있든 내가 좋아하는 것, 친숙함을 느낄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네덜란드에서도 마음 맞는 지인들을 만나 외롭진 않지만, 오랫동안 보지 못한 엄마와 친구들, 그리고 조금씩 소원해지는 한국에서의 관계가 아쉬울 때가 있다.
나는 청주라는 고향을 좋아했다. 엄마와 친구들이 있는, 마음의 뿌리가 닿아 있는 곳. 그래서 가끔 생각한다. 만약 내가 해외에서의 삶을 일찍 접고 한국으로 돌아갔다면 지금쯤 어떤 모습일까. 가족과 친구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으며, 기쁨을 나누고 어려울 때 서로 기대며 사는 것. 어쩌면 그것이 인생에서 가장 큰 자산일지도 모른다.
가장 한국이 그리워질 때는 엄마가 해주신 음식이 그리울 때다. 한국을 방문할 때면 항상 반찬을 싸주시는데, 장거리 비행 중에 음식이 상하지 않도록 항상 건 반찬 위주로 싸주신다. 다른 반찬을 싸주지 못하시는 것을 항상 아쉬워하시는데 나는 이 반찬들 만으로도 이미 너무 충분하고 감사할 따름이다.
또 해외에 있으면 그렇게 분식이 댕긴다. 본래 떡볶이 킬러인데 해외에 나온 이후 떡을 구하기 어려워 (특히 아프리카 살 때) 이탈리아 뇨끼나 파스타 면으로 떡볶이를 해먹기도 했디.
그럼에도 나는 자신이 없었다. 한국 사회와 공동체 안에서 그들의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일이 행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세상이 정해 놓은 가치와 우선순위를 향해 달려가라는 보이지 않는 압력에 숨이 가빠졌다. 몇 번이나 결심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가 다시 떠나온 것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음에도 내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순간 한국이 불편해졌다.
이런 말하면 누군가는 그럴 것이다. 한국만큼 편리하고 안전한 곳이 어디 있냐고. 물론 맞는 말이다. 한국은 모든 면에서 편리하고 인프라도 잘 갖추어 있으며, 행정 처리 속도도 세계 최고다. 하지만, 한국은 다른 의미에서 내게 불편해졌다.
내 생각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행동하며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 어려운 환경은 나를 점점 소진시켰다. 배춧잎이 시들듯, 에너지가 빠져나갔다. 그런 환경에 오래 있다 보면 결국 눈치를 보고 스스로를 제한하게 된다. 사회적 기준으로 외모와 능력을 평가하고, 만나면 돈과 집, 차, 주식 이야기만 하는 분위기가 건강해 보이지 않았다.
물론 남들이 뭐라 하든 신경 끄면 된다. 하지만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이상 완전히 무시하기는 쉽지 않다. 내가 유독 그 환경에 취약한 것인지, 아니면 누구라도 그러한 상황에서는 비슷한 반응을 보일지 알 수 없다. 결국 차이는 개인의 기준일 뿐이다. 누군가는 한국이 편하다고 말하고, 나는 불편하다고 느끼는 것처럼.
해외에서 대단한 무언가를 이루고 싶은 건 아니다. 그저 하루하루의 일상을 충실히 쌓아가고 싶을 뿐이다. 언젠가 아이가 생긴다면, 그 아이도 자유롭게 살아가길 바란다. 사회가 요구하는 것만 따라가게 하지도, 혼자 고립되게 하지도, 과잉보호로 약하게 만들지도 않으면서 스스로 선택할 힘을 길러주고 싶다.
결론은 단순하다. 한국에서의 획일적 기준에 맞추어 살아가는 것이 불편하기에, 지금은 이곳에 머무는 삶이 더 좋다는 것. 그러나 언젠가 소중한 다른 가치를 지키기 위해 한국으로 돌아가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는 그곳에서도 내가 행복할 방식을 찾아 살아가고, 언제든 원하면 다시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있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