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하늘과 땅 식료품점

James McBride

by 블라이
Heaven & Earth Grocery Store by James McBride


영어책 읽기에 흥미가 붙던 즈음, 네덜란드 한 서점에서 이 책을 발견했다. Heaven & Earth Grocery Store — ‘하늘과 땅 식료품점’이라는 제목만으로도 따뜻한 이야기가 펼쳐질 것 같았다. 막상 읽어보니 예상보다 훨씬 탄탄한 서사가 있는 작품이었다. 특히 인물들이 전해주는 감정이 생생해, 그들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가려 한다.


소설의 배경은 1920~30년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작은 마을, Pottstown의 Chicken Hill 지역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유대인 부부 Moshe와 Chona가 운영하는 Heaven & Earth Grocery Store가 있다. 이 가게는 단순한 식료품점이 아니라, 인종과 종교의 경계를 넘어 사람들이 모이고 서로를 돌보는 공동체의 중심지다.


Moshe의 극장에서 일하는 흑인 남성 Nate Timblin과 그의 조카 Dodo가 등장하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움직인다. 지역 당국은 청각 장애를 가진 고아인 Dodo를 Pennhurst 주립 정신병원에 강제로 수용하려 하지만, Chona와 Nate는 그를 지키기 위해 힘을 모은다. 이 과정에서 서로 다른 배경의 사람들이 보여주는 연대와 용기가 빛을 발한다.




초나 (Chona)


가장 인상 깊었던 인물은 초나 플로어였다. 어릴 적부터 다리를 저는 데다 간질을 앓고 있어 신체적으로는 약했지만, 마음은 그 누구보다 단단하고 올곧았다. 그녀는 남편 모셰와 함께 치킨 힐에서 식료품점을 운영했는데, 그곳은 단순한 가게가 아니라 흑인과 유대인, 이방인들이 차별 없이 드나들 수 있는 공간이었다. 도도가 사고로 어머니를 잃고 고아가 되어 강제로 병원에 보내질 위기에 처하자, 초나는 소년을 자기 집에 숨겨주고 보살펴주기로 결심한다.


도도 (Dodo)


도도는 청각장애를 앓고 있는 12세 흑인 소년이다. 엄마가 불의의 사고로 죽게 되고 고아가 되자, 네이트 삼촌과 모셰 & 초나의 보살핌으로 주립병원으로 넘겨지지 않고 공부도 하고 옆집 친구들을 사귀며 한동안 살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지역 당국은 도도를 부모도 없고 쓸모없고 ‘문제 있는 존재’로 여겨 펜허스트 주립 병원에 격리시키려 한다. 제대로 된 치료를 위해서가 아니라 그를 정상인의 세계에서 제외시키기 위해서였다. 이런 과정에서 등장하는 빌런이 닥터 로버츠다.


닥터 로버츠 (Doctor Robert)


닥터 로버츠는 부유한 이민 가정에서 자라 사회적으로 성공하기 위해 의사가 된 인물이다. 그는 타인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거나 존중하는 법을 몰랐다. 그랬기에 그의 아내도 지인들도 사랑하지 못했고, 그들 역시 그를 사랑하지 않았다. 외모나 성품 면에서도 매력적이지 않아 젊은 시절 초나에게 거절당한 기억에 집착하게 된다. 그는 흑인이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들을 경시했고 스스로를 더 우월하다 생각했다. 그랬기에 유대인이자 걸음이 불편했던 초나가 거절하자 분노와 괘씸함을 느꼈고, 성인이 되어 도도를 숨겨주는 초나를 다시 만났을 때 그 마음이 더 악화되었다. 결국 그는 초나가 숨겨주던 도도를 병원에 보내는 데 일조한다. 그의 불쾌한 방문 이후 초나는 발작을 일으켜 병이 악화되고, 끝내 세상을 떠난다. 도도는 닥터 로버츠를 피해 달아나다 붙잡혀 병원으로 보내진다.


몽키 팬츠 (Monkey Pants)


끔찍한 병원 생활 속에서 도도의 친구가 되어준 이는 몽키 팬츠였다. 그는 뇌성마비를 앓고 있었고, 말투와 움직임이 어눌했지만 누구보다 따뜻하고 섬세한 마음을 지닌 인물이었다.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지 못해 바보처럼 취급했지만, 그는 몸짓으로 언어를 만들어 낼 만큼 영리했다. 도도가 낯선 환경 속에서 불안해할 때마다 그는 늘 곁에서 조용히 힘이 되어 주었다. 몽키 팬츠는 병원에서 도도를 학대하려던 악당 ‘Son of Man’을 막아내며 그를 지켜냈지만, 그 과정에서 발작을 일으켰고 안타깝게도 다음 날 세상을 떠나고 만다. 두 사람은 힘들 때마다 서로의 손가락을 맞대며 마음을 나누곤 했는데, 그는 죽기 전 마지막 밤까지도 도도가 내민 손에 손가락을 대어주었다.


네이트 러브 (Nate)


하나뿐인 친구였던 몽키 팬츠까지 세상을 떠나자 도도는 깊은 상심에 빠진다. 그러나 그를 구하기 위해 네이트 삼촌을 필두로 치킨 힐의 공동체와 인근 마을 사람들이 연대해 탈출 작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는 작전 대로 달걀 배달부로 위장해 병원에 잠입했고 병원의 악당들을 처리하고 도도를 구출하는 데 성공한다. 그리고 도도를 데리고 아내 애디(Addie)와 함께 남쪽으로 도피하며 새로운 삶을 산다. 도도는 자신을 위해 모든 것을 걸었던 네이트를 존경하며, 훗날 자신의 이름을 ‘네이트 러브 2세’로 바꾸어 그를 평생 기억한다.




기억으로 남는 사람


초나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치킨 힐도 이제 옛이야기가 되었다. 그러나 모셰와 아이작은 그녀의 이름을 따 **‘초나 센터(Chona Center)’**를 세운다. 그것은 초나의 삶이 얼마나 귀했고, 얼마나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장면이었다.


초나는 유명하지도, 세상을 바꾼 사람도 아니었지만, 유대인으로서 흑인 공동체를 도왔고, 고아가 된 아이를 지키며 선한 영향력을 남겼다. 반면 닥터 로버츠는 생전 의사로서 명성을 얻었지만, 타인을 업신여기며 살아 결국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한 채 쓸쓸히 죽었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싶은가를 생각하게 된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힘 있는 사람이라도 타인을 사랑할 줄 모른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 초나처럼, 도도의 곁에 있어준 몽키 팬츠처럼, 따뜻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사랑을 전하고 기억되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