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코펜하겐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romenade Oct 21. 2018

일요일 브런치


유명한 브런치 식당에 갔다가 유리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화목한 분위기에 쫄아서 이내 발길을 돌렸어.

그렇지. 오늘은 일요일, 가족들 친구들 서로 모여 한껏 여유를 즐기는 날이었지.

평일 아침 늦게 너네 다 일하러 가고 없을때 맘껏 누려볼테다.


그렇지만 오늘은 내가 대충 만든 샌드위치 말고, 뭔가 따뜻하게 잘 차려진 식사를 하고 싶었어.

오늘은 내게도 일요일이고 날씨는 점점 스산해지니까. 뭔가 헛헛한 기분을 채우고 싶었나봐.

(이쯤해서 나는 얼마나 많은 돈을 쓰고 있는지 신경쓰지 않게 됐어. 계산하면 뭐해 속만 아프지..)


그렇게 어느 카페 앞에 세워진 브런치 메뉴판에 눈길이 가서 무작정 들어왔어.

영어로 이런저런 음식 이름이 쓰여 있었지만 얘네들 요리를 내가 뭐 아나. 맛집인지 검색해 보는 것도 귀찮았고.

나처럼 혼자 앉아서 책을 보거나 컴퓨터를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게 가장 큰 이유였던거 같기도 해.

여튼 맛보단 차분히 있을 수 있는 공간이 나한텐 더 중요했으니까.


그런데 받아보니 왠걸, 너무 근사한 차림새에 깜짝 놀랐지 뭐야.

몽글몽글 에그 스크램블, 적당히 짭조름한 소세지, 견과류를 얹어낸 아보카도, 토마토 치즈 샐러드, 요거트에 와플까지.특별한 요리는 아니지만 예쁘게 담아낸 정성 때문에 배가 고파도 천천히 음미하게 되더라구. 물론 맛도 좋았고.

그렇게 느긋하게 한 입씩 오물거리면서 창 밖을 멍하니 구경하기 시작했어.


그냥 동네 사이로 난 좁은 도로가 풍경이야.

지난 주보다 더 두터운 외투를 걸쳐 입은 사람들이 쉴새없이 지나가.

이따금씩 정말 그림같이 멋있는 커플들이 손잡고 멋있게 런웨이를 해. 한 손에 커피나 꽃을 들고서.

나처럼 브런치 메뉴에 이끌린 손님들이 심심찮게 들어와.

카페 주인은 약간 벅찼는지 아님 장사가 잘 돼서 좋은건지 브런치 주문이 들어올 때마다 자기 친구랑 막 웃으면서 얘기를 해. 브런치가 여기 먹여살린다고 농담을 주고받는것 같기도 하고.

아기랑 유모차를 밖에 세워두고 혼자 잠시 들러서 커피를 마시다 가는 아랍 여인도 있고,

버려진 공병을 주워 모으려 쓰레기통을 들여다보는 초라한 중년 남자도 있어.




있잖아, 그닥 대단하지 않은 브런치 한 끼에 지나치게 의미 부여 하는것 같기도 한데.

기계처럼 배 채우는 식사에 익숙해져 살다가 이렇게 예쁜 음식을 하나씩 눈여겨 보고 각각 맛을 보고 있자니,

주변의 다른 것들까지 천천히 살펴보게 되더라고. 미각과 함께 다른 미세한 감각들이 되살아 난듯이.


사람들 걸음걸이에, 옷차림에, 서로를 보는 표정 속에 전혀 다른 세상의 단면이 언뜻 보이는 것 같아.

모두 낭만적인건 아니지만, 그들 나름대로 삶을 꾸려가는 모습에는 저마다의 아름다움이 깃들어 있단 생각을 해.


내 삶에도 그만의 아름다움이라는게 있겠지? 여기 평범한 모든 이들처럼.

그게 어떤 것이든 좀 더 가꾸어내고 싶다고 오랜만에 작은 다짐을 해봤어.


@KaffeBroen, Nørrbrogade 161



매거진의 이전글 일상의 패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