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있는 용기
모잠비크, 아프리카에 처음 내딛다
나에게는 캄보디아에서의 1년이 그랬다.
봉사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단순히 ‘좋은 경험이었다’라고 넘기기에는 그 일에 깊게 매료되어 있었다. 다른 곳에 취직해 일하면서도 아이들의 눈빛, 마을 사람들의 웃음, 그리고 함께 지낸 날들이 내 안에 오래 남아 있었다. 그곳에서 작은 도움이 얼마나 큰 변화를 만들 수 있는지 직접 보았기에.
그래서였다. 그 경험을 일회성으로 끝낼 수 없었다. 이 일을 봉사가 아닌 ‘업’으로 삼고 싶다는 열망이 생겼다. 내가 가진 시간과 능력을 나눌 수 있다면, 그것만큼 의미 있는 삶이 또 있을까.
마침 오랫동안 후원해 온 NGO에서 국제개발 활동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망설이지 않고 지원했고, 그렇게 내 두 번째 여정은 모잠비크에서 시작되었다.
모잠비크에 처음 도착했을 때 모든 것이 낯설었다. 캄보디아는 그래도 아시아에 있었기에 문화와 환경이 달라도 같은 아시아 안에서 공유하는 비슷한 정서들이 있어 적응이 어렵지 않았는데, 아프리카, 특히 모잠비크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남쪽 해안을 따라 길게 뻗은 나라, 모잠비크에는 여러 부족이 모여 살며, 각 부족마다 언어가 달랐다. 공용어는 포르투갈어. 언어에서 드러나듯 이 나라는 1975년 포르투갈로부터 독립했다.
모잠비크에는 수십 개의 민족이 모여 산다. 가장 큰 집단은 북부에 많이 사는 마쿠아(Makua) 사람들인데, 그 외에도 창가(Tsonga), 세나(Sena), 은다우(Ndau), 마콘데(Makonde), 야오(Yao) 등 수많은 부족들이 뿌리내리고 있다. 전체를 크게 나누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주요 민족으로 묶일 수 있지만, 실제로는 60개에 가까운 다양한 언어와 문화가 공존한다. 다른 아프리카 국가들도 이런 경우가 많다고 한다.
한 나라, 한 언어에 익숙했던 내게 한 나라 안에 이토록 많은 인종과 언어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이 무척 신기했다. 캄보디아에 있을 때도, 마을 주민들과 가까워지기 위해 공용어인 크메르어를 틈틈이 배웠는데, 모잠비크에서도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를 배웠다. 처음에는 식민지를 자행한 국가의 언어인 포르투갈어를 배우는 게 맞나?라는 생각도 있었다. 하지만 그 많은 언어들을 다 익힐 수 없기에, 공용어라도 익혀두려 했다.
나는 모잠비크의 수도인 마푸투에서 지냈다. 마푸투는 바다가 한눈에 보이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한국에서도 바다에서 먼 내륙 지방, 청주에서 살던 나에게 바다가 보이는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언제든 수평선 너머로 해가 떠오르고 지는 것을 바라볼 수 있었는데, 힘들 때 큰 위안이자 소소한 행복이 되었다. 바닷가 근처에는 멋진 레스토랑과 카페들도 있었다. 바다가 곁에 있으니 도시가 풍요롭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러나 이 화려함은 수도의 일부 풍경일 뿐이었다. 마푸투를 조금만 벗어나면 전혀 다른 현실이 기다리고 있었다. 빈곤과 가난에 힘겨워하는 마을들이 있었고, 내가 맡은 사업 현장은 바로 그곳에 있었다.
우리 사업지는 마푸투에서 차로 4시간 거리에 있었다. 바닷가 근처 마을로 가는 길은 울퉁불퉁한 비포장도로였고, 튼튼한 4x4 랜드크루저조차 바퀴가 터지기 일쑤였다. 출장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갈 때면 늘 골이 빠질 것만 같았다.
한 번은 비가 내려 도로가 물 웅덩이에 잠겨 차가 박힌 적이 있었다. 해는 저물어가고, 주변에는 집조차 없어 이대로 밤을 지새야 하나 걱정이 되던 순간, 멀리서 마을 주민분들이 나무통 두 개를 들고 달려왔다. 그분들은 맨발로 물에 들어가 나무통을 바퀴 밑에 힘차게 쑤셔 넣었다. 발목이 젖어도 개의치 않았다. 바퀴가 빠져나오자 자기 일처럼 환히 웃으며 기뻐하셨다. 그 장면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아마도 우리 지부장님과 직원들이 주민들을 늘 진심으로 대해왔기에, 그 신뢰가 서로를 위하는 두터운 관계를 만든 것 같다.
캄보디아에서 처럼, 나는 모잠비크에서도 참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 지혜롭고 진심 어린 지부장님, 언제나 성실하게 의견을 보태던 직원들, 그리고 묵묵히 힘을 보태주던 마을 주민들. 낯선 땅에서 그들과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감사했고, 외롭지 않았다. 언어는 서툴렀지만 마음은 통했다. 작은 단어라도 포르투갈어로 건네면, 그들은 환하게 웃어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을 하겠다고 그 험한 길을 뚫고, 바퀴가 빠져가며까지 갔을까?”
그 이야기는 다음편, 〈교육〉에서 이어가려 한다.
다음편: 모잠비크 2편, 교육 현장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