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마음 백문 백답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떠날 수 있는 용기

해외 살이 10년 차, 엄마 생각


해외에 있으면 가장 그립고 마음에 걸리는 게 한국에 계신 엄마다.


사랑하는 우리 엄마는 항상 나에게 엄마가 계신 꼭 청주가 아니어도 되니 한국에만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그 말이 늘 마음에 남아 죄송했다. 그래서 못해도 1년에 한 번은 꼭 한국에 가서 엄마와 시간을 보내려 했다.


2023년 5월, 문득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가 도대체 해외에서 혼자 무엇을 하고 있는 걸까." 오랜 고민한 끝에 결국 한국으로 돌아가기로, 그리고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기로 했다. 좋은 동료들과 의미 있는 아프리카 에너지 분야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었기에 아쉬움도 컸다. 그러나 이번이 아니면 영영 돌아가지 못할 것 같았다.


한국에 돌아가서 제일 먼저 한 일은 엄마에게 "마음 백문백답"이라는 작은 책자를 드리는 것이었다. 엄마의 어린 시절, 꿈, 하고 싶었던 일, 앞으로의 바람 등을 기록할 수 있는 문집이었다. 네덜란드에서 글쓰기 모임에 다닐 때, 엄마의 자서전을 쓰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 이야기에 영감을 받았다. 그는 인터뷰를 하며 엄마를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관계도 가까워졌다고 했다.


나는 어린 시절 엄마와 아주 가까웠다. 엄마와 성격이 잘 맞았고 항상 성실하신 엄마를 존경해 왔다. 하지만 해외 생활을 오래 하면서 몸에서 멀어지자 마음에서도 점점 거리가 생겼다. 그래서 한국에 돌아가면 엄마와 다시 친해질 계기를 만들고 싶었다. 이 책이 좋은 기회가 될 것 같았다.


마침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버이날이 다가왔다. 선물로 문집을 조심스레 건넸을 때, 다행히 엄마는 기쁘게 받아주셨다. 며칠 뒤, 엄마가 문집을 다 채워 넣으신 후 내 책상 위에 살짝 올려두셨다. 한국에 돌아온 지 얼마 안 돼 서로 어색했던 마음이, 조금 더 가까워진 것 같았다.


마음 백문백답 - 엄마가 좋아하는 자연으로 여행




엄마의 답을 읽으면서 나는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엄마의 모습을 새롭게 만났다. 엄마는 산과 바다, 꽃 같은 자연을 사랑하셨고, 어린 시절부터 노래를 하는 가수가 되고 싶어 하셨다. 하지만 첫째 딸로서 부모님을 돕기 위해 어린 나이에 일을 시작해야 했고, 음악을 배울 기회를 얻지 못했다.


또 엄마는 노래를 참 좋아하셨다. 어렸을 적 마을 노래 대회가 있으면 항상 우승을 하셨다. 어렸을 적 엄마가 집안일을 하실 때면 노래를 흥얼거리시던 목소리가 지금도 기억이 난다. 결혼 후에는 삼 남매를 키우며 평생 가족에게 헌신하셨다. 늘 자신의 소망을 뒤로 미루면서도, 한 번도 원망하지 않으셨다.


어렸을 적부터 마음에 깊이 새겨진 문장이 있다. "자식은 부모의 눈물을 먹고 자란다." 정말 맞는 말 같다.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 그리고 남모르게 흘리셨을 그 눈물의 시간이 있기에 지금의 건강한 내가 있다. 덕분에 나는 자유롭게 세계를 돌아다니며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었다. 그 모든 것은 엄마의 삶이 내게 물려주신 선물이다.


나의 삶은 내가 원하고 내가 하고 싶은 것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러다 보면 시야가 나에게만 머물러 주변을 돌아보지 못할 때가 있다. 가장 가까운 가족, 그리고 엄마조차도. 하지만 나는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다. 혼자만 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지 않다.


어쩌면 자유롭던 나의 시간 일부를 기꺼이 나누거나 나의 계획을 잠시 접어두는 시간을 통해, 그 속에서 더 성숙한 사람이 되고 더 큰 행복을 찾을 것이라 믿는다.




내가 해외에 있는 동안 잘한 일 중 하나는, 7년 전 엄마를 근처 대학교 평생교육원 꽃꽂이 자격증 과정에 등록해 드린 것이다. 엄마는 꽃꽂이를 즐겁게 배우셨고, 지금도 틈틈이 작품을 만들어 주변에 선물하신다.


엄마는 식물을 무척이나 좋아하셔서 우리 집 베란다에는 항상 화분이 가득하다. 여러 화분을 싱싱하게 가꾸어 이웃에게 나눠주거나 파시기도 한다. 꽃과 화분 이야기를 하실 때 빛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나도 엄마 덕분에 취미가 생겨 네덜란드 집에서 여러 화분을 키운다.


또 하나는 2024년 엄마가 네덜란드에 놀러 오셨을 때 네덜란드 최대 규모의 꽃밭인 쾨켄호프 (Keukenhof)에 모셔간 것이다. 엄마는 나보다 한참 앞서가 꽃들을 구경하고 사진을 찍으시느라 바쁘셨다. 연세가 있으시기에 오랜 산책이 쉽지 않으셨을 텐데 꽃밭에서는 오히려 엄마가 내가 따라가기가 힘들 정도였다. 아이처럼 행복해하시는 엄마를 보며 엄마가 좋아하는 곳을 더 자주 함께 가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네덜란드 퀴켄호프에서 엄마와 행복한 시간




못난 딸은 다시 네덜란드로 떠났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부터 수많은 곳에 이력서를 쓰고 한국에 와서 면접을 보러 다녔지만, 기회는 열리지 않았다. 그러던 중 퇴사했던 네덜란드 회사에서 다시 손을 내밀었다. 내가 일하는 동안 제안한 사업이 좋은 결과를 냈고, 회사는 그 성과를 인정해 다시 함께하자고 제안했다. 외국인인 나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회사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고, 솔직히 마다하기 어려웠다.


짧게 함께했던 한국의 시간 동안, 엄마도 취업으로 고생하는 나를 보며 마음이 아프셨던 듯하다. 엄마는 나를 인정해 주는 곳이 있으니 잘된 일이라며 다시 돌아가는 나를 따뜻하게 격려해 주셨다. 그 응원에 힘입어 나는 다시 네덜란드로 나왔다.


엄마께 더 잘하고 싶다. 더 자주 전화드리고, 더 자주 찾아뵙고, 작은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며 살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한국에서 더 오랜 시간을 엄마와 함께 보내고 싶다. 장소와 상관없이 유연하게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준비하는 것도 그 이유다. 지금 직장도 비교적 유연해서 휴가를 활용해 2주 정도 한국에서 재택근무를 할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도 이런 환경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을 잘 쌓아야겠다.


살면서 잊지 말아야 할 것, 지금의 내가 있기까지 엄마의 사랑이 있었다. 그 사랑이 지금도 삶을 단단히 지탱해 준다. 그렇기에 몸은 멀리 있지만 한국에 있는 엄마를 포함한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잊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랑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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