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날 수 있는 용기
케냐에서 남긴 질문들
케냐에는 유난히 기독교 선교사가 많았다. 인구의 80% 가까이가 기독교 신자라,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다. 케냐는 동아프리카 경제의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동아프리카 국가 중 유일하게 저소득 국가가 아닌 중저소득 국가로 분류되었고, 매년 높은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국제통화기금 IMF, 2024년 기준 5.3% 예측).
주변에는 더 가난하고, 더 절박한 도움이 필요한 나라들(에티오피아, 소말리아, 남수단 등)이 있음에도 왜 이렇게 케냐에는 선교사가 많은 걸까? 사역이 상대적으로 어렵지 않고 전도가 수월하기 때문일까? 혹은 무슬림 국가들에 둘러싸인 케냐를 보호하기 위한 전략일까? 그러나 그렇다면 오히려 무슬림 국가에서 선교에 집중해야 하는 게 아닌가 궁금해졌다. 전에 울지 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님이 케냐에 와서 실망하고 내전 중인 남수단으로 가셨다는 이야기가 떠오른다.
케냐에서 본 여러 NGO들 중, 종교 기반 기관들에서는 상대에게 사명감을 강요하며 성과를 내도록 요구하는 곳들도 종종 보였다. 기독교 외 종교 기관들도 마찬가지였다. 국제개발에 경험과 지식이 부족한 봉사자가 모든 사업 관리를 홀로 감당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선한 일을 선하지 않은 방식으로 강요하는 것 같아 참 아이러니했다. 사명감을 강요당하는 속에서 몸을 갈아 넣어 어떻게든 사업을 해내는 사람들, 혹은 그 속에서 힘들어 지쳐 떠나가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이 많아졌다.
누군가는 나처럼 봉사로 시작해 국제개발협력에 들어오고, 세상에 좋은 영향을 주는 일을 하고 싶어 이 길을 택한다. 또 누군가는 비전이나 목표와 상관없이 직업으로서 국제개발을 선택한다. 어떤 이유에서든 결국 이 일은 ‘직업’이다. 직업으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다일 것이다.
예전에는 특별한 비전 없이 이 일을 하는 사람들이 신기했다. 그런 게 없으면 하기 어렵고 고된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꼭 그렇지는 않았다. 이 일이 흥미로워서, 여행을 좋아해서, 혹은 다른 개인적인 이유로 이 길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공기업이든 국제기구든, NGO든 각자의 성향과 목적에 맞게 직업으로 선택한 것이다.
그렇다면 비전이 있다는 건 과연 중요한 걸까. 사명을 갖고 일하는 사람들의 위선을 보면서, 거창한 사명이나 비전보다 직업인으로서 어떤 태도로 일을 대하는지가 더 중요해 보였다. 오히려 직업으로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이, 사명이 있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지혜롭지도 성실하지도 않은 사람들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낸다. 어떤 일이든 성실하고 지혜롭게 하면 되는 것 같다.
다만 적어도 사람을 보는 '관점'은 중요하다. 직업 정신을 갖고 좋은 성과를 내려하는 사람도, 가난한 사람들, 어려움 속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좋은 사업을 하기 어렵다. 한 번은 국제개발을 하면서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보았다.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사람들? 가뭄으로 농사도 안 되고 삶이 힘들면 그냥 다른 곳으로 이주하면 되지? 왜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거냐.” 한심하다는 듯 내뱉은 그 말이 내겐 참 무겁게 다가왔다. 떠날 능력이 없으니까, 그곳이 삶의 터전이었으니까 떠날 수 없었던 것인데.
국제개발협력가는 여기서 더 나아가 궁금해하고 질문해야 한다. 그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보고, 그들의 입장에서 느끼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들이 왜 그곳에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지 그 이유를 알아야 비로소 올바른 접근을 할 수 있다. 그에 따라 우물을 파든, 아니면 다른 곳으로 이주를 돕는 것이 나을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 그들에게 꼭 필요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케냐에서 다양한 사업들을 모니터링하며 시야와 경험을 넓혀가는 귀한 시간이었지만, 동시에 회의감도 깊어졌다. 잦은 출장과 많은 사업 모니터링 평가 속에서 어느 순간 압도되어 몸과 마음이 지쳐버렸다. 때로는 국제개발이라는 일 자체에 회의가 밀려오기도 했다.
처음에는 즐거움과 기대로 가득 찼던 내 일이, 이제는 그냥 일 자체로 보이기 시작했다. 현장에 파견된 엘리트들, 글로벌 트렌드에 맞춘 제안서들, 정책과 시스템 개선을 위한 모든 활동은 분명 필요한 일이지만, 동시에 마음 한편에서는 “문서와 계획 속에서만 완벽한 우리만의 천국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순간 이 직업에 대한 내 마음과 열정은 점점 메말라갔다. 케냐도, 국제개발도 잠시 거리를 두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쉴 때에도 쉬는 느낌이 들지 않았다. 잠을 자고 일어나도, 여행을 다녀와도, 맛있고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어도 마음은 여전히 공허했다. 가족과 멀리 떨어져 오랜 시간 해외 생활을 하다 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그즈음 코로나가 발생했다. 본부에서는 사무소 인력을 최소화하고 귀국을 권고했다. 마침 나는 우울감이 심해 심리 상담을 받고 있었고, 결국 한국으로 돌아와 원격근무를 이어갔다.
케냐에서의 시간은 내게 귀한 배움이었지만, 동시에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는가, 무엇을 위해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남겼다. 그 질문에 답하기 위해 잠시 멈추어 서서, 국제개발을 더 깊이 공부해야겠다고 결심했다.
마침 케냐에서 알게 된 유엔에서 근무하던 지인 한 명이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고, 그가 들려준 ‘행복한 삶’에 대한 대화가 우울했던 마음에 작은 설렘을 불러일으켰다. 그렇게 케냐에서 2년간의 근무를 마친 뒤, 나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석사 과정을 시작했다.
이렇게 네덜란드에서 또 다른 여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