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덜란드 1편. 슬기로운 석사 생활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해외 살이 10년 차,


2020년 초, 코로나19로 인해 케냐에서 한국으로 돌아갔다.


그동안 해외에서 5년간 일을 하다 보니 몸과 마음이 모두 지쳐 방전되었던 나는, 한국에 돌아와 회복의 시간을 가졌다. 아침엔 기도와 요가로 하루를 시작했고, 저녁엔 책을 읽고 일기를 쓰며 마음을 정리했다. 약 3개월간 집에서 재택근무를 했기에 출퇴근 시간에 매이지 않고 오롯이 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우울증 회복을 위해 심리 상담도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히 받았는데, 별 효과가 없다던 친구의 말과는 다르게 내게는 큰 도움이 되었다. 10회 정도를 받았을 때 나와 내가 겪었던 삶을 새로운 시각, 긍정적이고 성숙한 방향으로 볼 수 있는 눈이 생겼다. 그 시기엔 글도 참 많이 썼다. 마음속 생각과 고민을 모두 글로 쏟아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그렇게 엄마 밥을 먹으며 잘 먹고 잘 자다 보니, 어느 순간 긴장되고 지쳤던 마음이 풀리고 마음에 다시 힘이 붙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케냐에서 힘든 와중에도 지원했던 네덜란드 석사 합격 소식이 떠올랐다. 사실 너무 지쳐 있던 상태라 석사 공부를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었는데, 쉼을 통해 머리가 맑아지니 미래를 새로 그려볼 준비가 되었다.




네덜란드 석사 도전


사실 나는 네덜란드 외 한국의 석사 과정들도 알아보았다. 혹시 한국에서 더 좋은 기회가 있다면 한국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하지만 알아보니 해외에서 공부하는 것만큼 비용이 들었고 장학금 혜택도 적었다. 또한 모든 과정이 서울에 몰려 있었는데, 집값을 포함한 비용과 장학금 혜택 등을 고려했을 때 해외에서 공부하는 편이 더 나은 선택이었다.


ㅣ 왜 네덜란드인가?


처음부터 영어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나라를 찾고 있었다. 미국은 학비가 너무 비싸 제외했고, 유럽 내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영국은 국제개발 석사 과정이 논문 기간을 포함해 1년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비용이 높고 기간이 짧았다. 게다가 영국 유학을 다녀온 지인들의 후기도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았기에 덜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네덜란드는 비영어권 국가지만 대부분의 석사 과정이 100% 영어로 진행되며, 평균 학비도 영국이나 다른 국가에 비해 합리적인 편이었다. 내가 관심 있던 학교는 연구 중심 대학이었고, 논문 기간이 4개월로 충분히 연구에 집중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


또한 국제학생을 위한 장학금 제도도 잘 마련되어 있었다. 실제로 네덜란드 교육진흥원(Nuffic)을 통해 등록금의 일정 부분을 장학금으로 지원받았다. Nuffic에서는 장학금 수여를 위해 주한 네덜란드 대사관으로 초청해 주었고, 세련되고 키가 큰 여성 대사님이 직접 악수를 건네며 유학을 축하해 주셨다. 네덜란드의 장점과 생활 팁도 알려주셔서 유학 생활에 대한 기대가 더욱 커졌다.


무엇보다 케냐에서 근무할 당시, 네덜란드에서 공부한 지인을 세 명이나 만났는데 모두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었고 적극 추천해 주었다. 한 번도 여행으로 가본 적은 없었지만, 이미 마음으로는 가까운 나라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네덜란드 석사에 도전하게 되었다.



ㅣ 네덜란드 학교 석사 생활


나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에라스무스 대학 국제사회연구소(International Institute of Social Studies, ISS)에서 네덜란드에서 개발 경제학 석사를 공부했다. ISS는 네덜란드 헤이그에 위치한 국제 대학원으로, 사회·정치·경제 개발을 비교 연구하는 데 중점을 둔 교육 및 연구 기관이다. 1952년 설립된 이래로 전 세계 150개국 이상의 학생들이 국제개발 및 공공정책 분야에서 전문성을 키워왔으며, 비판적이고 실천적인 사회과학 교육을 지향한다.


처음 네덜란드에 도착했을 때, 기숙사 방에서 2주간 자가격리를 해야 했는데 의외로 혼자만의 그 시간이 참 좋았다. 학교에서 샌드위치 같은 식사를 방문 앞에 놓아주었기에 요리할 필요 없이 수업만 듣고 쉴 수 있었고, 앞으로의 학업과 생활에 대해 차분히 계획을 세웠다. 격리 기간이 끝난 후에는 삭막한 기숙사 방을 공부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바꾸고 싶어 꽃을 사고 그림을 붙이며 손길을 더했다. 그렇게 조금씩 공간에 나만의 온기를 불어넣다 보니, 낯설던 방이 점점 익숙하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네덜란드는 이름 그대로 “낮은 땅(Neder-land)”이다. 동산도 없을 만큼 평평하고, 대도시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건물들이 아담하다. 내가 살던 기숙사 방은 4층이었는데, 창밖으로는 멀리 교회 첨탑이 보였다. 비와 바람이 잦은 날씨 속에서, 어느 날 비 온 뒤 쌍무지개가 떴던 순간이 있다. 건물에 가리지 않은 거대한 무지개를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가 공부한 개발 경제학은 국제 과정이라 외국인 학생이 많았고, 서로의 문화와 생각에 열린 분위기였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전 세계 언어로 적힌 “Hello”였다. 처음 들어보는 나라와 지역에서 온 학생들이 저마다의 배경을 가지고 있었고, 그 안에서 나 역시 한국이라는 사회적 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마음이 편했고, 이방인으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동기들과 토론하거나 스터디 모임을 만들어 함께 공부했고, 학교 근처 공원이나 바닷가를 산책하며 건강한 일상을 보냈다. 가끔은 카페에 모여 수업에서 다룬 내용을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시간이 석사 생활 중 가장 즐거웠다.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표현하는 동기들을 보며 감탄할 때가 많았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비판적 사고와 표현력이 부러웠고, 나도 그런 능력을 갖고 싶었다. 하지만 생각을 자유롭게 말로 풀어내는 일은 마음처럼 쉽게 되지 않았다. 그래서 수업이 끝난 뒤에는 배운 내용을 바탕으로 브레인스토밍하며 사고의 폭을 넓히려 애썼는데, 이 방법이 논리력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그렇게 1년 4개월의 과정은 금세 지나갔다. 마지막 4개월은 논문 작성 기간으로, 수업 없이 스스로 연구하며 글을 써 내려갔다. 다른 학교도 그렇겠지만, 표절 검사 시스템이 매우 철저했다. 덕분에 온전히 내 연구와 생각을 담을 수 있었던 것이 좋았다. 나는 케냐 협동조합의 소득 증대와 관련한 주제를 다루었다. 쓰는 동안은 몹시 힘들었지만 다 끝내고 나니 참으로 뿌듯했다.


헤이그에는 내가 사랑했던 공간들이 참 많다. 푸르른 나무와 강이 흐르는 공원, 학교 근처의 비넨 호프, 봄이면 튤립이 가득 피었던 거리, 그리고 석사 논문을 쓰기 위해 자주 찾았던 Peace Palace 도서관까지. 그곳들에서 느꼈던 소소한 행복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또다시 방문한 케냐


네덜란드에서의 유학 생활은 매일매일이 힐링이었다. 하지만, 이것은 잠시일 뿐,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졸업이 다가오기 전부터 한국 내 일자리를 알아보았고, 논문 쓰는 기간에도 기회가 되는 대로 취업 전 할 수 있는 단기 일을 찾아보았다.


그러다 한국국제협력단에서 성과관리 초급 전문가 모집 공고를 보고 지원하였고, 감사하게도 내가 전에 일했던 케냐에서의 보건 사업 발굴에 참여할 기회를 얻었다. 한국 정부에서 지원했던 보건소, 코로나19 대응 병원으로도 지정된 곳의 후속사업 기획을 위한 출장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마침 코로나 19로 인해 갑작스럽게 이별을 하게 된 케냐가 그립기도 했고, 졸업 논문 대상지도 케냐였기에 너무나도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되었다.


그렇게 떠나게 된 케냐에서의 2주는 그 어떤 출장 보다도 즐거웠다. 너무나도 멋지고 훌륭하신 전문가님들과 함께 의미 있는 사업 발굴에 참여하여 많은 것들을 배우고 기여할 수 있어 감사했다. 그렇게 2주간의 출장을 잘 마쳤고, 나는 다시 네덜란드로 돌아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출장 마지막 날, 동생으로부터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갑작스러운 문자를 받았다.


다음 편: 네덜란드 2편. 상실과 회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