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잠비크 3편. 씨앗 하나, 마을 하나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모잠비크, 씨앗 하나, 마을 하나


아이들의 배움의 길을 열었지만, 교육만으로는 아이들의 삶이 완전히 달라지지 않는다. 부모님들의 경제적 안정과 마을 환경이 함께 바뀌어야 했다.


이곳에 오기 전 배웠던 것은, ‘우리가 주도하는 게 아니라, 그분들이 하게 하는 것’이었다. 한국에서 온 우리가 뭐라고 그분들에게 조언을 하고 이것저것 하자고 할 수 있겠는가. 좀 더 형편이 나은 나라에서 왔다고, 우리가 도와주겠다고 이런저런 사업을 우리 맘 대로 하는 것은 교만이다. 그렇기에 그분들의 생각과 목소리를 먼저 듣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가난에서 벗어나 더 잘 살 수 있을지.


이를 위해 자주 쓰이는 국제개발 기법 중 하나는, 의사결정 나무로, 주요 문제를 해결하려면, 그것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그 원인을 심층적으로 분석하고 그 문제로 인한 진짜 영향에 대해 브레인 스토밍 해보는 것이다. 문제와 그 원인, 영향은 문제 나무에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해결 방법을 찾아 해결 나무를 만든다.




ㅣ 문제 나무 그리기


우리는 마을 주민분들을 만나 마을의 주된 문제와 그 원인에 대해 논의하고 문제 나무를 그려보았다.


이를 통해 알아낸 것은, 마을이 가난한 것은 경제적 활동 기회와 역량이 제한되어 지속적인 소득을 낼 수 가 없다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마켓에 가서 팔고 싶어도 시장과 거리가 멀었고, 소량 재배 된 곳을 사줄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그렇기에 기후로 인해 재배가 잘 되지 않았을 때는 보릿고개를 넘겨야 했고, 생존이 중요하지 아이들의 교육이나 보건에 투자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다 누구 한 명이라도 아프면 치료비를 낼 여력이 없고 당장 빈곤에 빠지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면 어떻게 소득을 낼 수 있을까? 부모님들이 자급자족을 넘어 필요한 때를 대비하여 저축을 할 수 있도록 소득을 내고 싶다고 했다. 부모님들 대부분이 농부이기에 농업사업이 제일 가능한 방법이었다. 다만 소량으로 개인이 팔면 이득이 적으니, 곡물을 대량으로 시장에다 내다 팔 수 있도록 지원이 필요했다.


그분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다양한 의견을 내셨다. ‘질을 높일 수 있도록, 질 좋은 씨앗과 농업 기술 교육이 필요하다’, ‘대량으로 함께 팔 수 있는 농업협동조합을 만들자’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터져 나왔다. 그런데 대량으로 재배해서 값이 좋은 시기에 대량으로 팔려면 한 곳에 저장을 해놓고 질관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 그러면 ‘일정 규모에 곡물의 습기와 온도를 잘 관리할 수 있는 창고도 필요하겠다,‘ 등등 여러 좋은 행동계획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왔고, 우리는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ㅣ 콩 재배 프로젝트


주민분들과 주정부 농업 기술 전문가의 의견을 바탕으로 콩 재배를 선택했다. 마을에서 잘 자라고, 모잠비크의 주식이며, 시장에서 비교적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는 마을 토지에 가장 적합한 콩 품종을 선정하고, 질 좋은 씨앗을 확보하며, 농업 전문가를 초청하여 재배법 교육을 실시했다. 이후 수확물을 함께 저장·관리할 창고도 지었다.


첫 시범 사업의 수확이 가까워질 때쯤, 우리는 마을의 첫 콩을 시장에 가져갔다. 시장으로 가는 내내 긴장됐다. 과연 재배된 콩이 실제로 시장에서 잘 받아들여질지 기대가 되면서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그동안 고생하신 주민분들과 동료들을 생각하면 꼭 잘 해내고 싶었다.


다행히 우리가 콩을 보여주었때, 상인들의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품질이 좋기에 충분한 양만 가져오면 자신들이 사고 싶다고 했다. 드디어 시장 판매처까지 확보가 된 것이다. 콩의 품질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는 상인의 모습에 그동안 쌓인 마음의 긴장과 근심이 녹아내렸다.


물론 과정이 항상 순조롭진 않았다. 필요한 농업 장비를 두고 의견이 엇갈리기도 했고, 날씨 탓에 수확이 늦어지기도 했다. 판매처를 찾는 과정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함께 머리를 맞대고 해결책을 찾아갔다. 작은 실패와 도전이 쌓일수록,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기쁨이 커졌다.


어느 순간부터 주민들의 눈빛에는 자신감이 번지기 시작했다. 매주 찾아갈 때마다 수확물을 내밀며 웃던 모습은 지금도 잊을 수 없다. 이 일은 2편에서의 교육 사업보다 일이 많고 밤잠을 설칠 만큼 고민도 많았지만 더없이 값진 여정이었다. 그렇게 2년 남짓의 시간 동안, 마을 전체의 삶에 작은 변화의 씨앗을 심었다.




나는 모잠비크에서의 시간을 사랑했다. 그곳의 바다, 마을, 그리고 사람들이 너무 좋아서 계속 머물고 싶었다. 함께 사업을 했던 직원들, 주민들의 미소, 험한 길에서 도움을 준 이웃의 손길은 지금도 생생하다. 오래전 일이어서 기억을 아름답게 포장하고 있는 것일 수도 모르지만, 나는 그곳에 오랫동안 머물고 싶을 만큼 진심으로 사랑했다.


하지만 모든 것은 내가 원하는 대로만 되지는 않았다. 현장으로 가는 길에서 작은 교통사고를 당했었고, 경미한 부상에도 그곳의 의료로는 제대로 치료를 받기 어려웠다. 또한 NGO 내부 사정으로 현장에 사람을 파견하는 것이 쉽지 않아, 머물고 싶어도 더 머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한국으로 돌아갔다.


한국으로 돌아가 충분히 쉼을 취하고 다시 모잠비크로 나가고자 여러 기회를 알아보았다. 그러다 6개월 뒤 우연히 국제개발 분야 모잠비크 파견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감사하게도 합격했다. 그런데 합격 이메일에 적힌 파견 지를 확인하니, 이게 웬걸. 모잠비크가 아닌 케냐였다.


이렇게 내 여정은 케냐에서 다시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