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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Aug 23. 2021

울면, 이모 바보

바보 천국

  아이들은 어릴 때 일정 시기 동안은 헤어짐을 슬퍼하지만, 그 시기가 지나고 나면 헤어져도 곧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인지 더 이상 헤어질 시간이 와도 울지 않는 것 같다. 나의 세 조카가 꼭 그랬다.




   첫째 조카는 언니의 결혼 4년 만에 어렵사리 우리 곁에 찾아왔다.

늦은 만큼 소중했고, 처음이라 남달랐다.


  첫째 조카에게는 내가 낳을 자식에게도 다시 이런 애정을 쏟을 수 있을까 싶을 의문이 들 정도로, 틈만 나면 언니네로 달려가 조카와 놀았다. 조카는 내가 집에 갈 채비라도 할 때면 아쉬움에 눈물을 보이며 울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그 시기가 지나고 나자 조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눈물은커녕 손만 한번 시크하게 흔들며, 쿨한 목소리와 기계적인 딕션으로 인사한다. "이모 안녕?" "잘 가! 또와!"

   

 둘째 조카 역시 그랬다.

한 번은 언니네에 갔더니 조카의 고모가 잠시 와있었다. 밖으로 나가자는 말에 말문은 트이진 않았지만 말귀는 제법 알아들었던 둘째 조카는 고사리 같은 작은 손으로 나갈 채비를 돕는다. 비록 내 가방이 아니라 고모의 가방을 이모인 나에게 건네주며, '맛있는 걸 얼마나 사다 줬는데 이모만 챙기냐'는 고모의 귀여운 푸념을 한차례 들었지만 말이다. 첫째 조카의 융단 폭격 테러 공격으로부터 둘째 조카를 지켜준 날에는 "이모 이쁘다." "나는 이모가 참 좋다!"라는 사회생활 만렙 10년 차 같은 노련한 멘트도 아끼지 않던 첫째 조카보다 더 나를 따랐던 둘째 조카도 어김없이 그 나이대가 지나고 나자 내가 집으로 가는 시간이 다가와도 더 이상 울지도 찾지도 않는 것은 물론, 유튜브라도 보고 있을 때면 공주님께 직접 얼굴을 들이밀고 문안인사를 여쭙는 정성을 기울어야 겨우 눈길을 한번 주실 정도다.


  대망의 이모 바보의 클라이맥스를 보여주고 있는 셋째 조카.

그래도 셋째 조카의 이모 바보 시기는 마지막답게 제법 오래 지속되고 있다.

막내 조카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면,


 "엄마 아들이야 아빠 아들이야?"란 민감 미묘한 질문에 서슴없이 "이모 아들"이라 중립 노선 선언으로 무심히도 엄마와 아빠 양쪽 마음에 기스를 냄과 동시에 이모의 혼삿길을 막아 버릴 대찬 답변을 하는 재간둥이.

"어린이집에서 누구랑 제일 친해?"라고 물으면 "이모!"라 답하며 나를 한순간에 어린이집 동창생으로 만들어 버리는 귀염둥이.

'이모 오늘 이쁘다' 칭찬은 기본이고, 이모랑 같이 책 읽고 싶어요. 이모 옆에서 밥 먹을 거예요. 이모랑 같이 잘 거예요. 등등 내가 가는 곳은 어디든 아기오리처럼 졸졸 따라다니며 일상을 공유하는 스위트함을 장착한 애교 둥이.


   이 애교로 무장한 귀염둥이가 한껏 업된 텐션으로 나와 놀다 헤어질 시간이 다가오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대성통곡을 하는 통에 집으로 돌아서는 발걸음이 한참 무겁다. 내가 집에 돌아가버린 후에도 한참을 엄마 품에서 계속 엉엉 우는 바람에 잠깐만 있다 가면 오히려 더 힘들다며 잠깐 있을 거면 아예 오지 말라는 엄계령을 언니가 내릴 정도다. 그래서 잠깐 지나가는 길에 전해줄 물건이 있을 때면 조카 얼굴이라도 한번 더 보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전할 물건을 아쉬움을 담아 우유함에 넣어둔다.

 


이런 작은 수고스러움과 불편함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 사랑스러운 시기가 지나버리면 많이 섭섭할 것 같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언니네에 가면 바보 천국이다.

조카바보와 이모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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