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해외 살이 10년 차,


나는 원래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캄보디아에서 1년간 해외 봉사를 끝마쳤을 때도, 모잠비크에서 국제개발 활동가로 일했을 때도, 케냐로 새로운 길이 열렸을 때도, 마음 한구석에는 늘 “이제 한국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한국은 나를 쉽게 받아주지 않았다. 취업 문은 좁았고, 기회는 적었다. 서울 살이는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월세 앞에 지방내기 혼자 안전한 집을 구하는 것은 하늘에 별따기였다. 반대로 해외에서는 매번 새로운 기회가 열렸다. 일도, 공부도.


그래서 결국, 기회가 있는 곳으로 문을 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네덜란드 하를렘 (Haarlem) 에 살고 있다. 여러 나라를 거쳐온 끝에 정착한 이곳은 또 다른 고향처럼 느껴진다. 새로운 문화와 사람들 속, 이곳에서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도 행복하게 느껴진다.


얼마 전 사랑하는 사람이 말했다. "요즘 너, 빛이 나." 요새 더 예뻐보인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행복해 보여 얼굴에서 빛이 난다는 말이었다. 사실 나 스스로도 느낀다. 이곳에서의 일상이 너무 좋고 매일이 기대가 되고 행복하려 노력하지 않아도 매일이 행복하다.


그러다 문득 궁금해졌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행복하게 하는지. 그리고 그 비결을 한국에 돌아가서든 어느 곳에 가서든 이 감각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요새 매일 일기를 쓴다. 이곳에서 얻은 영감과 배움을 잊지 않기 위해.




이곳에서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들


1. 관계에서의 행복


네덜란드 생활이 벌써 5년 차인데 처음보다 지금이 더 행복한 건 사랑하는 사람이 내 옆에 있기 때문이다. 함께 한지 2년이 넘었는데 서로 투닥거리긴 하지만 함께 하면 너무 즐겁고 잘 맞는다. 해외에 있으면 외로워지기 쉬운데 소중한 사람과의 안정적인 관계는 큰 힘이 된다.


또한 이곳에서 좋은 지인들을 많이 만났다, 석사 과정에서 만난 친구들이나 로컬 교회에서 만난 지인분들 모두 너무 친절하고 따뜻하다. 처음 만난 사람에게 하는 질문도 다르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일을 왜 하는지에 관심을 보이지, 사회적인 기준에 맞춰 질문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계에 부담이 없고 더 친밀해진다.



2. 일터에서의 행복


워라벨: 네덜란드에서 이직을 많이 했어서 벌써 세 번째 회사다. 대체로 모든 회사에서의 워라밸은 몹시 좋았다. 계약서 자체에 업무시간이 적혀있지 않고, 직원들을 신뢰하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9시 출근 6시 퇴근에 얽매이지 않고 비교적 자유롭게 일할 수 있다. 휴가도 자유로운데 지금 다니는 회사는 연차 제한이 없다. "Unlimited." 지금 다니는 회사는 입사 전부터 한국 휴가 계획을 미리 논의하고 취직했는데 취직하고 3개월 뒤에 3주 정도의 휴가를 쓸 수 있었다


근무지도 회사로 일주일 2-3일 출근하고 나머지는 집에서 재택근무를 한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을 줄이고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다. 야근도 정말 바쁠 때 말고는 없어서 6시 전에 퇴근을 한다. 물론 내 할 일 잘하고 업무 결과는 잘 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인 특유의 근면함으로 열심히 하면 웬만하면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만약 아이를 갖게 된다면 육아와 업무를 병행하기에 좋을 것 같다.


동료: 무엇보다 서로 신뢰하고 믿어주는 동료들, 불필요한 경쟁으로 서로를 태우거나 강요하는 일이 없다. 직급과 상관 없이 서로를 존중이 있다. 사실 일터에서 느끼는 성취감과 동료들과의 건강한 관계에서 얻는 만족이 크다. 한국에서 흔히 말하는 "또라이 총량의 법칙 (이 세상 어디든, 어느 조직이든 일정량의 '또라이'는 존재함)"도 여기에는 적용이 되지 않는 듯하다. 그게 아니면 이곳에서는 아마 내가 그 또라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보상: 현재 Permanent 계약으로로 연봉은 세전 약 1억 조금 넘는다. 세금은 많이 내지만 저축도 가능하다. 집값이 오르고는 있지만 한국만큼 버겁진 않다. 열심히 일하고 저축하면 집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이 보여 한국에서 보다 미래가 덜 막막하다. 회사에서 자격증 공부 비용도 100% 지원해 주니 즐겁게 배울 수 있다. 휴가도 많고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일하는 즐거움과 성장이 동시에 주어지는 환경이다.



3. 일상에서의 행복


이곳에서는 그 누구도 간섭하는 사람이 없다. 경조사도 드물고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참석해야하는 행사들도 없다. 그래서 하고 싶은 공부, 쓰고 싶은 글, 읽고 싶은 책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내가 원하는 루틴을 만들기 쉬운데 이게 자기 효능감을 높여 주는 것 같다. 아침에는 성경 묵상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오늘 하루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기를 기도를 한다. 그리고는 요가를 20-30분 정도하고 레몬 워터를 마신다. 업무 전 BBC 뉴스를 듣거나 ChatGPT와 영어 연습을 하며 입과 귀를 푼다. 퇴근길에는 영어책을 읽고 저녁은 그때그때 요리해서 먹는다.


저녁 후에는 네덜란드어와 프랑스어를 틈틈이 공부하는데 매일 3-5 문장을 직접 만들어본다. 자기 전 하루를 돌아보고 일기와 적고 싶은 글을 맘껏 적는다. 주말에는 공부를 마저 하거나 미술관·박물관을 간다. 지루할 땐 여행을 가기도 하고, 하루 종일 쉬기도 한다. 이렇듯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껏 할 수 있는 시기가 인생에 얼마나 있을까. 태어나서 처음 갖는 이 자유가 너무 달콤하면서도 벌써 아쉬운 생각이 든다.


결국, 나를 행복하게 느끼게 한 것은,
나를 위해 쓸 수 있는 시간과 자원이 있고, 친밀한 사람이 곁에 있고, 좋아하는 일을 즐겁게 할 수 있는 기회, 열심히 하면 보상이 있는 환경이었다.

나를 행복하게 하는 소소한 일상




물론, 언제까지 이런 환경 속에서 삶을 살 수는 없을 것이다.


기술과 경제는 한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변하고, 지금 내가 다니는 직장도 언제까지 보장될지 사실 알 수 없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런 환경이 보장되지 않는다 해도 나는 나의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환경을 넘어 어디에 있든 나를 긍정적이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습관을 갖고 싶다.


내가 할 수 있는, 나를 지켜 줄 최소한의 장치들. 어느 곳에 있든 내 삶을 잘 꾸려나갈 수 있도록 최소한으로 내가 나를 지킬 수 있는 습관과 방법을 알아보고 싶다.


그래서 다음 글에서는, 나를 힘들게 하는 것들, 그리고 나를 지킬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이전 01화떠날 수 있는 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