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리뷰: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by 블라이
작은 땅의 야수들, 김주혜


미국계 한국인이 쓴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제강점기 말기부터 해방 직후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비극적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다. 이 책은 2024년 톨스토이 상을 수상했다.


이야기는 위대한 영웅적 인물이 아니라, 시대의 가장자리에 있었던 이들, 기생, 거지, 인력거꾼, 피난민, 방관자, 사랑에 실패한 사람들의 삶을 그린다.


등장인물들의 삶 하나하나가 마음 아리게 다가왔다. 그래서 이번 책 리뷰는 등장인물들을 대상으로 책의 내용을 풀어가 본다.




정호


정호는 어렸을 적 부모를 여의고 거리에서 자란 거지였다. 싸움을 잘했던 정호는 거지 무리에서 대장이 된다. 거지로 지내던 소년 시절에 거리에서 옥희를 지나쳐 봤을 때, 그 소녀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그 이후부터 정호는 그녀에게 찾아갔고, 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며 좋은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리고 그 마음이 점점 자라 사랑이 되었다.


성인이 되어 더 아름다워지고 빛이 나는 옥희를 보며 그는, 건달로 살고 있는 자신이 초라해 보였다. 그녀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마땅히 그녀 옆에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그 마음으로 이념에 상관없이 독립운동에 참여했고, 자신이 무언가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다 독립운동을 위해 상해로 떠나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그는 옥희를 찾아가 고백했다. 상해에 가지 않을 테니, 나와 함께 살아주면 안 되겠냐고. 하지만 옥희는 거절했다. 정호는 그 순간, 자신이 아무리 달라져도 그녀의 마음을 얻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절규했다. 그리고 옥희에게서 돌아선다.


상해로 떠난 후, 암살 작전에 성공하지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그러다 태평양 전쟁 참전을 위해 일본군에게 착출 되었는데 신기하게도 돌아가신 아버지에게 신세를 진 일본군 장교를 만나 풀려나게 된다. 곧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고, 그는 사회주의 이념을 가진 사람이자 일본군에 협력했다는 오해를 받고 체포된다. 그의 체포에는 일본군 장교가 그를 돕기 위해 남긴 문서가 결정적이었다. 자신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이 오히려 독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


수감 중, 정호는 옥희의 면회를 받는다. 그 짧은 만남으로 그 둘은 화해를 했다. 자신을 위해 울어주는 옥희를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았다. 아마 한 번도 진심으로 미워한 적은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정호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걸맞은 사람이 되고 싶어 독립운동을 시작했고, 독립을 위해 목숨도 내놓고 애썼지만,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얻지 못했고, 해방된 국가로부터 외면받는다.


옥희


옥희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찍이 기생이 되었다. 그녀가 정호를 처음 본 것은 기생집 주변이었다.

거지였던 정호는 늘 먼발치에서 그녀를 바라보았고, 옥희는 처음엔 그를 별다르게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정호가 자신에게 특별한 마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옥희는 상철을 사랑했다. 그녀가 가장 예쁘고 배우로서 빛나던 시기에 만난 상철은 가난하지만 똑똑한 청년이었다. 인력거를 끌며 가족을 부양하는 상철을 보며 애틋한 마음을 가졌고, 자신에게 수줍어하는 그에게 마음을 열었다. 정호는 지금의 자신이 초라해 더 나은 사람이 되어 그녀 앞에 나타나려 했는데, 그녀는 가난한 아무것도 없는 남자를 사랑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철과 옥희의 사랑도 바래진다. 상철보다 나이가 많은 옥희는 어느덧 나이가 들어가고, 상철이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자 둘은 점점 더 멀어진다. 그렇게 그 둘은 허무하게 헤어진다. 헤어진 후 옥희는 힘든 시간을 보낸다.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배우로 활동하기도 어려웠고, 조선인들 집에서 값나가는 것은 모두 가져가는 일본군의 횡포로 점점 가난해졌다.


옥희가 가난 속에 허덕이고 있을 때, 상철은 나타나 그녀를 돕지 않았지만, 정호는 그녀에게 찾아와 조금씩 도움을 주었다. 정호가 상해로 떠나기 전 옥희를 찾아와 마음을 고백하고 함께 살자고 했지만, 그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직 상철을 잊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정호의 고백을 거절했고, 그 이후 정호와의 관계는 끊어진다. 소중한 친구를 잃은 옥희는 상심했다.


그러다 해방 후 정호가 체포되었다는 소식을 들은 옥희는 정호가 수감된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마지막 면회를 한다. 어떻게든 그를 구하기 위해 부잣집 여자와 결혼해 크게 성공한 상철을 찾아가 자존심 모두 접고 도움을 요청까지 한다.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에게 자신을 사랑해준 사람을 구해달라고 요청하는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상철


상철은 인력거꾼이었다. 가난하고 한 가정의 장남으로 무거운 책임감에 눌려있었다. 그는 일이 끝난 후 야간학교를 다니며 학업을 이어갔다. 그는 기생이자 연극배우인 옥희를 남몰래 사랑했다.


그녀는 얼굴만큼이나 마음씨가 고왔다. 연극이 끝나고 그녀를 데려다주는 시간을 기대하며 사랑을 키워간다. 그런 순수한 상철에게 옥희도 마음을 연다. 옥희에게 어울리는 사람이 되고자 돈을 벌고 독립운동에 뛰어든 정호와 다르게 그는 가난했을 때 마음을 표현했고, 그녀의 사랑을 얻는다.


옥희는 그를 진심으로 사랑했기에 상철의 어깨의 짐을 덜어주고 싶어 야간학교 등록금과 생활자금을 지원해 준다. 그녀의 지원으로 상철은 대학도 졸업하게 된다. 하지만 그는 이 모든 것을 자신의 힘으로 이뤄냈다 생각하며,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한다.


6년 연애 후에도 그는 옥희에게 미래를 약속해주지 않자 옥희는 불안해한다. 상철은 그녀와 결혼할 생각이 없었다. 기생이라는 존재가 갖는 사회적 위치, 나이, 그 모든 것이 그를 뒷걸음치게 만들었다. 옥희는 사랑했던 사람에게 외면당한 순간, 가장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렇게 그들은 헤어진다.


이후, 정호가 체포되었을 때 옥희는 마지막 희망으로 상철을 찾아간다. 첫사랑이었던 그녀는 정호를 구해달라고 간절히 부탁한다. 상철은 그녀의 간절한 부탁을 들어줄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비겁한 인물인듯 하다.




정호의 사랑이 너무도 아프게 기억에 남는다. 그는 사랑받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에게 더 나은 사람으로 서기 위해 노력했다. 옥희는 그 사랑을 끝내 거절했지만, 마지막엔 상철이 아닌 그를 기억했고 그에게 고마워했다. 하지만, 상철은 옥희를 기억하지도 고마워하지도 않았다. 그는 옥희가 사랑한 사람이었지만, 그녀가 힘들어했던 모든 순간에 상철은 없었다.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 자신이 힘들 때는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은 참 슬픈 일이다.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하면 사랑하고 받았던 그 기억만으로 삶을 살아갈 위안을 얻는다. 삶에서 고되고 힘들었던 순간에도 나를 아껴주었고 사랑해 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버텨낼 수 있었다. 내가 사랑하고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그리고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고 가장 중요한 순간에 함께 할 수 있다는 것은 참 감사한 일이다. 그 소중함을 잊지 않고 살고 싶다.




아직까지 왜 이 제목이 작은 땅의 야수들인지는 잘 공감이 가진 않는다. 일제 강점기 시절 민초들의 용맹함을 다루었다고 하기에는 등장인물들이 민초를 잘 대변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주요 등장인물들이 고아, 거지, 기생, 독립운동가들이지만, 그 시대를 살아간 민초들의 이야기를 깊이 있게 다루었다기보다는 주요 등장인물들의 사랑과 삶의 이야기에 초첨을 맞추었기에 제목의 웅장함을 담기에는 내용이 다소 협소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등장인물들의 삶을 통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게 하고 여운이 깊이 남는 좋은 글이었음은 부정할 수 없다. 그렇기에 한번 읽어볼 것을 추천한다.


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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