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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벤더핑크 Aug 25. 2021

야생과 애완 사이

셋방 살이 세잎 클로버와 관상용 깻잎 이야기

  혼자살이의 외로움을 달래 주기 위해 반려동물을 많이 키운다. 

하지만 나는 내 한 몸 돌보기도 버거워하는 저질 체력과 선인장조차 말라 죽이는 귀차니즘 신공을 자랑하며 내가 키우기에 바람직한 것은 애완식물쯤이 적당하리라 스스로 결론 내렸다.


애완식물 하나로 시작해 나의 집을 거의 식물원화 시키게 된 것은,

바야흐로 중국의 미세먼지가 한반도를 뿌옇게 뒤덮었을 무렵이었다.

 

  비극적인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워낙 기억에 강렬히 남았던 나는 인공적인 것을 거부하며 디지털보다는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남들이 모두 미세먼지를 제거를 위해 공기 청정기를 살 때, 공기청정기를 방마다 놓을 수 있을 만한 돈으로 묵묵히 화분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어느덧 나의 집은 크고 작은 화분들로 빼곡히 채워졌고 집안 곳곳의 초록색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눈과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낀다. 


나에게 숨쉬기의 안락함과 마음의 편안함을 가져다준 동반 식물. 


그런데 이 모든 화분의 출처는 비단 화원만이 되었던 것만은 아니다. 


  한동안 베란다에 나가질 않았더니, 어느샌가 제법 자라나 거실에 앉아있으니 우수관 뒤로 고개를 빼꼼히 내민 초록색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신원파악을 위해 가까이서 향을 맡아보니 깻잎이었다. 


  우연히 창문 틈으로 씨앗이 날아들어온 건지 어느 윗집에서 키우는 화분에서 씨앗이 빠져나와 우수관으로 흐른 건지 그 비좁은 배수구 틈 사이를 비집고 피어낸 생명력에 나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렇게라도 살아보겠다고 아등바등 자리 잡은 아이를 매정하게 내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차피 비어있는 우리 집 베란다 한 켠을 그냥 내주기로 했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따서 먹기엔 왠지 꺼림칙해서 그저 관상용이 돼버린 깻잎. 

어느새 성인 가슴 높이만큼 자라난 개수구 깻잎

   어디 그뿐이랴... 


  잎이 제법 귀여웠던 관상용 화분인데, 거실엔 이미 다른 화분들로 발 디딜 틈이 없어 베란다에 그대로 두었더니 겨울의 혹독함을 견디지 못하고 잎이 모두 떨어져 버렸다. 죽은 화분이라 생각하고 물조차 주지 않았는데, 창문 틈으로 스며든 봄비를 맞고, 기특하게도 두 번이나 다시 잎을 피워냈다. 올해도 봄에는 다시 잎을 피우려나 싶어 창문가에 놔두고 물을 주고 있었는데 주인장 나무가 비운 자리엔 어느새 세 잎 클로버들로 가득 차 버렸다. '행운'의 상징 네 잎 클로버는 비록 찾을 수 없었지만, '행복'이란 꽃말을 가진 세 잎 클로버가 왠지 우리 집에도 행복을 선사할 것만 같아 그렇게 화분 한 켠도 기꺼이 세를 내어주게 되었다.


주인의 빈자리를 가득 채운 행복의 상징, 세잎 크로바 화분 / 처음에는 그냥 버리다가 재활용차원으로 화원에 가져다 주려고 요즈음 모으고 있는 화분갈이의 잔해들


그렇게 깻잎과 세 잎 클로버는,

야생도 아닌, 마냥 애완용으로 길러진 것도 아닌, 그 모호한 경계 사이쯤 어딘가에서 

오늘도 나란히 마주 보며 사이좋게 우리 집 베란다에서 셋방 살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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