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벤더핑크 Sep 08. 2021

휠체어 카트라이더

휠체어를 탄 여정

   최근 스마트 스타트업 기업의 실증 지원의 시민 참가단으로 선발되었다. 스타트업 서비스를 체험해 본 뒤, 체험보고서를 작성해 내면 시민 참가단 피드백 의견 바탕으로 개선 사항 도출 및 확정 심의 등을 통해 서비스 개선을 지원하는 것인데, 친한 동생의 동참 권유로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단 생각에 일단 지원했던 것이다.


   총 4개 업체의 제품과 서비스를 체험해 볼 수 있었는데, 한 사회적 기업의 체험은 전동휠체어를 대여해야 하기에 약속 시간을 따로 잡아 업체로 방문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휠체어 제작하는 업체로 착각했으나, 그게 아니라 관광약자의 포용 관광 접근성 향상을 위한 휠체어 내비게이션을 만드는 업체로 휠체어 맞춤형 배리어 프리 길안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중이었다. 휠체어 내비게이션이라니, 아이디어가 신선했다. 휠체어뿐 아니라 유모차 사용객들도 울퉁불퉁하거나 진입 불가능한 보도를 피해 이동할 경우도 해당 어플을 이용 가능해 보였다.


   약속된 시간에 간단한 서류 사인과 설명을 듣고 건네받은 전동 휠체어에 올라탔다.


   막상 처음으로 휠체어를 타고 이동해보니 현재 지도가 얼마나 철저하게 비장애인 위주로 만들어진 지도인지를 알게 되었다. 일반인들은 충분히 걸어서 이동할 수 있는 길일지라도 휠체어나 유모차는 지나갈 수 없다면 그들에게 그곳은 지도상 길이 아니었던 것이다.

 

    휠체어를 타면 세상의 좀 더 낮은 곳을 바라보게 된다.


   그전에는 보이지 않던 보도의 작은 깨짐과 튀어나옴, 그리고 횡단보도의 정말 낮디 낮은 단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지점을 지날 때 휠체어가 유독 덜컥거리기 때문에 속도를 낮춰야 엉덩이 들썩임을 조금이라도 피할 수 있어 지나가면서 이런 지점을 유독 유심히 보게 된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보도블록의 깨짐이 심한 곳이 많음을, 그리고 두 발로 서있을 때는 마냥 낮게만 보이던 횡단보도의 단차가 평평한 길에 비한다면 그리도 높은 것이었음을 수십 번 지나다니던 길도 새롭게 보이기 시작한다.

나의 배리어 제보와 전에 보이지 않던 울퉁 불퉁한 보도와 단차가 나는 횡단 보도 턱



   건물을 나서려고 보니 정문은 한쪽 유리문만 열려있어 휠체어가 빠져나갈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잠시 망설이다 좀 더 공간이 넓어 보이는 회전문을 통해 나가려 했는데, 휠체어의 제어에 익숙하지 않아 느린 속도로 진입하다 보니 회전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회전문에 끼어버렸다. 위험하기도 했지만 길 가다 넘어지면 아픔보다 쪽팔림이 더 커서 넘어진 속도보다 더 빠르게 일어나는 것과 흡사 같은 원리로 나는 당황스러움에 황급히 후진해 재빨리 정문으로 향했다. 다행히 나머지 한쪽 문을 열지 않아도 휠체어가 지나갈 수 있었다.


  건물을 나서자마자 나는 즉시 시련에 부딪힌다. 횡단보도에 미처 다다르기도 전에 신호가 파란 불이 즉시 바뀌었다. 처음에는 속도를 조작할 줄 몰라 제일 낮은 상태로 놓았던 터라 신호가 충분히 길었으나 보도를 거의 지나갈 쯔음 빨간불로 바뀌었다. 저 멀리 멈춰진 차들이 달려올까 두려움에 재차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가며, 머리를 내민다고 더 빨리 가는 것도 아닌데 머리와 몸을 앞으로 더 기울여가면서 끙끙대며 길을 건너고 있자니 차들은 친절하게도 바뀐 초록불에도 그대로 멈춰서있었다. 다행이었다. 차들이 움찔하는 정도라도 움직이기 시작했으면 나는 어찌할 바 몰라 다시 당황하기 시작했을 것 같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외려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였다. 차들이 휠체어에 앉아 키가 낮아진 나를 보지 못하고 달려들지 않을까, 그전에는 전혀 못 느꼈던 도로는 왜 이렇게도 크고 넓었던 것인지, 찻길을 건널 때마다 심장이 두 근 반 세근반 했다. 심지어 뉴욕에서는 J-walk (뉴욕은 한 블록의 길이가 한국에 비해 무척 짧아 성질 급한 뉴요커들은 무단횡단 마인드를 기본 장착하고 있다. 그래서 이것이 횡단보도에 서있으면 뉴요커냐 여행객이냐를 쉽게 판별해 볼 하나의 기준이 될 수 있다.)도 일삼던 내가 예전에는 별 것 아니던 찻길을 건너는 것이, 이렇게도 무서운 일임을 처음 알았다.




   체험을 마친 후 업체에서 설문조사 링크를 보내왔다. 휠체어 사용 시 불편한 점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보도'를 누를까 하다 망설이다 결국 '주변의 시선'을 선택했다.

 

   사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동안 사람들은 무척 나를 친절하게 대해주셨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은 정말 착한 것 같다 생각이 내심 들었다. 사회적 기업에서 휠체어를 인계받아서 휠체어에 탄 후 건물을 내려가려 기다리니 엘리베이터가 열렸다. 그러나 공간이 너무 비좁아서 그냥 보내고 다음에 오는 것을 타려 멈춰 있었더니 다들 이리저리 걸음을 옮겨 공간을 만들어 자리를 내어주시며 타라고 하신다. 체험이 끝난 후, 휠체어를 반납하려 올라가는 엘리베이터에서는 몇 층 가시냐고 물어봐주시고 눌러주셨고 내릴 때 내가 후진을 잘못해 당황하자, '천천히 하셔도 돼요' 하고 친절하게도 배려의 말씀해주셨다. 길을 가다 아이가 휠체어 앞을 가로막자 나는 늘 그랬던 것처럼 내가 피해 가려하는데 엄마는 얼른 죄송합니다 하며 아이한테 한마디 하며 길을 내어 시는데, 왠지 내가 평소에 길거리에서 마주치면 가장 약자로 여기며 보호해주려 노력했던 아이와 아기 엄마보다 뭔가 더 약자가 된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내가 시선을 불편하다 느꼈다고 응답한 것은 이러한 친절함과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그렇다고 시선이 따갑다거나 대놓고 쳐다본다든지 하는 무례함을 느낀 것도 아니었다. 또 사실 이런 관심이 있어야 도움을 주시는 것이기도 하기에 무척 감사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이와는 별개의 차원에서 뭔가 처음 겪어보는 경험에서 나온 낯설음이었을까. 휠체어에 앉자, 걸어서 이동할 때와 달리 제약이 많아 처음에는 무척 당황했는데, 이런 당황스러움에 이목이 집중되거나, 내가 불편한 만큼이나 다른 사람도 그러하리라 나의 상황을 상대편의 시선에 투영해 (정작 바라보는 이는 오히려 아무렇지 않을지 모르는데) 지레 혼자서만 크게 느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상황에서 나를 위해 기다려주는 사람들한테 내가 미안함을 느꼈기에 아주 단순한 일상의 과정도 내가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상황 자체가 그냥 불편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혹은 그냥 길을 지나기만 해도 자연스레 주목이 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일지도. 아니면 왠지 모를 동정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일까? 무언가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없는 그 불편한 상황과 미묘한 느낌을 나는 그저 핑곗거리를 찾듯 "주변의 시선"이라 뭉뚱그렸던 것일지도...


   예전에도 왼쪽 발목의 인대 부상으로 석고 붕대를 감고 목발을 짚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 목발을 짚고 엘리베이터를 탔을 때, 나를 불쌍하게 보던 시선보다 이번이 좀 더 강렬했던 것 같았다. 목발은 일시적인 불편함으로 보일 수 있지만, 휠체어를 보유한 것은 아무래도 영구적인 장애일 확률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혼자만의 착각 일 수도 있는데, 왠지 '젊은 나이에...' 하는 딱한 시선으로 불쌍하게 보는 눈빛 같기도 했다. 어느 드라마에서 동정의 눈으로 보는 게 더 싫다고 외치던 여주인공의 대사가 이제야 어떤 심정이었는지 조금은 알 것도 같았다. 물 흐르듯 흘러갔을 간단한 행동도 휠체어 위에서는 행동 하나하나가 장애가 부딪치자 발이 묶인 듯한 부자유스러움에 나 자신조차도 불편함을 느끼는데, 거기에 더불어 주목받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었던 나는 걸음걸음마다 매시간 그것이 어떤 종류의 눈빛이든 어떤 마음에서 나온것이든 그저 이목이 집중되는 것 자체가 마냥 편하지만은 않았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고 동선의 1/3 쯤 다다르자 어느 정도 휠체어 조작에 익숙해졌다. 보도블록의 상태도 가장 좋은 곳이라 나는 휠체어 속도를 조금 리기 시작했다. 나를 바라보는 불편한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 속도가 올라가자 나름 놀이기구를 타는 듯한 재미도 생겼다. 머릿속에서는 어느 순간 카트라이더 음악이 BGM으로 깔리기 시작하며 찰지게 붙은 속도감에 얼굴을 가볍게 스치는 시원한 바람과 함께 저 멀리 스쳐가는 푸른 하늘의 풍경도 만끽해본다. 커브길에서는 나름 드리프트도 쓰며, 신나게 달리다 보니 어느새 영화의 전당 앞이다.


두 발이 아닌 휠체어 바퀴에 의존한 가벼운 산책 길 코스.

예쁜 구조물들과 전시차량 앞에 다다르자 나의 발길이, 아니 휠체어 바퀴가 저절로 멈춰 선다.


영화의 전당과 월석아트홀 앞


나의 휠체어 관광 여정

   여행을 좋아하던 나였지만 그래도 휠체어를 탄 관광은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름 편한 부분도 있었다. 교통사고 당시 브레이크를 밟고 있던 오른쪽 다리가 계속 불편해 오래 걸으면 다리를 좀 절룩거렸는데, 휠체어를 타니 허리는 아팠지만 제법 되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확실히 다리는 편했다.


  그러면서 나의 짧은 산책 여정 중에 자연스레 휠체어 관광을 상상해 보게 되었다. 예전보다 인식이나 시설이 많이 좋아지긴 했지만 아직 발전해 나갈 부분이 남아있을 것 같았다. 불현듯 휠체어 앞에서 몸을 낮춰주는 겸손하기까지 한 캐나다 버스가 떠올랐다. 캐나다에서는 버스 오른쪽 편 차체가 조금 기울어지면서 휠체어가 탈 수 있는 승강 설비가 내려온다. 또, 버스 앞편에는 앉는 좌석이 아니라 휠체어가 서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여기에 비교한다면 우리나라는 휠체어를 타고 고속버스를 타는 것은 가능하지만 아직 시내버스를 타고 돌아다니는 것은 아직 무리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반면에 공항에서 무료로 휠체어 렌트 가능한 휠 셰어 프로그램은 잘 활용하면 꽤 유용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http://wheelshare.kr/


    장애인과 노약자 등도 똑같이 관광에 대한 욕구가 있고, 이동을 해야 할 필요성이 있을 텐데, 관광, 이동약자들을 위해 이런 내비게이션과 같은 어플을 만드는 기업도 있다니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고, 앞으로도 이런 분야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갔으면 좋겠다는 관광 휠체어에서부터 시작하여 산업의 발전까지 두서없는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 때 쯔음, 어느새 나의 여정은 끝에 다다라 있었다.

   




   이제 길가다 휠체어 탄 분들을 보면 왠지 좀 다른 느낌일 것 같다. 이 글을 통해 다른 분들도 내가 느낀 것처럼 당연함이 되어버린 일상의 생활이 몸이 불편하신 분들에게는 전혀 그렇지 않은 것임을 간접적으로 느껴보고, 한 번이라도 이에 대해 생각해 볼 계기가 된다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끄적거려 보았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체험이 내가 평소 상상하거나 생각하거나 혹은 쉽게 접해보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해볼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휠체어를 탔을 때 각종 제약 및 불편함들과 친절하게 도와주셨던 고마운 시민들의 얼굴이 교차되면서, 두 발로 걷고, 횡단보도를 건너고, 회전문을 통과하고, 길을 걸어가고, 엘리베이터를 타는 나의 지극히 당연한 일상조차도 감사함을 느끼게 된 복잡 미묘했던 시간이었다.


역시 하루라도 나와 다른 삶을 살아보면, 내가 현재 가진 것의 소중함도 느낄 수 있는 것 같다.



P.S 휠체어를 타고 있을 때 친절을 베풀어 주신 분들이 잠시 후 내가 멀쩡히 두 발로 서서 나가는 것을 목격하셨다면 적지 않은 배신감을 느끼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자리를 빌려 다시 한번 그 따스한 마음에 감사함을 전합니다. :)

매거진의 이전글 야생과 애완 사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