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냐 2편. 위험과 경이로움 사이

떠날 수 있는 용기

by 블라이
케냐, 위험과 경이로움이 공존하는 땅

내가 지냈던 나이로비는 대형 쇼핑몰과 국제적인 음식점, 부족함 없는 인프라 덕분에 이웃 나라에서 사람들이 휴양을 즐기러 올 만큼 편리한 도시였다.


그러나 생활의 편리함은 언제나 ‘불안감’과 함께했다. 소말리아 이슬람 무장단체의 테러와 납치의 위험이 있고,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소매치기 사건도 빈번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도심 곳곳에는 경비원들이 배치되어 있었고, 쇼핑몰에 들어갈 때마다 공항 보안검색처럼 가방과 몸을 수색당해야 했다.


특히 잊을 수 없는 하루가 있었다. 바로 나이로비 시내에서 일어난 자살 폭탄 테러 사건이었다.


ㅣ 잊을 수 없는 하루, 나이로비 자살 폭탄 테러


그날 대낮에 들려온 폭발음을 처음엔 단순히 폭죽 소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곧 그것이 테러임을 알게 되었다. 대낮 수도 한복판에서 테러라니, 믿기지가 않았다. 내가 지냈던 캄보디아나 모잠비크는 더 가난한 나라였지만 테러가 수도 한복판에서 일어날 만큼 위험하지는 않았다. 폭탄이 터진 호텔은 내가 지나치던 호텔이었고 평소에 위험한 곳이 아니었다.


테러는 이슬람 무장 단체 알샤밥*의 소행으로 밝혀졌다. 2011년부터 케냐는 소말리아의 알샤밥 소탕 작전에 군대를 파병했고, 알샤밥은 이에 대한 보복으로 케냐 내에서 여러 차례 테러를 일으켜 왔다. 이 사건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안타깝게도 이 테러로 인해 민간인 21명이 목숨을 잃었다.


알샤밥 (Al-Shabaab)는 아프리카 소말리아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알샤밥'은 아랍어로 '젊은이'를 의미하며, 소말리아 내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이들은 엄격한 이슬람 율법(샤리아)을 따르며, 서구 세력과 그에 동조하는 정부에 반대한다.


테러가 터진 시점에 나는 호텔에서 차로 5분 정도 거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테러 소식을 접한 나와 직원들은 대사관의 지침에 따라 불을 끄고 사무실에 숨어 있었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모른 채 긴장 속에서 기다려야 했다. 다행히 상황은 곧 진정되었고, 모두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때 느꼈던 긴장과 불안은 지금도 가끔씩 떠오른다.


CNN World News, At least 21 killed as Kenya hotel siege is declared over


이런 일을 한번 겪고 나니, 치안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안전히 밖을 걸을 수 있다는 것은 결코 당연한 게 아니다. 큰 테러 없이 안전한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건 정말 큰 축복이다.


나는 케냐에 있는 동안 주요 안전 관련 뉴스를 꾸준히 모니터링하고 사건 수치를 보고했는데, 나이로비 외의 지역들, 특히 소말리아 국경지대에서는 많은 테러가 발생하고 있었다.


외부의 공격뿐 아니라 케냐 내 부족 간의 싸움도 잦았다. 기후 변화로 농작지와 물이 부족해지면서, 우물 하나를 두고 부족 간 싸움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는 일도 있었다. 이런 부족 간 전쟁은 복수로 이어져 끊임없이 되풀이되기도 했다. 앞으로 기후 변화로 물과 식량이 점점 더 부족해지면 이런 갈등이 더 잦아질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연재해와 전염병


테러 사건 외에도 케냐에 있는 동안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자연재해와 질병도 마주하게 되었다.


ㅣ 공포의 메뚜기 떼


자연재해로 인해 발생한 참혹한 사건 중 하나는 메뚜기 떼 습격이었다. 이는 70년 만에 찾아온 최악의 사태로, 소말리아와 에티오피아 등에서 시작된 메뚜기 떼가 케냐까지 퍼지며 농작물과 목초지에 막대한 피해를 줬다.


원인은 불규칙한 기후와 폭우였다. 메뚜기 떼는 농작물을 순식간에 먹어치워, 기후 변화로 이미 힘들었던 농부들을 더 큰 위기로 몰아넣었다. 나는 이런 광경은 성경 속에나 나오는 옛날이야기인 줄만 알았다. 케냐는 기후 변화의 주범이 아님에도 고통을 받고, 특히 가장 가난한 농부들이 가장 큰 피해를 입는 현실은 참으로 불공평했다.


BBC, Hundreds of billions of locusts swarm in East Africa

당시 이 문제에 직접적인 지원을 곧바로 하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곧이어 2020년 초, 전 세계를 잠식한 코로나19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ㅣ 코로나 19 발병


케냐에서 코로나19 시기를 보내는 건 쉽지 않았다. 2020년 3월 첫 확진자가 나온 후, 동양인을 중국인으로 오해하고 돌을 던지거나 폭행하는 사건이 잦았다. 나 역시 외출했을 때 "쉬나 쉬나(중국인)"라며 조롱하거나 위협하는 사람들을 마주한 적이 있다. 이에 한국에서 파견 온 파트너들을 대상으로 비상 연락망을 가동하여 수시로 사람들의 안전을 확인했다. 다행히 큰 사건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와 더불어 주재국 내 NGO파트너들과 협업하여 코로나 19 대응 지원으로 사업 대상 지역 및 병원에 손 씻기 시설 설치 및 마스크, 손세정제, 기타 위생 물 등 긴급 지원을 지원했다. 모두가 어려운 시기에 많은 파트너들이 함께 손을 모아 지원했던 것이 의미 있었다. 당시 케냐에는 마스크나 위생 장갑 등 기본적인 위생 물품이 부족한 상황이었기에 이러한 지원은 지역 사회에 큰 도움이 되었다.


또한 그동안 한국 정부에서 지원하여 증축된 주립 병원이 있었는데, 그곳이 코로나19 거점 대응병원으로 지정되었다는 기쁜 소식이 들렸다. 한국 정부에서 오랜 기간에 걸쳐 꾸준히 지원하고 사후관리를 한 덕분에 지역에서 해당 주의 주요 의료 시설로 자리 잡을 수 있었다. 일회성 지원을 넘어 꾸준한 지원의 효과가 여기서 빛을 발했다.




자연이 주는 감격


케냐는 수많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만, 또한 놀라운 자연의 선물을 가진 나라였다. 마사이마라의 끝없는 초원, 킬리만자로를 배경으로 한 암보셀리 국립공원, 푸른 해변 마을 디아니, 그리고 영화 ‘라이언 킹’의 배경이 된 헬스 게이트까지. 케냐의 자연은 늘 감탄을 자아냈다. 그중에서 마사이마라는 단연 최고였다.


ㅣ 마사이마라


마사이마라는 동아프리카 케냐에 있는 국립 야생동물 보호구역이다. 끝없이 펼쳐진 초원과 다양한 야생동물들로 유명하다. 매년 수백만 마리의 누 떼가 세렝게티에서 마사이마라로 이동하는 '대이동'이 일어나는데, 이는 지구상에서 가장 거대한 야생동물 쇼라 불린다. 사자, 코끼리, 얼룩말, 기린 등 수많은 동물을 직접 볼 수 있는 사파리 여행의 성지이기도 하다.


마사이마라에서 새벽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떠오르는 순간은 내 삶에서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 중 하나다. 자연의 위대함 앞에서 나라는 인간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나라는 작은 인간 안에 어찌나 많은 생각과 고민이 많은지. 광활한 자연을 바라보니 너무 지나치게 고민하지 말고 단순하게 살아가고 싶어졌다.


케냐 마사이마라

흔들리는 나무, 뛰노는 얼룩말, 항상 무리 지어 함께 다니는 코끼리 떼를 보며 ‘저 동물들은 무슨 마음으로 살아갈까’ 궁금해졌다. 배가 부른 사자가 옆에 다른 동물이 있어도 잡아먹지 않더라. 저 동물들처럼 너무 욕심 내지 말고 흘러가는 대로 조화롭게 어울리며 살아가면 어떨까.


한번은 마사이마라 가던 길, 마사이 부족 마을을 방문했다. 그분들은 전통 노래와 춤으로 우리를 맞이해 주었고, 나를 포함한 방문객들에게 전통 천을 둘러주며 함께 춤추게 했다. 새로운 문화와 언어, 노래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며 나도 웃음과 춤으로 어울렸다. 이어 직접 자연에서 불을 피우는 방법도 보여주셨다. 돌과 나무로 불꽃을 일으키는 모습은 놀랍고도 신비로웠다.


자연에서 직접 불을 피우는 마사이족


ㅣ 헬스게이트


헬스게이트 (Hell's Gate) 역시 내가 좋아하는 곳 중 하나이다. 헬스게이트라는 이름은 과거 활화산이었던 곳의 지형이 마치 지옥의 문처럼 생겼다고 하여 붙여졌다. 케냐의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에 위치한 이 국립공원은 독특한 풍경을 자랑한다.


다른 국립공원들과 달리 걸어서 또는 자전거를 타고 탐험할 수 있다는 점이 큰 장점이다. 한국에서 친구들이 놀러 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했는데 거대한 돌 산 절벽을 보며 자전거를 타고 있노라면 마치 라이언킹 영화 한가운데 들어가 있는 느낌이다.


실제로, 라이언킹 영화 제작진은 아프리카 현지답사를 통해 헬스게이트 국립공원의 거대한 절벽과 독특한 협곡 지형에서 영감을 얻어 프라이드 랜드의 배경을 스케치했다고 한다. 특히, 심바가 왕위에 오르기 위해 올라가는 거대한 바위인 '프라이드 록(Pride Rock)'의 모티브가 되었다.



헬스게이트에서는 사자, 표범 같은 포식자는 없지만, 얼룩말, 기린, 버펄로, 다양한 영양들을 볼 수 있다. 붉은 절벽과 협곡을 따라 형성된 아름다운 풍경은 트레킹 여행을 즐기기에도 매우 좋다. 케냐에 다시 방문하게 된다면 한번 더 방문해보고 싶다.


이렇듯 케냐는 여러 사건 사고도 많은 곳이었고,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평안함을 느낄 수도 있는 곳이다. 다음 편에는 케냐에서 느낀 것들, 그리고 또 다른 여정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